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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한 둘 키운 것도 아니면서 뭘...’



사람들은 내가 셋째는 거저 키울 거라고 했다. 게다가 둘째도 딸인데 막내까지 딸이니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고들 했다. 둘째 윤정이는 온 동네 엄마들로부터

‘이런 딸이면 열 명도 키우겠다’는 말을 들었던 순둥이 중의 순둥이였다.

애 키우는 동안 우는 소리가 집 밖을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늘상 방글거리는 아기여서,

힘들게 키웠던 첫 아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저 혼자 크는 듯한 고마운 아이였다.

막내가 딸인 걸 알았을 때 하늘에 대고 땡큐~를 날렸었다. 늘그막에 셋째를 낳는다고 제게 복을

주시나보다 생각하고 감격했었다. 순둥이 언니를 닮은 순둥이 여동생이 나오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내는 하혈이 심했던 탄생의 순간부터 나를 긴장시키더니, 생후 100일간 낮밤이 바뀌어 이러다가 혹시 수면부족으로

죽는 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였다. 마흔 넘어 선물 같은 순둥이를

기대했던 나는 그야말로 처음으로 엄마가 되어 서툴고 막막한 육아를 시작했던 그 시절보다

더 고단하고, 맘 졸이고, 까무러칠 듯한 엄마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막내 이룸이는 첫째, 둘째를 키웠던 모든 경험들을 한 번에 무용지물이 되게 했다.

두 아이 키우면서 한번도 겪지 못했던 온갖 일들을 겪게 해주는,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딸이다.

오빠 언니보다 빨리 걷더니 벌써 달리기 시작했고, 말도 빠르고, 눈치도 빠르고, 말귀도 귀신 같이

알아 듣는다. 그래서 귀엽고 대견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래서 한 눈을 팔 새가 없다.

거기에 막내는 이전까지 살던 집보다 두 배는 더 넓고, 사방이 마당과 산과 흙으로 둘러싸인 리얼 야생의

새 집에서 첫 돌을 맞이하게 되고 보니 활동무대가 언니 오빠의 어린 시절에 비해 장난이

아닐만큼 넓고 다양해졌다. 몸도 빠르고, 고집도 보통이 아니고, 벌써부터 자기 주장이 너무 너무

강한 이 17개월된 아이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나를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게 한다.



아침 일찍 눈 뜨는 그 순간부터 현관문 열어달라고 떼쓰기 시작하는데, 첫 애 깨우고 먹이고 챙겨서 학교 보내기

바쁜 아침을 간신히 마감하고 나면 내 아침 챙겨 먹을 사이도 없이 막내와의 씨름이 시작된다.

막내가 마당에 나가면 집안의 모든 일을 올 스톱하고 따라 나가야 하기 때문에 나간다고 보채는 아이

달래고 얼러가며 아침 챙겨 먹고, 집안일 좀 하려고 하면 이번엔 2층에 올라간다고 계단으로 달려간다.

그러면 나는 또 올스톱하고 막내한테 따라 붙어야 한다. 집 밖이나 집 안이나 고달프긴 매 한가지다.



마당에 나가면 남편이 키우는 연꽃 항아리 앞에 앉아 첨벙거리며 옷 적셔내기 일쑤고, 개밥통

기웃거리다 개밥을 물통에 홀딱 부어놓는 것도 순간이다. 자전거에 앉으면 꼼짝없이 허리 숙여

싫증낼 때까지 밀고 돌아다녀야 하고, 미끄럼틀을 탄다고 매달리면 서너칸 있는 계단 올라갈 때

뒤에서 봐주고, 재빨리 앞으로 옮겨와 내려오는 걸 받아주는 일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해야 한다.

아침 햇살 뜨겁기가 장난이 아닌데 씌워주는 모자마다 집어 던지는 어린 딸은 한 여름 열대지방

다녀온 아이처럼 온 몸이 그을렀다. 한때는 속달동 최고의 비주얼 베이비였는데 이젠 어딜 가나

농부의 딸로 대접 받는다.

