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것을 싫어한다. 군에 입대해 기본군사 훈련을 받던 훈련병 시절 일요일 종참(종교 참여의 준말) 시간. 많은 동료들이 초코파이와 콜라를 찾아 개종을 시도할 때도 난 신을 믿지 않는다는 내 신념을 지키며 혼자서 내무실을 지켰다. 달콤함의 유혹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던, 단것이 들어가면 속이 느글느글해지는 위장이 나의 종교적 신념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미니미(또는 붕어빵)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김성윤은 조금 다르다. 초콜릿 성분의 달콤함에 푹 빠져버린 것. 다른 아이들보다 과자보다는 떡을 좋아했던 녀석이기에 정확히 언제부터 달달함을 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녀석은 말문이 트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 핸드폰 단축번호를 눌러 식구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초.코. 사.다.주.세.요.”






녀석의 부정확한 발음을 외할머니는 다시 통역해주셨다. 녀석의 애교에 식구들은 모두 넘어갔고 집안에는 초코 제과가 제법 쌓였다. 과자로는 빼빼로와 촉촉한 초코칩, 초코송이, 빵으로는 초코도넛이 녀석의 선호 아이템이었다. 심지어는 초콜릿 과립이 들어있는 굵은 빨대를 이용해 흰 우유도 초코우유로 변환시켜 섭취했다. 물론 녀석의 당분 섭취가 지나친 수준은 아니었지만 밥을 적게 먹는 건 여전히 걱정거리였다.






그러던 차에 지난주 화요일 어린이집 부모특강에 참여했다. ‘부모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에서는 여러 문제가 다뤄졌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방송됐던 아이의 편식 문제가 가장 인상 깊었다. 3년 동안 과자를 밥으로 먹었다는 다섯 살 아이에게 전문가들은 식사에 대한 보상과 모델링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밥을 먹으면 과자를 주겠다는 ‘당근과 채찍’ 방식으로 아이를 가까스로 밥상으로 이끌었다. 또 또래의 밥 잘 먹는 아이를 불러 모방 심리를 자극하는 게 모델링 방법이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당근과 채찍’ 방식은 일찌감치 녀석에게도 적용했었고 나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밥량이 적은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모델링 방식으로 녀석의 밥량을 늘리면 좋겠지만, 모방 대상이 마땅치가 않았다. 아침식사를 녀석과 내가 함께 하지만 나는 사실 아침을 녀석보다 적게 먹는다. 밥보다 잠이 절실했던 학창 시절부터 오전을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아침식사 시간을 최소화했고, 그 버릇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난 입맛도 저렴하고 먹는 문제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성윤이의 떨어지는 식욕이 모두 아빠를 닮은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내는 그런 녀석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어린이 전문 한방병원을 찾아 밥 잘 먹는 약을 지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 동안에 함께 약을 먹였는데 녀석은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랬는지 약 먹는 것도 힘들어했다. 한 달이나 약을 먹였는데도 녀석의 식욕은 증진되지 않았다. 아내는 지난 주말 녀석을 데리고 한방병원을 찾았다. 녀석의 상태를 점검하고 애초 두 달 치 결제했던 약값을 환불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약값을 환불받지 못하고 처음 계획했던 대로 약을 한 달 더 먹이기로 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두 달이 목표였다, 아이가 힘들어해도 시간을 두고 먹는 것보다 한 번 먹기 시작했을 때 계속 먹는 게 좋다고 하는데 환불받기가 쉽지가 않더라고. 어린이 한방병원은 부모 심리를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안 좋은 거 같아.”








dce53aadb65308bcbf9704c756b34d80. » 예식장에서 녀석은 달콤한 조각케이크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게 밥 잘 먹는 약을 한 달 더 먹기로 한 그날 점심 때 녀석을 데리고 예식장을 찾았다. 각종 음식이 즐비한 뷔페식당에서 녀석은 조각케이크로 먼저 입맛을 달랜 뒤 자장면 한 그릇을 비우고 호박전도 3개나 먹었다. 오랜만에 폭풍 식욕 작렬! 식사를 마친 뒤에는 이제 후식을 먹어야 하는 시간. 녀석은 조각케이크 위에 얹혀있는 조그만 지팡이 모양의 초콜릿만 손으로 살짝 집어 입에 넣었다. 초콜릿 장식이 사라진 볼품없는 조각케이크가 접시를 가득 채웠다. 나와 아내는 의도하지 않게 조각케이크를 디저트로 먹어야 했다.    






녀석의 '식탐'은 귀갓길에도 멈추질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마트에서 녀석은 시식코너의 만두에 필이 꽂혔고 아내와 나, 장모님까지 돌아가면서 튀김만두와 물만두를 이쑤시개로 부지런히 공수해 녀석의 입에다 넣어주었다. 집에 와서도 녀석은 갑자기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아내가 끓인 만둣국에 밥까지 말아 한 대접을 비웠다.

녀석은 일요일 아침에도 가장 먼저 일어나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카레라이스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밥 잘 먹게 한다는 약발이 드디어 먹히기 시작한 걸까. 녀석, 어찌됐든 참 호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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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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