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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염색은 어떻게 해요?"

 

자려고 누웠는데 큰 아이가 이렇게 묻는다.

'염색? 염색약 사다가 삼푸하듯이 하면 되지?'

'금발두요?

'금발? 금발이든 초록색 머리든 원하는 염색약 사다가 할 수 있어. 그런데 왜?'

'저도 아나킨 처럼 하고 싶어요'

'아나킨? 스타워즈에 나오는 아나킨 스카이워커??'

 

그렇다. ' 영화 '스타워즈'에 빠져 살고 있는 아홉살 아들은 그 영화의 주인공인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되고 싶은 것이다. 즉 금발에 푸른 눈을 하고 결정적으로

오른쪽 귀 뒷쪽으로 가슴께까지 가느다랗게 땋은 머리를 늘어 뜨리는 제다이 제자의

머리 스타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흠...

나는 심호흡을 하고 되도록 진지하게 말을 했다.

'그렇구나. 제다이 머리를 제대로 하려면 우선 머리를 길러야 하니까 지금부터

머리를 길러보고, 그 땋은 머리를 만들려면 엄청 길러서 그 부분만 남기고 잘라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붙임머리를 알아보자. 원하는 부분에 땋은 머리만

붙일 수 있더라고. 동네 미장원 아줌마한테 물어볼께.

금발 염색은 방학하면 한번 해보자. 집에서 하는 염색은 이모들이 선수니까 물어보면 될꺼야'

'파란눈은 어떻게 해요?'

'아아.. 파란눈은 파란색 써클 렌즈를 착용하면 되긴 하는데, 그건 눈에 많이 안 좋대.

너는 아직 나이도 어린데... 게다가 렌즈 끼고 빼는거 되게 어려워'

'엄마, 저, 학교에서요, 눈에 먼지 들어갔을때 직접 손 넣어서 먼지도 빼고 그랬어요'

'..... 그래?'

아들은 정말이었다. 불편함과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꼭 그렇게 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장난으로 해 보는 말이 아니고, 정말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써클 렌즈는 엄마도 한번도 안 해 봤는데... 좀 더 생각해 보고, 우선

제다이 머리 스타일부터 고민해보자. 제다이 의상은 인터넷 뒤져볼께, 구할 수 있는지..'

'와.. 빨리 하고 싶다. 엄마, 제다이는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거죠?'

'그렇지. 그게 제다이 수련의 기본이지'

'그럼, 저도 그럴래요. 제다이처럼..'

아들은 설레어하며 잠이 들었다. 나는 또 숙제가 잔뜩 생겼다.

 

아홉살 필규의 모든 관심은 '스타워즈'다. 집에 오면 레고 스타워즈 시리즈와

내가 구해준 스타워즈 백과사전을 끼고 산다.

나도 필규만 할 때 '소머즈'니, '원더우먼'이니, '슈퍼맨' 흉내내며 놀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보자기 하나만 있어도 슈퍼맨이 되어 신나게 동네를 누볐지만 스마트폰 시대를

사는 아들에게 보자기 주면서 이걸로 제다이 망또를 해라라고 말 할 수는 없다.

막대기를 광선검 삼아 나머지는 넘치는 상상력으로 제다이도 되고, 아나킨도 되면

참 좋겠지만 그거야 순전히 내 기대일 뿐 필규는 기어코 금발에 푸른 눈을 하고

꼬리 머리를 늘어뜨린 제다이 기사가 되고 싶으니 어쩌겠는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야 없지만 어른의 기대대로 놀라고 요구할수만도 없다.

이런일에 있어서 나는 가능한 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같이 찾고 해 주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그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붙임머리를 해 주고 염색을 해 주는 것이 돈도 좀 들고 시간도 걸리는 일이긴 하지만

못 해 줄만큼 큰 돈 드는게 아닌다음에야 기꺼이 그 일에 같이 뛰어 들면 된다.

붙임머리의 길이를 아이와 열심히 의논하고 최대한 아나킨처럼 보일 수 있도록 같이

애써보는 동안 아이와 부모는 더 가까와질 수 있다. 제 바램을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부모에게 큰 신뢰와 고마움도 느낄지 모른다. 그게 중요하다.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공부나 해!'라고 윽박질러 버리면 아이는 그다음부터

제 마음속의 소망들을 꺼내 놓을 수 없다. 제 욕구를 소중히 여기기 보다 억누르고

부끄러워하고 없는 척, 아닌 척 할 수 도 있다.

우리는 그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었다. 우리 시절은 그랬다. 아이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지, 어떤게 중요한지 어른에게 솔직하게 꺼내보지 못하고

미리 포기하고, 미리 감추면서 그 시절을 지나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자란 어른들은

돈을 벌고 힘이 생기면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욕구를 분출하거나

타인의 욕구와 감정에 무딘 사람으로 굳어져 버리기도 한다. 마음속의 어린 아이는

하나도 크지 못한채 몸만 커버린 안스런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이의 어떤 욕구에도 우선은 진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터무니 없고 말이 안된다 하더라고 대놓고 무시하거나 윽박지르기 전에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지나친 것이 아니라면 같이 의논해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와 무엇을 함께 나누는가이기 때문이다.

설령 원하는대로 못 해준다 하더라도 아이는 어른이 노력해주고 귀 귀울여주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는 그 경험만으로도 커다란 신뢰와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못 누렸기 때문에 아이에게 무절제하게 관대한 것도 문제지만

우리가 못 누린대로 아이에게 요구해서도 안된다.

마음을 이해해주고, 해줄 수 있는 것은 함께 해 주면서 끊임없이

아이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욕망들과 소원들을 같이 나눌 수 있다면 사춘기의

회오리도 어쩌면 서로 많이 다치지 않으면서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제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모에게 꺼내 보여주는 아들이 고맙다.

늘 잔소리만 한다고 타박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엄마라고

믿어주긴 하나보다. 아들의 믿음에 나도 진심으로 정성껏 부응하고 있다.

혹 붙임머리가 비싸면 털실이라도 구해서 비슷하게 해 줘 봐야지.

올 겨울에 어쩌면 나는 금발에 꽁지머리를 늘어뜨린 제다이 아들과

집안에서 광선검을 같이 휘두르는 제다이 마스터가 되어 살지 모르겠다.

나이 마흔에 이렇게 신나게 사는 인생, 멋지지 않을까?

명품백이니 갱년기니 하는 단어보다, 지금 내 일상에는 제다이와 우주선과

포스가 더 중요하다. 이 편이 훨씬 좋다.

 

아들아..

제다이가 되기로 작정했으니 행동도 제다이답게 네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거라.

힘든것도 견디고, 무엇보다 제다이는 인내할 줄 알아야 하느니라.

이참에 천방지축 아들을 제대로 수련시켜 볼까나..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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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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