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8f562f1c9d4791e4eff315bf88f2163. » 태어난 지 2주된 민지 모습. 엊그제 태어난 것 같은데 벌써 36개월이 됐다. photo by 양선아




 어린이집 차 보면 “쉬 하고 싶다” 던  딸

 ‘남친’ 생기니 “엄마 차 놓치겠어~”하네











4월12일은 민지가 태어난 지 정확히 36개월 된 날이다. 2.7kg의 작고 가녀린 아이가 벌써 13kg의 어여쁜 꼬마 아가씨가 됐다니...




사람이 태어나 세 돌만 지나도 감정이 생기고 자기 주관이 생기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난 것을 보며 새삼스레 생명의 위대함을 느낀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딸을 키우며 많이 웃고 많이 울었고, 부모의 마음이 뭔지 알게 된 것 같다. 3년 아이를 키웠지만, 심리적으로는 30년 아이를 키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3년 자식 키우고도 이렇게 딸이 애지중지 예쁘고 만감이 교차하는데, 30년이 넘게 내 옆에서 나를 바라보신 엄마의 마음은 어떨지... 더군다나 나는 무남독녀다. 오로지 딸 하나 바라보시며 이제껏 인생을 살아오신 엄마에게는 나는 어쩌면 엄마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한 다짐은 엄마께서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더 행복하게, 더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나 역시 딸이 행복하고 건강해야 행복한 것처럼, 우리 엄마 역시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랄 테니까 말이다.

 




원래 쓰려 했던 얘기에서 잠시 옆길로 샜다. 오늘은 36개월 된 딸이 어린이집에 적응하게 된 과정을 소개하려 한다. 민지는 지난 3월3일부터 어린이집 반일반에 다닌다. 동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다 민지에게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제공해주고 싶어 계획했던 것보다 좀 서둘러 어린이집에 보냈다. 요즘 민지는 오전 9시께 등원 차량을 타고 어린이집에 가 오후 2시 정도 집에 돌아온다. 사실 민지가 엄마에게 지나치게 집착해 하루종일 같이 있다 보면 내 숨이 막히는 것 같아 내 숨 쉴 구멍을 찾기 위해 어린이집에 보냈다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오전 시간만이라도 민규를 재워놓고 잠시라도 내 시간을 가져야 ‘미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밤새 민규에게 시달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에게 “놀아달라”고 떼쓰는 민지에게 난 많이 지쳐있었다.  

 

민지는 평소 아는 언니·오빠, 친구, 동생들이 집에 놀러 올 때면 자기 장난감도 양보 잘하고 두루두루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민지가 어린이집에 쉽게 적응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어린이집 가는 첫 주에 민지가 콧물감기와 열감기 등으로 많이 아팠을 때였다. 첫 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랑 잘 떨어져 ‘뿡뿡이차’(어린이집 등원차량 이름)에 잘 오르던 녀석은 다음날 열감기로 3일 동안 결석한 뒤 다시 어린이집에 가게 됐다. 열도 떨어지고 몸 상태도 좀 나아져서 첫 날처럼 잘 가주려니 생각했는데, 민지는 계속 불안감을 보였다. 

 

 “엄마, 어디 가야해?”

 “엉? 어린이집 가야지~”

 

‘어린이집’이라는 낱말을 듣자마자 민지는 울기 시작했다.

 

“민지야~ 어린이집 가면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율동도 하고 재밌잖아. 너 첫날 좋아했잖아~그런데 왜 울어?”

“엄마랑 있고 싶어. 엄마가 자꾸 보고 싶어. 집에서 놀거야~”하며 민지는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바쁜 아침 시간에 민지가 울며 밥도 먹지 않고 옷도 느릿느릿 입으며 늑장을 부리면 어린이집 차를 놓칠까 봐 내 맘도 급해졌다. 결국 난 민지에게 화를 내며 떠밀듯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곤 했다. 아침 시간에 민지랑 어린이집에 가네 안가네 하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어느 날엔, 남편이 화를 버럭 내며 민지 엉덩이를 팡팡 때려 혼낸 적도 있다. 아침부터 남편이 화를 내며 아이를 때리는 모습에 속상하고, 아이가 우는 모습에 속상하고, 내 속은 숯검정이 되는 것 같았다. 너무 어린데 괜히 나 편하자고 어린이집을 보내나 하는 죄책감과 이젠 4살도 됐고 종일반도 아니고 반일반인데 충분히 딸이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사이에서 내 감정은 줄타기를 했다.

