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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글을 올리고 사실은 조금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남편이 혹시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일주일간 지방 출장을 가 있는 사이에 마누라가 남편이 ‘큰아들’이란 사실을 전국민에게

공개했으니 혹시나 있을 후한이 두려웠던 것이다. 글이 나가고도 며칠 동안 남편이 모른척 하기에

더 그랬다. 그래서 전화 말미에 “저기... 베비트리에 쓴 글 땜에.... 화난 거... 아냐?”' 물었다.

그랬더니 울 남편  “화는... 다 맞는 말이지” 하는 거다. 오호!! 소심한 마누라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는데, 지난 금요일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결연하게 선언했다.

“이번엔 정말 담배 끊을거야. 패치도 사왔고, 보건소에 금연 교육 등록도 해서 다닐께.

지금 가지고 있는 담배만 다 피우고...”

마지막 말이 걸리긴 했지만 남편의 입에서 이정도로 구체적인 금연 계획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지난주 글에 썼던 구름과자 이야기를 본인이 읽고 느낀 바가 컸나보다. 이거 정말 대박이다.



친정 아버지는 평생 담배를 피지 않으셨다. 술도 입에 대지 않으시다가 노년이 되어서야 가족 행사

가 있는 날, 와인 한 잔 즐기시게 된 정도다. 그런 아빠 밑에서 자란 나는  당연히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남편을 꿈 꾸었다. 울 친구들은 그런 남자를 구하려면 스님이나 목사님과 연애를

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놀렸지만 나는 기나긴 처녀시절 열심히 기도하며 그런 남자를 기다려왔다.

그래서 만난 남편은 다행히 술은 체질적으로 받지 않아 안 하는 사람이었는데, 아쉽게도

담배를 퍽 열심히 피우는 남자였다.

서른 일곱까지 총각으로 지내면서 결혼에 목말랐던 남편은 나와 짧은 연애를 하는 동안 결혼과

동시에 담배를 끊겠다는 약속을 했다. 순진하게 그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 서둘러 결혼을 했지만

남편은 차일 피일 금연을 미루기만 했다. 결혼 3개월만에 아이를 갖자 남편은 약속했다.

“첫 아이 낳으면 정말 금연이다!!”



결혼 1주년이 되는 달에 금덩이 같은 아들을 낳아 주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던 남편은 조산원에서 열흘간 조리를 하고 집에 돌아오자 금연을

선언했다. 그 해 연말까지 담배를 끊겠다는 것이다. 끊을려면 당장 끊지 연말이라니...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12월 31일 밤 남편은 정말 결연하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새해가 되자 담배를 안 피우는거다. 혹 직장에서 피우는 거 아니냐고 의심을 하기는 했지만

집에서라도 안 피우는 게 어디냐고, 남편을 믿어보자고 나를 다독이며 남편을 격려했다.

금연이 힘드려니 하며 주말 낮잠도 봐주고, 간식거리도 열심히 준비했다. 남편은 정말 담배를

피지 않았다. 그렇게 열흘 정도 지나갔다. 남편의 단호한 의지와 노력에 진심으로 존경을 보내려는데

그때부터 왠지 남편이 집에만 오면 자꾸 밖을 나가려는 것이다.

“차 문을 안 닫고 온 것 같애” , “자동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라. 확인 좀 하고 올께”

이런 말들을 자주 했다. 차에 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는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어느 추웠던 주말, 남편이 또 차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 나는 베란다에 서서 주차장에 있는

우리 차를 바라보며 남편의 모습이 보이나 기다렸다.

잠시 후 나타난 남편은 우리 차 쪽으로 걸어오는가 싶더니 그냥 지나쳐서 나무 아래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희미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게 보였다. 12층 위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조금 있다가 다시 나타난 남편은 아마도 담배 연기를 빼기 위함이었는지 추운 주차장을

몇 번이고 왔다갔다 하며 겉옷을 털어대고 머리카락을 털어대고 있었다.

세상에나... 순진하게 남편의 말을 모두 믿었던 내 자신을 탓하며 맹렬한 배신감을 느끼다가

남편이 갑자기 불쌍해졌다. 얼마나 피우고 싶었으면 그 추운 날에 자동차를 핑계로 나가서

저렇게 애를 쓰냐 말이다.

결국 금연은 실패했다. 남편은 내가 눈치 챘다는 것을 알고 대번 사과하며 둘째 생기기 전엔

꼭 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07년 둘째를 낳고도 남편은 금연을 못했다.

