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82164_P_0.JPG » 팝업북으로 만들어진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 한겨레 자료 사진.미국에서 10월 둘째 주 월요일은 콜롬버스 데이. 연방정부가 이 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은 1937년인데, 최근에는 여러 주에서 이 날의 명칭을 바꾸고 기념의 대상과 목적을 바꾸는 움직임이 일어나 현재는 이 날을 공휴일로 치지 않는 곳도 많다.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상륙은 콜롬버스와 그의 후손들, 그리고 그 이후 세워진 미국이라는 국가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들에게는 기념하고 축하해야 할 위대한 역사일지 모르지만,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침략과 정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곳 토착민들에게 제멋대로 인디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노예로 삼아 착취한 콜롬버스 대신, 자신들의 삶과 터전을 지키려 투쟁하다 쓰러져간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 그들을 기려야 한다는 주장에 수긍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콜롬버스의 이름으로 축제를 벌이는 대신, 토착민들의 이름으로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과오를 성찰하는 편이 앞으로 만들어 갈 역사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도 공감할 수 있다.

 

콜롬버스 데이에 대한 논쟁에서처럼, 역사적 사건에 대해 내려지는 가치 판단이란 그 역사를 기록하고 그것을 기억하려는 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공식적 역사로서 기록에 남겨지는 역사를 집필하는 것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보통사람들이 아니라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 정권을 잡은 이들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그런 주류의 시선에서 쓰인 역사, 국사이고, 국사는 언제나 영웅 중심, 국가 중심의 역사다. 미국 학교에서 아이들이 콜롬버스 노래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배웠다. 교과서에 주로 기술되는 인물들은 환난의 시대에 어디선가 홀연히, 혹은 절치부심 기량을 갈고 닦아 나타난 구국의 영웅이 대다수를 이루었다. 더더군다나 그런 영웅들은 거의 언제나 처자식은 물론이고 부와 명예를 버리고 국가에 충성한 남성 영웅이었고, 국가의 운명은 언제나 소수 지도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묘사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사 교과서에 기술된 역사적 사건들이나 여러 민족국가의 존망, 위인들의 업적은 내게 별 흥미를 가져다 주지 못했고, 나는 의미 없는 연표를 외워가며 수능을 치렀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한 뒤 우연히 접하게 된 한국 근현대사의 많은 부분들을 읽고 들으며 나는 굉장히 큰 충격에 빠졌다. 알다시피 우리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역사인 근현대사 부분에 와서는 아예 책을 덮어두어야 했던 세대다. 근현대사 부분은 그리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도 않거니와, 교과서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이 없다며 책을 덮고 문제집을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경남 마산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 교육까지 마쳤어도 나는 3.15 4.19며 부마항쟁 얘기를 특별히 들어본 일이 없었다. 아주 어릴 적 엄마와 시내에 나갔다가 최루탄 가스를 맡고 콜록거리며 택시를 잡아탄 기억이 있는데, 그 때가 바로 80년대 후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이십년이 훨씬 지난 뒤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더 뒤적이고, 영상물을 찾아가며 접한 우리의 역사는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그것과는 달리 참으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그렇게 많은 목숨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나는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야 알았다. 어째서 학교에선, 교과서에선 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던 걸까 질문도 해 보고 원망도 해 보았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역사가 국사라는 이름으로 가르쳐질 때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것을 알고 나니 그 전의 역사가 모두 다르게 보였다. 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의 많은 부분이 앞선 세대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 덕분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지금 이만큼이나마 무언가를 누리고 사는 이 순간 누군가는 여전히 절망에,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도 함께 알았다.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역사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 그 자체라는 것이었다. 국사라는 이름에 가려진,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되지 않은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국사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배워 온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게 영웅 서사 중심의, 편향된 역사였다.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 이전에도 이미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그런 역사였기에 내겐 이번 정부의 국정교과서 강행이 아주 특별하게 생각되진 않는다. 다만 이 정부가 이 문제를 이만큼이나 노골적으로 밀어 부친다는 건 지금 우리가 배우는 국사마저도 그들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일테니 그 대목이 염려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권을 어느 쪽이 잡았느냐와 상관없이, 역사 교과서를 국가가 주도해 집필하고 출판한다는 것은 언제나 전체주의로 나아갈 위험을 안고 있다. 권력자의 편에 선 이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 그들의 관점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만을 교과서에 남기기를 원할 것이고, 그랬을 때 남는 것은 언제나 특정 영웅과 지도자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묻히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권력자의 입장에서 사람들의 고통과 함성, 피와 눈물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약간의 희생일 뿐,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가치가 없을 테니 말이다.  

 

국사로서의 역사만을 배우고 민중의 삶으로서의 역사라는 것을 모르게 되면 권력자가 아닌 대다수의 우리가 기댈 곳, 우리가 딛고 설 땅은 없어진다. 국가의 운명이 영웅과도 같은 국가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소수의 엘리트들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듯 얘기하는 교과서 속 설명은 거짓에 가깝다. 권력자의 시선, 주류의 이데올로기, 난세의 영웅담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머릿속에는 국사를 집필한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 하나가 자리잡게 된다. 바로 영웅이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믿음이다. 그것은 어떤 영웅을 숭배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그렇게 비판하면 안 된다는 식의 생각, 또는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생각의 바탕에 그런 믿음이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구국의 영웅이나 위대한 대통령이 아니라, 권력은 없어도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해나간다는 걸 배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반대한다. 현 정권의 국정교과서 발행을. 하지만 그것을 저지하는 것에만 골몰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반대한다. 언제나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는 무심한 채 자기 편의 영웅을 내세우고 그들의 업적을 미화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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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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