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0주 경, 초음파를 봤다. 

미국에선 한국만큼 초음파를 자주 보지 않는데, 특히 우리는 보험이 없어서 진료비가 저렴한 보건소에서 산전 검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초음파는 임신 기간을 통틀어 딱 한 번만 보게 돼 있었다. (산모가 노령이거나 다른 문제가 있는 경우엔 임신 후반부에 한 번 더 볼 수 있지만, 나는 젊고 건강하니 그럴 필요 없을 거라고 했다.)  


우리 동네 보건소 산부인과에는 내가 다닐 당시만 해도 초음파 설비가 없었다. 그래서 외부 의료 기관에 의뢰해 초음파를 찍게 됐는데, 그 외부 기관에서도 초음파 찍는 사람 따로, 판독하는 사람 따로이다 보니 판독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기가 어려웠다. 촬영 당일에 볼록한 배와 귀여운 얼굴 모양새가 담긴 사진과 CD 한 장을 받긴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2주 후에 있을 내 담당 조산사와의 면담에서 알게 될 터였다. 


2주 후 보건소에 갔더니, 내 담당 조산사 리사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태아의 오른쪽 다리가 왼쪽에 비해 크게 나왔으니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초음파를 찍어보는 게 어떠냐고. 지금으로선 이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데, 정밀 초음파를 해 보면 추후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지 알 수가 있을 거라고 했다. 리사가 말한 '추후 조치'에는 물론 임신 종결도 포함돼 있을 터였다. 혹은 태아에게 문제가 되는 부분이 태내에서 치료할 수 있는 무엇이라면, 태내에 있는 동안 약물이나 주사요법을 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을 너무도 가볍게 넘겨버렸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느끼는 내 몸 상태와 태아의 상태가 너무도 건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15주 말 부터 태동을 느끼기 시작했고, 입덧도 힘들지 않게 비교적 짧게 하고 끝났으며, 잘 먹고 잘 자고 기분 좋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태아에게 문제가 있다? 얼토당토 않은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그 전에 기형아 검사(쿼드)도 건너 뛴 상태였다. 나는 그만큼 내 몸과 내 마음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저런 검사들로 내 심신을 들쑤시고 싶지 않았다. 기형아 검사를 한다고 해서 모든 기형 여부를 판별할 수도 없는데다 다운 증후군 같은 건 '그럴 확률'이 높다 낮다로 나오는 거라고 하니, 그저 확률에 휘둘려 복잡한 번민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초음파 판독 결과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혹여 다리에 정말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태내 치료로 치료할 수 있을지 아닌지를 확신할 수도 없다는 게 우리 생각이었고, 뭔가 조치를 취하더라도 아이가 태어난 뒤에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약물이나 수술도구를 들이대는 건 내게 너무 가혹해 보였다. 


만일 정말로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서 다 자라 제때 나오게 된다면, 그건 그냥 우리 운명인 것 아닐까. 자라서 나온다는 건 이미, 그게 무엇이든 아이가 앞으로 생을 살아갈 수 없을만큼 큰 병은 아니라는 뜻 아닐까. 우리는 어느 종교에도 의지하지 않고 있지만, 생과 사 같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국면에는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 이미 이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초음파'를 받는 건 우리 처지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차가 없기 때문에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큰 병원에 가려면 주변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 해 가며 얻어 타고 가야 했다. 그런데 우리 주변 사람들은 모두 우리 같이 학교 스케줄로 바쁜 대학원생들이거나 고속도로 운전을 부탁하기 쉽지 않은, 동네 할머니들. 그리고 일반 초음파도 보험 없으면 $250이나 하는데, '정밀' 초음파라니! 혹시라도 정말 문제가 있다고 할 경우 그 많은 고민과 스트레스와 번민은 또 어쩔 것인가. 임신 중엔 무엇보다도 스트레스 없이 편히 지내는 게 가장 좋은 태교라고 믿고 있던 나로서는 정말 마뜩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내 담당 조산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제안을 뿌리치고 별 일 아니라는 듯 살았다. 그 이후로도 내 임신 생활은 순조로웠다. 임당 검사도, 철분 검사도 순조롭게 통과했고, 아이는 내 뱃속을 운동장 삼아 축구라도 하는 듯 뻥, 뻥 신나게 발길질을 해댔다. 이렇게 힘찬 발길질을 하는 아이의 다리에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그런데. 

그렇게 뱃속에 품어 키운 내 아이에게 정말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진통을 하면서야 깨달았다. 진통을 시작한 지 십 수 시간이 지난 후 내 갈비뼈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조산사는 아이가 갑자기 방향을 바꾼 상태로 더 이상 내려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 네게 정말 무슨 일이 있구나. 그래서 지금 네 힘으로 나오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내게 온 몸으로 하고 있는 거구나.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내 몸은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네게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우리는 별 탈 없이 웃으며 만날 수 있는걸까? 


그렇게 나는 각종 약물을 투여받으며 갑작스러운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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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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