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84deee97f9a4388a74ccc3e43a53567. » 주먹밥 만들고 있는 민지 모습. 혼자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photo by 양선아



장면 1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한 봄, 민지와 함께 외출 준비를 하고 있다.

 

 나: 민지야~ 날씨 너무 좋다~우리 뭐 입고 나갈까?

 민지: (아주 두꺼운 털 조끼를 가리키며) 엄마 나 이거 입고 나갈거야.

 나: 정말? 한겨울도 아닌데. 너무 더워~이거 말고 (얇은 옷 가리키며) 이거 입자.

 민지: 싫어. 싫어. 나 이거 입고 나갈거야~

 나: 남들이 욕해. 이거 입고 나가면. 다 봄옷 입고 다니는데 너만 겨울옷 입고 다니면 뭐라 하겠니? 이거 입어. 이렇게 더운날 털 조끼를 입으려 하니 넌!

 민지: 싫어. 나 이거 입을거야.

 나: 안돼. 이거 입어. 엄마 말 들으라 했지? 엄마 말 안 들으면 안 데리고 나갈거야! (결국 울면서 엄마가 입으라는 옷을 입고 나갔다)

 



장면 2

 

외출하는데 현관 문 앞에서 신을 신으려 하고 있다.

 

 나: 민지야~신발 신자~ 우리 청바지 입었으니까 운동화 신을까?

 민지: (구두 가리키며) 나 이거 신을 거야. (구두를 신는다)

 나: 민지는 그 구두가 좋구나~ 엄마는 이 옷엔 이 운동화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민지: 난 이 구두가 좋아. 나 이거 신을거야.

 나: 그래그래. 그럼 오늘은 이거 신고 나가자~ 그런데 민지야~ 운동화 신고 나가면 놀이터 가서 더 신나게 놀 수 있을텐데... 구두 신고 나가면 아무래도 불편할 거야. 그래도 괜찮은 거지?

 민지: 음..... 그럼 구두는 치마 입을 때 신는 거야?

 나: 응. 치마엔 구두 신으면 더 이쁘지~

 민지: 바지 입었으니까 그럼 운동화 신고 나갈까? 그래 그러자~(운동화로 갈아신고 즐겁게 외출했다.)

 

 

장면 3

 

 민지: 엄마~나 주먹밥 먹고 싶어요~

 나: 밥 먹다가 웬 주먹밥? 주먹밥 엄마가 내일 만들어줄게. 오늘은 그냥 먹자.

 민지: 나 주먹밥 먹고 싶어~ 잉잉

 나: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민지: 엄마~주먹밥 내가 만들거야. 참기름도 넣고 이렇게 이렇게!!

 나: 엄마가 만들어줄게. 네가 어떻게 만들어~

 민지:(주먹밥 만들려고 있는데 민지가 손을 쑥 넣으려하며) 나도 하고 싶어~내가 주먹밥 만들거야~

 나: 엄마가 만들어준다고 했지!! 손에 기름 다 묻히고 안돼!! 엄마가 빨리 만들어 줄테니까 기다려~(민지는 주먹밥 만들고 싶다며 울고 나는 재빨리 주먹밥을 주물주물 만들었다) 자 어서 먹어~

 민지: (몇 개 주먹밥 먹다) 나 그만 먹을래... 배불러요...

 나: 너! 주먹밥 먹고싶다더니 이게 뭐야!! 다음부턴 주먹밥 안만들어준다!!

 



장면 4

 

 민지: 엄마~나 주먹밥!

 나: 민지 주먹밥 먹고 싶어? 그래 그럼 엄마가 만들어줄게~

 민지: 엄마, 주먹밥 내가 만들 거야!

