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가을맞이 캠핑을 다녀왔다. 우리는 초보 딱지를 겨우 뗀 2년차 캠퍼 가족이다. 

부르릉~… 

남편은 시동을 걸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남양주의 한 캠핑장. 나의 서툰 운전으로 군데군데 긁힌 자국이 있는 낡은 차의 트렁크에는 테트리스 게임의 블록 맞추기처럼 캠핑 용품을 남편이 차곡차곡 빈틈없이 채운 덕에 엔진은 평소보다 더 힘을 쓰느라 묵직한 소음을 낸다. 이윽고 고속도로에 접어들고, 시각 자극을 탐닉하는 아이는 휙휙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에 신이 났다.


사실 나는 등산을 제법 오래, 심각하게 다녔으므로 텐트를 치고 자연의 품에 안겨 자는 야영에 익숙하다. 내게 캠핑이란, 등산 또는 트레킹을 하다 날이 저물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때 자연 속에서 쉬는 것이었다. 간단히 먹고, 불편해도 간단히 자고, 날이 밝으면 아무 흔적 없이 묵은 자리를 치우고 다시 길을 떠나기까지의 시간. 그러나, 처음 오토 캠핑장에 갔을 때 그 풍경은 내가 경험한 야영과는 달리 사뭇 낯설었다. 캠핑장은 그저 하나의 마을이었다. 옆 텐트의 메뉴가 뭔지 흘깃 곁눈질 한 번으로 다 보이고, 무슨 얘기하는지도 다 들렸다. 층간소음에는 진저리치면서도 나의 모든 소리와 옆집의 소리가 경계 없이 뒤섞이는 캠핑장은 처음 낯선 시간과 약간의 불편함만 견디어 내면 묘하게 매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사람의 체취가 그리웠던 것이 아닐까. 텐트 사이 공간에서 뛰노는 아이들, 음식 냄새, 웃음 소리, 불피우느라 장작 준비하는 남자들의 모습… 오감이 열린다. 사람들의 체취가 정겹다. 눈빛이 마주치면 어색하게나마 미소짓고 목례하며 소통한다(그러다 밤이 되면 음식도 나누어 먹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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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캠핑장은 이미 가을  - 레이가 찍은 사진.

캠핑하면서 흘러가는 일상은 소박하고 평화로왔다. 누군가 캠핑의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가족이 가족 본연의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이라고 답하겠다. 사내는 집을 지은 후 불을 피우고, 아내는 밥을 짓고 아이는 그 옆에서 막대기로 땅에 그림을 그리며 논다. 새가 찾아와 앉으면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며 인사도 하고, 나무 그늘 아래 해먹을 걸고 흔들흔들 누워 하늘에 둥실둥실 떠가는 구름을 본다.


아무 근심이 없다. 집을 어지른다고 야단칠 일도 없고 하루를 끝낸 후 허전한 마음에 냉장고를 뒤적이며 뭔가 더 먹을 걸 찾을 일도 없다. 월급이 적다고 아이 아빠를 원망할 일도 없다. 공부 안 한다고 아이를 야단칠 필요도 없다. 텐트를 치고, 테이블을 펼쳐주는 아빠는 믿음직할 뿐이고, 나무를 어루만지며, 지렁이와 나비를 신기하게 들여다보는 아이의 모습은 어여쁘기 그지 없다. 특히, 레이는 캠핑이 아주 체질인 듯 했다.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불안해하며 나가자고, 차 타고 집에 가자고 했으나, 캠핑장에서는 놀랍게도 무척 편안해했다. 하늘이 바로 보이고, 벽이 없으니 엄마 아빠가 뭐하는지 잘 보이고, 텐트 안은 작고 아늑하기 때문이겠지. 그렇게나 싫어하는 기계 소음도 없고, 위협적으로 휙휙 지나가는 오토바이나 자동차도 없으니 편안한 게지. 그렇게 편안히 1박2일을 보내고 가면, 치료 선생님들께서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아이가 기분이 좋고 안정되어 있어서 배우는 내용을 잘 수용하고 집중력도 높다고.


