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살 수 있는 집, 그것도 그림 같은 전원주택은 누구에게도 치명적인 유혹이 아닐 수 없다
. 우리에게 그런 기회가 왔다. 양평의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지인이 사정이 생겨 서울로 나오게 되면서 그 집이 비게 된 것이다. 당분간 이 집에서 살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 집은 그냥 평범한 전원주택이 아니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정원과 연못, 문전옥답이라고 부르는 텃밭, 그리고 잘 지은 2층집과 황토로 만든 사랑채까지 붙어 있는 우리에게는 저택에 가까운 집이다.


물론 조건이 없는 건 아니었다. 들어와 사는 동안 드넓은 정원과 텃밭을 관리해야 하고, 강아지 두 마리를 보살펴야한다는 것. 가끔씩 놀러오는 손님에게 2층을 내줘야 한다. 그러나 그건 우리에게 조건이 아니라 차라리 혜택에 가까웠다. 우리는 호시탐탐 귀농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꽃, 나무 가꾸고, 텃밭 일구는 걸 좋아하고, 동물도, 사람도 좋아하니 내가 생각해도 우리가 딱 적임자였다.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당장이라도 이사갈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가 우리 발목을 잡는가?


7d8b1eb3d725101390b8967ced0c17f6.일단 금요일 저녁, 밥상 공동체부터 '문제(?)'다. 우리는 금요일 저녁마다 가정예배 모임에 참석한다. 현재 대여섯 가정이 참석하고 있다. 돌아가며 호스트를 맡는데, 호스트 가정에서 메인디쉬를 준비하면 게스트들이 하나씩 준비해가는 포트럭(potluck : 여러 사람들이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 와서 나눠 먹는 식사 ) 파티 형식이다. 그래서 금요일 날 저녁은 반찬 하나만 만들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이 모임은 일주일을 정리하게 만든다. 돌아가면서 한 주 동안 있었던 일, 감사할 일, 고민들을 나누는데, 부부문제, 시댁, 처가와의 갈등, 아이들 문제, 직장문제… 어디 가서는 정말 어려운 이야기들이 허물없이 오고 간다. 이렇게 얘기하고 듣다 보면 나를 객관화하게 되고, 평소 알지 못했던 남편의 고민도듣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지혜를 발휘하는가를 배우게 된다. 나는 여기서 우리 아이 옷가지며 책을 공급받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더 없이 가깝고 친밀한, 그야말로 이웃사촌이 되어버렸다.

121b430d1fa06b3618acc8c5c21fd43f.토요일 텃밭 공동체도 한 몫 단단히 했다. 토요일은 하루 종일 밭에 가서 살다시피 한다. 눈 뜨자마자 나가서 어둑어둑해져야 겨우 돌아온다. 우리 밭은 다섯 가족(싱글 포함)이 함께 일한다. 같이 땀 흘려 일하고, 일하다 막걸리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밥 먹으면서 본격적으로 한판 수다의 장이 펼쳐진다. 나이도 직업도 라이프스타일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얘기가 너무 잘 통한다. 농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집집마다 뭘 먹고 사는지 밥상 이야기, 옛날 이야기, 나가수와 무한도전 이야기까지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우리가 이렇게 떠들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 흐르는 개울가에서 설거지하면서 논다. 언니가 없는 우리 딸은 여기서 언니를 만났고, 동생이 없는 이룸이(신순화님 막내딸이랑 동명이인^^)는 우리 딸을 동생처럼 챙긴다.


일요일에 만나는 친구도 걸린다. 일요일 오전 예배가 끝나면 우리는 친구네 가족과 (브)런치를 먹으러 간다. 친구는 난민 여성을 위해 일하고, 남편은 난민 변호를 주로 하는 인권변호사로 일하는데, 우리와 관심사가 비슷해서 그런지 죽이 잘 맞는다. 나는 가끔 안팎으로 너무 바쁜 친구 부부를 위해서 아이를 맡아 주기도 하고, 친구는 시골에서 올라오는 감자며 김치를 나누어준다. 나는 그 집 딸을 조카처럼 예뻐하고, 친구는 옛날 짐을 뒤져 옷이며 장난감이며 책을 우리 아이에게 물려주곤 한다.


097741d99682b58cc1710fdb3d54b1a2.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난 후 월요일과 화요일은 비교적 조용하게 보내는 편이다. 월요일에는 아주 건전하게(!) 아이와 함께 동네 도서관에 간다. 동네 도서관은 우리 집에서 아기 걸음으로 10분 거리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공원이 있어서 아이와 산책하기에 딱 좋다. 특히 여름에는 집에 에어콘이 없으니까 도서관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 시원하고 책도 마음껏 보고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수요일에는 생협 모임에 간다. 하나는 마을모임이고, 하나는 스터디 모임이다. 생협 모임이다보니 엄마들과는 주로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은 '친구'라고 할 만큼 친하지는 않지만, 모이면 먹거리 얘기에서부터 부부, 육아,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고간다. 가끔 반찬도 같이 만들고, 밥도 같이 먹고, 음악회에 같이 가기도 한다. 요즘엔 혼자 음식하는 게 힘드니 반찬을 같이 만들어 먹자는 이야기가 한창이다.

5aa992b323c833735f3b6066cab57880.목요일은 농부들과(도시농부학교) 어울린다. 목요일 저녁마다 강의가 있는데, 진짜 학교는 뒤풀이에서 열린다. 뒤풀이에서 농사와 먹거리 이야기로 건전하고 점잖게(!) 시작하여 주말에 밭에 가려면 주중에 잘 봉사해야 한다는 둥, 뒤늦게 막내 하나 더 낳자고 부인을 조르고 있다는 둥, 누군가 돈 주고 때를 밀었다고 하니, 누구네 집은 부인이 등때를 밀어준다는 둥 더 건전하고 야시시한(?)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나온다. 나는 남편이 농사를 지어서 그런지 쓸데 없는(?) 에너지가 넘쳐서 귀찮아 죽겠다고 말했다가 요즘 내내 놀림을 당하고 있다.



오다가다 반찬 떨궈주거나 밥 사준다고 불러내는 언니와 선배가 가까이에 살고,  뭔가 답답하고 갈증이 나면 달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단골 커피숍이 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우리 발목을 잡고 있었다. 언제든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노마드 인생을 살던 나에게 정주 개념이 생겨버린 거다. 이 지역에 대한 애정이 새록새록 생겨나고, 쉽게 떠날 수 없는 확대가족이 주렁주렁 생겼다. 그래서 나뭇꾼도 아이 셋을 낳으라고 했나보다. 함께 할 사람이 많으니 떠나기 어려워진다. 꼭 이 문제만은 아니었지만, 결국 우리는 떠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가끔 그 집이 눈에 아른 거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지금 여기서! 살기로  했다. 밥, 막걸리, 수다를 나누는 사람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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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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