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과 침대 위 영역다툼을 벌인 지 이미 오래였다.(http://babytree.hani.co.kr/archives/8835 참조) 지난 여름, 수면독립을 추진했지만 녀석의 완강한 거부로 무산됐고, 침대 위에서 엄마와 아빠 베개를 또 침대 삼아 잠을 청하는 녀석의 ‘횡포’는 계속 됐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서 녀석의 다리는 쑥쑥 길어졌다. 이젠 인간 38선 정도가 아니라 서해상에 그어진 북방한계선처럼 녀석의 자세는 위압적이었다. 아내와 나는 베개를 포기하고 칼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난 한 주 녀석의 잠버릇에 일대 변혁이 있었다. 미완의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는 일주일의 기록을 요일별로 정리해보았다.

 

 








26b949b18afd4b0ae77a89b13d41979f. » 잠들기 전의 모습






    월요일  

    육아일기를 새벽에 마감하니 몹시 피곤했다. 퇴근을 비교적 일찍 했다. 밤늦도록 놀고 있는 아내와 녀석을 신경 쓰지 않고 이례적으로 먼저 잠자리에 누웠다. 눈치를 살피던 아내가 온 집안 불을 끄고 녀석을 침대에 눕히고는, 녀석에게 한마디 했다. “성윤아, 아빠 엄마처럼 이렇게 바르게 누워서 자야지. 그럴 거면 밑에 바닥에서 자.” 그러자 녀석은 갑자기 방바닥으로 내려가더니 그대로 엎드려버렸다. 아내가 물었다. “성윤이 바닥에서 자고 싶어요?” “네~”. 엄마 잔소리에 대한 반항인가? 반항이 아니었다. 아내는 바닥에 담요를 깔았고 녀석과 함께 기분 좋게 누웠다. 이 넓은 침대가 다 내 차지라니... ‘올레~’.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꿀잠을 잤다.

 

 화요일

 올해 마지막 송년회 자리가 있었다. 종로에서 12시30분이 끝났는데 택시를 잡는 데 1시간30분이 걸렸다. 집에 오니 새벽 3시. 녀석은 어제와 달리 제 엄마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었다. 오래전부터 그러했듯이 녀석과 등을 지고 침대에서 칼잠을 잤다.

 

 수요일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 언제나처럼 집안 소등을 주도하고 취침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번에도 녀석이 바닥에서 자겠단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녀석에게 물었다. “성윤아, 엄마랑 자고 싶어, 아빠랑 자고 싶어?” 녀석의 입에선 뜻하지 않은 대답이 터져나왔다. “압빠~.” 난 꼼짝없이 바닥으로 내려가야 했다. 아빠를 좋아하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음... 허리가 좀 아프다.

 

 목요일

 아내가 친구를 만나고 늦게 들어온다고 했다. 녀석은 또 바닥에서 자자고 했다. 아내가 없으니 녀석과 바닥에서 잘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날이 추워졌는데 오랜만에 체험하는 온돌방 느낌이 괜찮다. 그렇게 또 자 버렸다. 아내가 들어온 소리도 듣지 못했다.

 

 금요일

 아내는 오늘도 송년회다. 난 공교롭게도 이번 주 송년회 약속 2건이 취소됐다. 직장 다니랴 학교 다니랴 바쁘게 살았던 아내에게 연말을 즐기라고 했다. 씻지도 않고 녀석과 방바닥에서 자다가 이번엔 새벽 1시에 눈이 떠졌다. 아내도  지하철 막차를 타고 그 시각에 귀가했다. 샤워를 하고 침대로 올라갔다. 침대에는 엄마와 아빠가, 방바닥에 녀석이 자는 아주 건전한 구도였다. 아침에 녀석은 눈을 뜨고 침대로 올라올 게 틀림없다. 그런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이 됐다. 바닥에 있던 녀석이 부스럭거린다. 녀석은 침대 쪽은 보지도 않고 방 밖으로 나갔다. 나는 벌떡 일어나 녀석을 따랐다. 밤새 기저귀를 채웠는데 그걸 모르고 변기에 그냥 앉아 소변을 볼 수도 있었다. “성윤이, 오줌 마렵구나.” 나는 녀석의 기저귀를 제거해주고 변기에 앉혔다. 눈 뜨자마자 엄마 아빠보다 변기를 먼저 찾다니. 기특했다. 이거 수면독립 만세다.

 

 토요일

 오늘도 어찌하다 보니 바닥 신세다. 이렇게 가다 보면 아내가 침대를 독점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래도 이젠 괜찮다. 허리도 별로 아프지 않다. 오히려 허리 건강에는 푹신한 매트리스보다 딱딱한 방바닥이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고 자위해본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새벽녘 녀석의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녀석은 악몽을 꾸었는지 자지러지게 울었고 내게 안겼다. 녀석을 안아주다 다시 바닥에 눕혔지만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녀석은 침대로 올라갔다. 언제나 그랬듯이 녀석은 엄마 아빠의 베개를 침대 삼아 몸을 가로로 뉘었고 이불을 차내 버렸다. 추운 날 악몽까지 꾼 녀석을 바라보며 가슴팍을 토닥여주며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녀석은 다리로 내 목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녀석을 등지고 누웠다.

 

 수면독립이 완성된 것처럼 보였지만 녀석은 토요일 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쉽지만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라 믿고 싶다. 독립의 그날, 언젠간 올 것이다. 머지않았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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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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