그해부터 남편의 부서가 바뀌어서, 1년 중  9개월은 지방 출장을 다녀야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남자들만 우글우글한 건설 현장을 다니면서 하는 업무는 늘 담배를 입에 물게 했던

모양이다. 주말에만 얼굴을 보게 되니 주중에 얼마나 담배를 피우는지 알 수도 없었고

새로 바뀐 일과,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 금연을 강하게

권하기도 어려웠다. 남편의 금연은 또 유야무야 지나가 버렸다.

형님의 말을 들으니 큰 딸이 유치원에 다니면서 유치원에서 하는 금연 교육을 받고 집에 온 날

아빠를 보자마자 “담배 피우면 아빠가 일찍 죽는대. 아빠, 일찍 죽지마” 하고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첫 아들 얻고도 담배를 끊지 못했던 아주버님은 어린 딸의 닭똥 같은 눈물을

보고 담배를 끊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서방님도 두 딸 키우며 담배를 끊었다.

3형제 중 담배를 피는 사람은 신랑뿐이다.

둘째로 낳은 딸을 어서 키워서 아빠 담배 끊으라는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싶었다.



2010년 1월 드디어 셋째까지 태어나자 나는 다시 남편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온가족이 한방에서 자는데 아빠 때문에 어린 아이들까지 간접 흡연의 피해를 입게 할 거냐고

압박했다. 여덟살 큰 아이과 네살 둘째도 아빠가 퇴근했다가 은근슬쩍 현관문을 나서려고 하면

“아빠, 담배 피우러 가지!” 하며 온 아파트 다 들리도록 큰 소리를 치곤 했다. 큰 아이는

아빠를 따라 뛰어 나가며 잔소리를 해댔다. 둘째 아이는 “아빠, 담배 피면 건강에 안 좋은 거,

몰라요?” 하며 따지곤 했다. 그러더니 요즘 들어 긴 물건을 입에만 대면 “나, 담배 핀다요” 하며

손가락 사이로 물건을 쥐고 빠는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큰 아이도 이맘 때 그런 놀이를 했었다.

남자아이가 흉내 내며 노는 것도 속상했는데, 딸 아이가 빨대를 입에 물고 담배 피는 흉내를

내니 정말 심란하고 맘 상한다. 9개월 막내도 벌써 한 달이 넘게 기침을 달고 사는데 이 모든 게

다 남편 탓인 것만 같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나는 결심을 하고 큰아들의 만행을 온천하에

알리게 되었다. 글 말미엔 ‘결혼 전의 금연 약속을 지켜 큰아들에서 남편으로 돌아오라!!’고

공개적으로 외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출장을 가 있던 곳에서 내 글과, 그 밑에 달린 열화 같은 공감의 댓글을 읽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이들 앞에서 마침내 금연을 선언했다. 마누라에게 약속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선언이었다.

그렇지. 나도 남편보다는 아이들이 더 무섭지 않던가. 어린 자식들에게 거짓말 하는 엄마로

보이는 것만큼 겁나는 일도 없다. 남편도 아빠의 체면을 걸고 결심을 한 모양이다.

금연 패치에 보건소 금연 클리닉 등록이라...

나는 큰아들의 이 놀라운 변화를 다시 전국민에게 알려야겠다는 강한 의무감을 느꼈다.

(전국민의 호응과 압박이라면 설마 물러터진 남편도 이번만큼은 자기가 한 말을 저버리기가

어렵겠지? 하는 흐믓한 계산이 있는 건 물론이다.)

가지고 있는 담배만 다 피우고 끊겠다는 말이 상당히 불안하긴 하지만 (설마, 몇 박스 사 놓고

이런 말을 한 건 아니겠지...) ‘베이비트리’에 공개한 이상 본인도 물러서긴 어려울 것이다.

으하하... <한겨레>가 이렇게 든든한 빽이 될 줄 몰랐다.

다이어트를 선언하고 ‘베비트리’에 감량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여 큰 성과를 이룬 김미영 기자님의

업적을 이어받아 나도 큰 아들의 금연 선언을 다시한번 독자들에게 공개하며 성공 여부를

낱낱이 중계할 것을 엄숙하게 다짐하는 바이다.



큰 아들이여... 남편의 자리로 돌아오라.

담배와 헤어지면 그날부터 ‘남편님’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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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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