 나: 진짜? 민지가 주먹밥 만들고 싶구나~그럼 민지 손 씻을까? 손을 씻어야 주먹밥 만들지~

 민지: 엄마! 나 손 씻었어요. 내가 만들게요~

 나: 그래. 엄마가 주먹밥 재료 넣어줄테니까 민지가 한번 맛있게 만들어봐. 얼마나 잘 만드는지 봐야겠다~

 민지: 네~~~~~(엉성하게 밥을 주물주물하며 주먹밥을 만든다)

 나:와~~ 민지 주먹밥 잘 만드는구나. 꼭 요리사 같아~

 민지: 엄마~ 나 요리사야~~ 엄마 한번 먹어볼래요?

 나: 응. 한번 먹어보자. (주먹밥 받아먹고) 와~ 맛있다~ 민지도 먹어볼까? 민지가 직접 만들었으니까 더 맛있겠다.

 민지: 응. 맛있다. 나 이거 다 먹을거야. (자기가 만든 주먹밥 다 먹었다)

 

 

위 장면들은 모두 최근에 딸과 나 사이에 일어난 에피소드들이다. 그런데 분명 차이가 있다. 장면 1과 장면 3에서는 민지와 내가 갈등하고 있고, 장면2와 장면4에서는 딸과 내가 아주 친한 친구처럼 죽이 잘 맞아 대화가 척척 이뤄지고 있다. 어떤 차이일까?

 

차이는 비슷한 상황에서 딸에게 내가 어떻게 반응했느냐 여부다.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딸에게 어떻게 반응했느냐에 따라 우리 둘의 관계가 달라졌고 결과도 달랐다. 장면1에서는 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따라 날씨가 따뜻하니 얇은 옷을 입어야한다고 딸에게 강요했다. 결국 내가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는 울면서 외출했고 즐겁게 아이와 함께 외출하려 했던 내 계획은 엉망이 됐다. 장면 2에서는 먼저 딸의 취향을 존중하고 내 의견을 말했더니 딸이 내 의견을 수용했다. 외출은 순조로웠고 딸과 나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장면 3에서는 딸이 주먹밥을 만들어 보고 싶어 주먹밥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딸의 의향이나 의도는 간과하고 주먹밥만 만들어 딸에게 억지로 먹이려 했다. 결국 딸은 기분이 나빠져 엄마가 만들어준 주먹밥을 조금만 먹었고, 그런 딸의 모습에 나는 또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장면 4에서는 바닥에 밥풀이 떨어져 방이 엉망이 되더라도 또 민지 손에 참기름이 묻더라도 주먹밥을 만들고 싶다는 딸에게 나는 “Yes”라고 대답했다. 딸은 스스로 요리사처럼 주먹밥을 만들어보고, 직접 만든 주먹밥을 맛있게 다 먹었다. 밥을 맛있게 먹는 딸의 모습에 난 만족스러웠다.

 

아이들과 일상을 보내다보면 수없이 이런 상황들은 발생한다. 호기심 많고 생명력 넘치는 아이는 부모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고 질문한다. 또 자아 개념이 생기는 3살 무렵부터는 뭐든지 "내가 내가"를 외치며 혼자 뭔가를 하려한다. 그럴 때마다 부모들은 "그래"라고 하기가 힘들다. 아이들의 행동은 미숙하고 서툴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 엄마가 생각한대로 아이들이 먹고, 놀고, 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가 강요하고 윽박지르고 리드한다고 아이들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논리가 있고,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449180a9f0388628f5be3adcf5c13ae1. 내가 아이에게 반응하는 태도를 180도로 바꾸게 만들어준 책이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을 보고 궁금해서 산 <3세에서 7세 사이>(김정미 지음, 예담)라는 책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발달심리학자이자 ‘반응성 교수법’(RT, responsive teaching)의 권위자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아이의 주도성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는 7세 이전의 유아기라고 말한다. 스스로 계획하고 목표를 설정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탐색 능력을 주도성이라고 하는데, 유아기때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주도적인 아이가 될 수도 있고, 수동적인 아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풍부한 사례와 함께 성공적인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만들기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아이의 주도성을 망치는 사례를 제시하며 아이와 행복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준다.