텃밭에 풀들은 기세좋게 올라오고, 순식간에 늘어나는 해충도 잡아 주어야 하고, 가뭄에 시들어가는

고추며, 토마토밭에 물도 주어야 하는데 막내는 내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고, 막내를 데리고 밭에라도 가서 앉으면

제 맘대로 돌아다니려고 하니 결국 포기하고 내려오는 수밖에 없다.



남들은 풀 매는 게 힘드네, 텃밭 농사도 만만치 않네~ 하지만 나는 한나절 진득하게 풀 좀 뽑아보는 게

소원이다. 메마른 작물들마다 물도 충분히 주고, 뜯을 때가 지난 상추도 알뜰하게 거두어 봤으면 좋겠다.

어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농사짓는 엄마를 따라 다녀서 농작물 밟지 말라고 일러주면 알아듣고

조심하고, 고랑 사이로 살금살금 다닐 줄도 알고 엄마하는 일 따라서 곧잘 흉내도 낸다는데

우리 막내는 어림 없다. 제 맘대로 다니려고 하고, 금방 싫증내고 제 가는 대로 오라고 나를 불러댄다.

세탁기 안에서 다 돌아간 빨래를 널지도 못하고 또 막내를 쫒아 달려나가고, 마루에 수북하게 걷어 놓은

빨래를 개키지도 못하고 또 어디론가 내빼는 막내 붙잡으러 뛰어 가는 게 일이다.

부엌일 좀 하려고 하면 살림의 반이 좁은 부엌 바닥에 나오는 걸 감수해야 하고, 그렇게 해도

금방 내 바짓가랑이 붙들고 안으라고, 나가자고 아우성이니 냉장고에 재료가 있어도 반찬 하나

제대로 못 해 먹고, 배가 고파도 밥 조차 제 때에 챙겨 먹지 못하며 살고 있다.



주말이 되면 남편과 나는 막내가 ‘엄마’ 부르면 ‘아빠한테 가야지!’ 하며 남편에게 떠밀고

남편은 ‘엄마 여기 있네~’ 하며 내게 데려오는 걸 반복한다. 남편은 아이가 내게 오면 재빨리

윗밭으로 달아나 버린다. 이제 좀 교대하자고 부르면 아래에 있는 토란밭으로 뛰어가 풀을

뽑기 시작한다. “일 내가 할테니 애 좀 봐!” 소리 질러도 쉬지도 않고 닭장 안으로 들어가

사료통 손 보고, 창고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 정리하고, 개 끌고 운동시킨다고 사라져 버린다.

그거 다 내가 해도 좋다. 정말 개나 끌고 저수지 한 바퀴 도는 여유, 내가 좀 누려보고 싶다.

맘 먹은 일을 뭐 한가지 마칠수도 없고, 늘 이거 찔끔 하다 달려가고, 저거 펼쳐 놓다가 달려가기

바쁘니, 정말 누가 애만 봐준다면 한 나절 노래 불러가며 밭일을 하겠다.

풀은 뽑은 자리마다 말끔해져서 일 한 표도 나고, 보람도 느낄 수 있어 흡족하지만

애 보는 일은 시작도 끝도 없고, 내 맘대로 멈출 수 도 없으니 이런 중노동이 없다.

매일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바위 덩어리를 내려다보며 다시 걸음을 옮기는 시지푸스의

심정이랄까.



막내를 갓 낳았을 때는 100일만 지났으면 하며 살았고, 100일 되었을 땐 첫 돌만 되면 하면서 살았는데

이젠 어서 두 돌이 지났으면 좋겠다고, 세 살이 되면 어느 정도 앞가림을 하지 않을까... 실낱 같은

기대를 하며 살고 있다.



나이든 엄마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막내...

그런데도 너무 너무 이쁜 요 개구쟁이 녀석...



그래도 정말 반 나절만, 아니 그저 한 두시간 만이라도 엄마 일 좀 하게 해주지 않을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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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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