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독박육아 1주일 째. 조금 쓸쓸한 것 빼곤 아직 할 만하다. 아이가 낮잠을 안 자고 버티는 시기가 다시 찾아와 하루 종일 아이에게 매여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다. 잠시 쉬었던, 변기에 응가하는 연습도 다시 시작했고 젓가락질도 시작했다. 일주일 새 새로 배운 말도 많이 늘었다. 그래도 엄마와 계속 붙어 놀다 보면 헐리웃 액션으로 온 몸을 써서 함께 놀던 아빠가 그립긴 한 모양인지, 아이는 문득 문득 아빠를 찾는다.


그런 아이와 달리 내가 문득 문득 남편을 찾게 되는 때는, 다름아닌 집안일을 할 때다. 남편이 가고 나자 집안일이 정확히 두 배로 늘었다. 작년 이맘때 쓴 글에도 적었듯 우리는 결혼할 때 결혼식이나 예물이 없는 대신 우리끼리 지켜나갈 약속 세 가지를 적은 판 하나를 제작했는데, 그 세 가지 약속 중 두 번째가 바로 가사는 고르게 나눈다였다. 세 가지 약속 모두 잘 지켜가고 있는 편이지만 특히 두 번째는 워낙 눈에 드러나는 일이어서 그런지 더더욱 약속 이행 여부가 확연히 나타난다. 남편이 가고 나니 우리가 이 두 번째 약속을 이렇게나 잘 지키고 있었구나, 싶어 깜짝 놀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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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장 눈에 띄는 건 남편이 없으니 삼시 세끼 밥을 다 내가 요리해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남편의 직업이 대학원생, 그것도 가난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사는 대학원생이다 보니 학기 중 아주 바쁜 때를 제외하고는 늘 집에서 삼시 세끼를 같이 먹는다. 아침에 남편이 먼저 일어나 빵을 굽고 과일을 잘라 식사 준비를 하면, 나는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 점심에 남편이 들어올 때쯤 내가 요리를 하면, 식사 후 설거지는 남편이 한다. 저녁 때는 식사 시간 3,40분쯤 전에 맞춰 들어온 남편이 요리를 하고, 설거지는 둘 중 좀 더 하고 싶은 사람(?)이 한다. 어쩌다 보면 세 끼 식사 준비를 모두 남편이 하고 나는 세 끼 내내 설거지만 하는 경우도 생긴다. 사실 나는 남편보다 요리를 못해 뭘 해도 맛없는 요리를 내놓기 일쑤. 남편은 그런 내 요리 실력에도 타박 한번 하지 않고 자기가 나서서 요리를 도맡아 한다. 그런데 남편이 가고 나니 세끼 모두를 내가 요리하고 설거지도 모두 내가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맛없는 반찬을 놓고 아이와 정신없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두 번째로 확 늘어난 집안일은 빨래. 집에 있을 때, 가까운 놀이터에 외출할 때는 여전히 천 기저귀를 쓰는지라 매일 아이 기저귀 빨래가 나온다. 남편이 있을 때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나는 그저 아이 기저귀 가는 일에만 충실하면 됐다. 젖은 기저귀는 한데 모아두면 밤에 남편이 밟아 빨아 널었다. 그런데 남편이 없으니 이 기저귀 빨래도 내가 해야 한다. 아무리 발로 밟아 빠는 거라 해도, 이걸 매일같이 하는 건 그야말로 이다. 물을 몇 번씩 갈아 밟고 또 밟고, 헹궈내고 짜고..대체 남편은 그동안 이걸 어떻게 매일 한 걸까? 지난 2년 반 동안, 가끔 남편이 감기몸살로 아프거나 야간 수업 때문에 아주 늦어지는 날 내가 기저귀 빨래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열 손가락에 꼽는다. 그 열 손가락을 뺀 나머지 수 백일에 이르는 그 많은 밤, 남편은 군소리 한번 없이 기저귀를 빨았다. 가끔 내가 힘들면 얘기하라고, 지겨우면 내가 좀 빨아도 된다고 그렇게 얘길 해도 괜찮다고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하루 종일 애랑 씨름하는 거에 비하면 기저귀 빨래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하지만 내가 1주일 기저귀 빨래 해보니,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이렇게 늘어난 집안일은 그 외에도 더 있다. 빨래 널고 개기, 아파트 공용 세탁기로 우리 빨래 돌리고 가져오는 일, 쓰레기 버리는 일, 날씨에 맞춰 아이 유모차를 올려 놓거나 내려놓는 일, 욕실 청소, 이불/침대 시트 털기 등등. 그나마 다행인 건, 욕실 청소는 남편이 없으니 평소보다 좀 덜해도 된다는 것? 건식 욕실이라 물기가 있으면 금방 더러워지는데, 평소 몸을 막 쓰며 행동반경이 넓고 행동이 빠르고 거친 편인 남편은 건식 욕실 깨끗이 쓰기를 아직도 어려워한다. 그래서 이틀이 멀다 하고 세면대 거울이 지저분해지고 세면대 위가 흥건해져서 물때가 끼어 냄새가 나는데, 남편이 없으니 일주일이 다 되어도 세면대가 깨끗, 보송보송하다.


이렇게라도 내 일이 조금 줄어 다행인가? 아니 아니, 그까짓 세면대 물 때 좀 끼어도 좋으니, 거울이 금방 지저분해져 내 얼굴이 안 보여도 좋으니, 남편이 하루빨리 돌아오면 좋겠다. 어차피 욕실 청소야 남편 몫이었으니 그거 좀 지저분해져도 괜찮다. 맥주 안주로 생라면 부셔 먹고 카펫에 소파에 마구 흘려놔서 지저분해진다고 싫어라 했지만, 흘린 라면이야 까짓거 내가 청소기 한번 더 돌리면 되지. 집안 일 잘 하는 남편이 얼른 돌아와 맛있는 밥 지어 같이 먹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한 사람은 설거지하고 한 사람은 애 보며 한가로운 저녁 시간 보내면 좋겠다. 7주 중에 이제 1주일 지났는데, 나는 정확히 두 배로 늘어난 집안일 때문에 온 몸이 뻐근하다. 나의 우렁신랑, 얼른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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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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