캠핑이 준 가장 경이로왔던 경험은 2014년 9월초,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 안면도의 캠핑장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나는 끝이 안보이는 아이의 치료에,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예민한 감각 때문에 힘들어하는 레이를 돌보는 일에 많이 지쳐 있었다. 치료실 안에서 했던 말이나 행동이 완전히 일반화되어 실생활에서 나오기까지 한두달이 걸리는 걸 알고 있음에도, 몸이 지치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자꾸 조바심이 났다. 오늘은 이런 말을 했다고, 질문하기를 연습했다고 하면, 나는 네, 그렇군요, 대답하고 일상 생활에서는 언제 그런 말을 할까, 과연 하기는 할까 의심과 불안에 점령당한 채 전전긍긍했다.  


안면도 솔숲 언덕 위의 캠핑장에서 약간 가파른 듯한 오솔길을 조금만 내려가면 바다였다.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시원했다. 아이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 낙조를 보았다.


“레이, 하늘하고 바다가 빨갛지? 해님이 바다 속으로 자러 가면서 인사하는 거야..자, 안녕하자~ 안녕~” 


손까지 흔들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이는 그저 붉은 노을에 시선을 둘 뿐, 내 얘기를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텐트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로 했다. 날은 이미 깜깜했다. 손을 잡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아이가 멈춰섰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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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캠핑장, 별.

 

“엄마, 저게 뭐에요?”

아아. 얘야.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았구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응, 반짝반짝 예쁘지? 저건 별이야, 별.”

“별…”


아이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나는 가슴이 벅차고 뻐근해졌다. 아이가 질문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 엄마에게 질문을 했다. 만 네 살하고도 3개월. 첫 질문을 했다. 레이가 내게 질문하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뭐든 물어만 보면 절대 귀찮아하지 않고 대답해 줄거라 수없이 다짐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첫 질문의 순간을 맞이했다. 레이는 이 순간을 당연히 금방 잊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내 생애 가장 감격적인 순간으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기억할 것이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유년기는 아이 당사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부모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풍성한 경험과 행복을 안겨주는, 아주 특별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을 시작했으니 레이는 빼꼼히 세상을 향해 조그만 창을 스스로 열었다. 그것도 어여쁘게 반짝이는 별을 향해. 이 작은 창은 오래지 않아 세상을 향해 더욱 크게 열릴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자연의 치유력. 또는 아이가 지닌 놀라운 성장의 힘.


“별을 알았으니 이제 꿈을 키우겠네요.”


이 얘기를 들은 지인이 말했다.

나는 감동했다. 어쩌면 내게, 내 아이에게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단어, ‘꿈’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왔다. 그래, 아가, 너는 이제 별을 보며 꿈꾸는 소년으로 자라겠구나. 네가 크면 얘기해주마. 네가 엄마에게 한 첫 질문은, 별을 보고 뭐냐고 물은 거였다고. 별이 네 눈동자에 비쳐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고.


우리는 당분간 열심히 캠핑을 다닐 것이다. 냉장고를 탈탈 털어 아이스박스를 채우고, 점점 무거워지는 짐에 힘겨워하는 낡은 차를 몰고 털털거리며 틈나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닐 생각이다. 이번에 갔던 가을맞이 캠핑에서는, 나무에 올라간 아이의 발목을 잡아주고, 같이 강물에 돌던지기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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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강물에 돌멩이를 던지는 레이

서로 먼저 해먹을 타겠다고 투닥거리는 레이와 꼬마들을 말리고, 어둑한 저녁에 같이 손바닥을 벌려 모닥불을 쬐고, 이른 아침 아이 손을 잡고 강가를 거닐며 물안개를 감상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캠핑의 모든 순간은 자유롭고 특별하다. 자연 속에서 보내는 그 순간이 쌓여 레이는 어느 순간 또 자라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인 나도 조금은 더 자라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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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캠핑장 아래 강물(?)의 이른 아침 물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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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가다
다이나믹한 싱글생활을 보내고 느지막히 결혼하여 얻은 아들이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고 생애 가장 큰 절망을 경험했으나, 천천히 나무가 자라듯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에 벅찬 환희를 느끼는 일이 더욱 많다. 남과 다른, 심지어 자신과도 다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매일매일이 도전이고 시행착오이지만, 모든 걸 일상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면 할만하다는 자신감으로 오늘도 씩씩하게 살고 있다. 말도 많고 오해도 많으나 실제 일상 생활은 알려지지 않은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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