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그냥 지나도, 축축 쳐져도 꿈에도 몰랐다

 산부인과 빠져나와 긴 침묵 끝에 “거참 곤란하네”


2011년 6월 말, 우리 부부는 ‘윈도우 기본 바탕화면’으로 잘 알려진 중국 내몽고 자치구의 초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밤이었다. 까맣게 맑은 하늘에는 별이 아롱아롱 박혀있었다. “내몽고는 하늘이 달라.” 여러 사람에게 이 말을 듣고는 꿈꿔오던 여행을 떠나온 참이었다. 이른 여름휴가였다. 돗자리에 누워 미리 준비해온 와인을 마셨다. 건배를 하는데 남편의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폼은 있는대로 다 잡은, 아름다운 밤이었다. 신문사 사회부 경찰기자로 ‘빡신’ 밑바닥 생활을 해오던 내게 정말이지 달콤한 휴가였다. 

 

%EC%82%AC%EB%A7%89%EB%82%99~1.JPG » 2011년 6월 말, 사막에서 낙타타는 우리 부부. 상상도 못했지만 이 때 내 뱃속에는 이미 6주된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곤란아, 미안. 그래도 낙타타기는 재밌었지?^^;;


별이 총총한 밤  남편 눈동자에 빠져 와인 한 잔할 때도, 그땐 몰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원래 술이 센 편은 아니지만 이건 뭐, 휴가 기간 내내 술만 마시면 너무 취했다. 맥주 한잔에도 비실댔다. 안주로 나온 양꼬치는 냄새가 싫어 입에 넣다가 말았다. 초원길, 사막길을 걷는데 몸이 축축 쳐졌다. 모래 바람에 콧 속이 말라 비틀어졌는지 비염이 너무도 심해졌다. 이 모든 증상이 오직 하나, 임신을 가리키는 것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랬으니, 남들은 몸조심한다는 임신 초기, 휴가 가서는 사막에서 낙타는 물론 모래 썰매까지 탔고 일터에서는 연일 폭탄주를 들어올리며 ‘원샷’을 외쳐댔다.
 
생리 주기가 31~35일 정도로 일정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6월 셋째주 정도로 예정됐던 생리일이 지나가는 것에 의심에 눈초리 한 번 주지 않았다. 6월 넷째주에 여름 휴가를 떠나며 가방에 생리대를 잔뜩 구겨넣느라 궁시렁댔을 뿐이다. 여행 기간 동안 생리가 시작하지 않기에 “고맙다, 내 몸아”했을 정도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비염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가서 비염약을 받아다 먹었다. 의사가 묻지 않기에 임신 가능성, 이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런 내게 “산부인과에 한번 가보라”고 등떠민 것은 친정 엄마였다. “니가 뭐, 사회부 기자가 된 뒤로 워낙 ‘술 살’이 계속 쪄오긴 했지만, 요즘 찌는 살은 좀 다른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은근히 임신을 기대하는 엄마에게 애써 손사레를 치며 그래도 혹시 몰라 산부인과를 찾은 것이 7월9일, 토요일이었다.
 
그 흔한 막대기 임신 테스트조차 하지 않고 간 참이었다. 그것도 남편과 함께 새로 끊은 ‘승마 교실’의 첫 시간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보이는 병원에 잠깐 들른 것 뿐이었다. 그런데 간호사는 내가 소변 검사도 하기 전에 청천벽력같은 말을 건넸다. “축하합니다.”“네? 검사도 안했는데 무슨 축하요?” 그만 정색을 했다. “아… 마지막 생리일이 5월14일이시고, 결혼 5년차라고 하시니 임신이 거의 확실한 것 같아서… 임신 바라시는 것 아니셨어요?”
 
만우절 날 결혼하고 “너만 있으면 돼!”라며 맹세할 때, 그땐 그랬다


아득해져가는 정신줄을 붙잡고 소변검사를 마쳤다. 의사는 매우 담담한 표정으로 “임신 맞고요, 초음파 검사도 여기서 하실 건가요?”라고 물었다. 마지막 생리일을 기준으로 하면 이미 임신 7~8주쯤 된단다. 우리는 무슨 못 볼 걸 본 사람들마냥 “나중에 올게요”하며 도망치듯 병원을 나왔다. 차 안에 들어가 시동도 켜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이 입을 열었다. “낳자.” “낳자고?” “낳아야지.” “아… 그래야겠지.” “거참.” “아이고, 거참.” “거참 곤란하네, 곤란해. 태명은 곤란이! 곤란이 어때?” ”뭐여, 벌써 태명까지.” “곤란이, 그래… 곤란이다.”
 
임신이 곤란했던 이유는 우리가 ‘노키드’를 꿈꾸던 부부였던 탓이다. 결혼 생각이 별로 없던 남녀가 콩 튀기게 사랑에 빠진 나머지 사귄지 5개월만에 결혼을 했다. 2007년 4월1일, 만우절에 결혼한 우리는 ‘아이 없는 부부’로 살자고 약속을 했다. “너만 있으면 돼!” 그땐 그랬다. 일하고, 사랑하고, 여행하면서 살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살아보니 실제로도 그랬다.
 
남편과 내가 각자 노키드를 선택한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아이를 낳지 말고 둘이서 행복하게 살자는 ‘삶의 방향’은 같았다. 나는 ‘노키드’와 관련된 책을 읽어가며 ‘어쩌면 모성애라는 것은 사회의 강요와 교육에 의해 주입된 것일 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을 발전시켰다. “아이는 꼭 낳아야 한다”면서 자기가 낳은 아이를 노쇠한 친정 엄마에게 맡겨두는 이들을 보면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낳은 새끼, 내가 책임지지 못할 바에는 낳지 말자”는 생각까지 참 다양한 방향으로 생각을 뻗쳤다.
 
뱃 속 아기에게 말을 건넨다, “곤란아, 곤란해도 괜찮아!” 


하지만 ‘경상도 장남’인 남편과 그에따라 당연히 경상도 맏며느리인 내가 아이를 낳지 않고 5년을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은 오히려 크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셨다. 문제는 ‘지나가는 사람 1,2,3,4…”였다. 매일같이 만나는 각종 취재원들부터 직장 동료, 10년만에 만난 동창, 먼 친척, 택시 기사님, 옆집 00엄마까지 다들 짜기라도 한 듯 “애를 왜 안낳냐”며 내 걱정을 하는 통에 나중에는 절대 내 입으로 ‘노키드’임을 밝히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수준에 이를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곤란이’가 왔다. 갑자기 왔다. 강렬하게 왔다. 운명이다, 라며 우리는 아이를 낳기로 했다. 그리하여 노키드 부부, 아이를 갖게됐다. 지금부터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만 가는 길은 아니다. 수많은 선배, 친구, 후배 부부들이 ‘아이 갖기’와 관련해 숱한 고민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뒤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됐으리라. 우리 부부의 좌충우돌 임신, 출산, 육아 스토리를 기대하며 뱃 속 아기에게 이 말을 건넨다. 곤란아, 곤란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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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한겨레21> 기획편집팀, 사회팀, <한겨레> 사회부 24시팀을 거쳐 현재 오피니언넷부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 생각 없다”더니 한 눈에 반한 남자와 폭풍열애 5개월만에 결혼. 온갖 닭살 행각으로 “우리사랑 변치않아” 자랑하더니만 신혼여행부터 극렬 부부싸움 돌입. 남다른 철학이라도 있는양 “우리부부는 아이 없이 살 것”이라더니 결혼 5년만에 덜컥 임신. 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이메일 :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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