 






8b0daa4e5d3c937848b553ca793abe5b. » 4살이 된 민지. 민지를 1년2개월 동안 키워주신 베이비시터 이모님께서 민지 생일 전날 케이크를 들고 방문하셨다.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는 민지를 보고 이모께서는 기특해하셨다. photo by 민지 아빠




어린이집에 가게 된 둘째 주 역시 날마다 울며 보채는 민지와 전쟁을 해야 했다. 민지의 불안감은 울음뿐 아니라 ‘쉬’가 마려운 증상으로까지 번졌다. ‘뿡뿡이차’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없다가 ‘뿡뿡이차’가 시야에 들어오면 그때야 “엄마, 나 쉬하고 싶어”하고 말하는 것이다. 처음에 이 증상이 나타났을 땐, 난 정말 민지가 ‘쉬’가 하고 싶은 줄 알고 차를 안 태우고 집에 데려와 유아용 변기에 앉혀 소변을 보게 했다. 그러나 웬걸~. 민지는 5ml로 안되는 오줌을 찔끔 싸고 “엄마 다 쌌어”하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때 느끼는 배신감이란...




딸은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것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니면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전까지의 불안감 또는 긴장감을 그런 방식으로 표출했을 수 있다. 나 역시 어렸을 때 긴장만 하면 화장실을 들락날락 했으니까 말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나는 웅변을 했었는데, 웅변 대회에 나가면 내 차례가 오기 직전에 꼭 화장실에 갔어야 했다. 그럴 때면 대회에 동반한 엄마나 이모는 “넌 오줌 줄이 왜 그리 짧으냐? 미리미리 화장실 들렀다 와야지 네 차례 직전 그러면 어쩌냐!”하는 핀잔을 하곤 했다. 또 중·고등학교 다닐 때 중요한 시험을 치러야 할 땐, 시험 시작 직전 꼭 화장실에 들러야 했다. 그런 경험을 한 나이기에 민지가 어린이집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민지는 둘째 주  내내 ‘뿡뿡이차’만 보면 ‘쉬’가 마렵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집에 데려가 오줌을 싸게 하고 날마다 어린이집에 직접 내가 데려다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나오기 직전 오줌이 마렵든 안 마렵든 무조건 변기에 앉혀 ‘쉬’를 보게 했다. 그리고 집을 나와서도 민지가 ‘쉬가 마렵다’고 말하면, 민지를 번쩍 들어 번개처럼 길옆으로 가 바지를 벗겨 오줌을 싸게 한 뒤(사실 오줌을 많이 싼 것은 아니다. 아주 찔끔 오줌 싸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번개처럼 ‘뿡뿡이차’에 오르게 했다. 베이비트리에서 ‘행복한 육아’를 쓰고 계시는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께서도 지난번 글에서 “엄마랑 떨어지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천천히 아이와 분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편이 좋다. 다만 헤어질 때 작별인사는 간단히 하는 편이 유리하다.”라고 밀하지 않았는가. 어린이집 등원 차량에 잽싸게 민지를 태우고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배웅하면서 울 틈을 주지 않았다. ‘쉬가 마렵다’고 해도 집에 다시 들어가지 않았더니 한 주 정도 지나니 민지는 어느 순간 ‘쉬가 마렵다’고 말하지 않았다.