 












첫째, 아이에게 가르치려 하지 마라. 아이가 먼저 시작하도록 기다려라. 퍼즐을 하고 블럭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엄마들은 "이렇게 하는거야" "00야, 우리 자동차 만들어볼까" "이것은 무슨색? 빨간색이지~"하며 아이를 가르치려 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런 개입이나 가르침은 아이의 호기심을 잃게 만든다고 말한다. 아이가 먼저 호기심을 느끼고 의문을 품을 때까지 부모가 기다려야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도 아이들과 놀 때 색깔이나 사물의 이름 등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아이의 관심과 무관한게 말해준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지나치게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있다. 질문 없이 대화하고, 아이가 물어올 때 친절하게 답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둘째, 부모가 YES 할 때 아이도 YES 한다. 아이가 뭔가를 요구할 땐 먼저 "그래, 좋아"라고 답하라. 부모들은 끊임없이 ‘내가 요구하는 것을 먼저 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거야’라고 하며 아이들이 자신을 따라주길 강요한다. 그러나 부모가 이런 태도가 강할수록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횟수는 더 늘어나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언어습관은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아이가 내게 협력하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아이에게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부모와 아이간에 신뢰가 형성되고, 부모를 신뢰하고 좋아하는 아이는 부모의 말을 잘 따라준다고 말한다. 오늘부터라도 아이가 뭔가를 요구할 때 "그래~좋아~"라고 긍정적인 언어로 대화를 시작해보자. 

 

셋째, 아이가 주는 만큼 다시 주고, 말을 아껴라. 아이와 상호작용할 때 아이가 세 단어를 얘기했는데, 다섯문장, 열 문장으로 대답하는 엄마가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볼풀 장에서 아이가 "빨강!"하며 엄마에게 공을 던졌다. 대부분의 엄마는 "빨간 공이 여기 있네? 그럼, 엄마는 파란색 공!" "자, 그럼 이건 무슨 색 공일까요? 알아맞춰 보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런 상호방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빨~강!"하고 공을 던지면 엄마도 "빨강!"하며 공을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에게 "이건 무슨 색?"이라고 물어온다면 "파란색"이라고 답하지 말고, "글쎄... 이건 무슨 색일까?"라고 반응해주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는 그 사이 자기 나름대로 답을 만들어내면서 부모와 아이와 동등한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가 아이와 상호작용할 때 말이나 활동수준의 양과 횟수가 시소처럼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가 너무 말을 많이 하거나 끊임없이 움직여서 아이가 개입할 기회를 뺏는다면 아이의 창의성과 주도성은 말라간다.

 

넷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만 요구하라. 옆집 아이에 맞춰 내 아이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이의 수준, 관심, 성향과 행동양식을 관찰하고 그에 초점을 맞춰 상호작용을 해야 아이가 흥미를 잃지 않는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요구를 하게 되면 아이는 수동적으로 변하고 부모의 말을 무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이의 요구 수준에 맞게 요구하되, 최소한의 변형만을 시도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자, 어떤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아이와 제대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가? 이 책을 읽고 딸에게 이전과 다르게 반응했더니 실제로 딸이 훨씬 밝고 씩씩해졌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도 "요즘 민지가 더 밝아지고 기분이 항상 좋다.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라고 질문한 적도 있다. 아이가 내게 협력하는 횟수도 늘었고, 나도 아이와 실랑이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육아가 더 쉬워졌다.



어떻게 보면 지은이가 말하는 방법들은 특별한 방법들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의 관심과 흥미에 맞춰 아이에게 제때 반응해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엄마들은 엄마들의 과도한 욕심이나 조바심,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오버 육아’를 한다. 아이에게 내가 지나친 요구를 할 때, 아이와 싸우는 횟수가 늘어날 때, 육아가 피곤하고 지칠 때, 한번쯤 내가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있느냐를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혹시 내가 ‘오버 육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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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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