 

둘째 주가 지나 셋째 주에 접어드니 민지는 조금씩 적응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날마다 어린이집 연락장에 민지의 상태에 대해 꼼꼼하게 적어 보냈고, 선생님께서도 그날 어린이집에서 민지가 어떻게 보냈는지 적어 보내주셨다. 셋째주 정도 되니 민지는 아침엔 울고 가더라도 율동 등 활동 시간에 들어가면 신이 나며 즐긴다고 했다. 민지는 원래 집에 있을 때도 하루 종일 동요를 부르곤 했는데, 어런이집에 가서 친구들과 율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니 얼마나 즐겁겠는가. 하루하루 민지가 달라지는 모습이 내 눈에도 보였다. 아침엔 울고 가도 돌아올 땐 웃으면서 차에서 내리는 날이 늘고 있었다.  

 

민지가 어린이집 차량에서 내리면 나는 누구보다도 민지를 반갑게 안고 맞아주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준비한 간식을 주면서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물었다. 특히 어린이집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같은 반 친구들 이름과 얼굴을 알아두고 친구들에 대해 물었다. “오늘은 00이가 어떤 머리를 하고 왔어?” “00 오늘은 밥 잘 먹었어?” “00는 눈이 크고 귀엽게 생겼더라” 등등 친구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궁금함을 표시했다. 민지는 엄마가 물어본 친구들에 대해 이것저것 대답하며 친구들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는 것 같았다. 또 민지가 어린이집에 배워 온 동요를 함께 부르며 “엄마가 몰랐던 노래를 민지가 알려줘서 너무 재밌다”고 말해주니 뿌듯해하기도 했다.




넷째 주 정도 되니 민지는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당연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내게 하는 말. “엄마~ 오늘 재밌었어~ 나 도훈이가 좋아~”하는 것이다. 민지 가방 속에서 얼른 연락장을 꺼내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봤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적어보내주셨다. 

 

“오늘은 한번도 울지 않고 내내 기분이 너무 좋았답니다. 밥 먹을 때도 울지 않았어요~ 민지를 좋아하는 친구가 생겨서 그 친구가 민지랑 노는걸 좋아해요. 민지도 싫지 않은 것 같아요. 조금은 더디더라도 하루하루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랍니다.”

 






kbs_0000037099.jpg » 어린이집에서 신문지 놀이를 하며 도훈이와 단짝이 되어 꼭 안고 있는 민지. `남친'이 생기니 어린이집에 즐겁게 간다. photo by 민지 선생님




민지를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생겼고, 민지도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됐다는 말이었다. 그날 이후 민지의 어린이집에 대한 호감도는 100%, 아니 200% 올랐다. 도훈이라는 짝꿍이 생기면서 민지는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어린이집 갈 준비를 하고, ‘뿡뿡이차’를 놓치겠다며 서둘러 문을 박차고 나가곤 한다. 어느날은 도훈이랑 소꿉놀이를 하고 와서 엄마에게 얘기해주고, 어느날은 도훈이랑 뽀뽀를 했다고 말해준다. 또 어떤 날은 도훈이가 볼을 꼬집어서 울었다고 말하고, 어느날은 도훈이가 놀아주지 않아서 속상해서 울었다고 말한다. 단짝 친구가 생기니 민지는 그 친구와의 일상에 푹 빠져 어린이집 가는 것을 너무 즐거워한다. 요즘은 밤에 잠을 자지 않으려 하거나, 아침에 일어나지 않으려 하면, “도훈이 보러 어린이집 안 갈거냐”고 말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정도다. 네살짜리 아이에게도 ‘사랑’은 마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 듯 하다.

 

민지가 단짝이 생기면서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너무 즐거워하니 나의 행복지수 역시 확 올라갔다. 딸이 즐겁고 행복해하니 즐겁고, 나 역시 민지가 어린이집 간 동안 잠시라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너무 좋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섭섭해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우리 남편이다. 딸이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말해줬더니 우리 남편 왈 “우리 딸이 아빠 이외에 다른 남자 좋아하면 안 되는데~”한다. 도훈이랑 민지가 뽀뽀했다는 날엔 우리 남편 화를 불끈 내는가 하면, 민지가 도훈이가 자기랑 안 놀아준다며 울었다고 말한 날엔 “남자 때문에 울었단 말이야?”하며 속상해 한다. 요즘 민지의 ‘남친 사랑’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민지의 ‘남친’을 질투하는 남편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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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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