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년째 다니고 있는 이곳 학교에는 몇 가지 자격증 과정이 개설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보육교사 자격증이다. 아이들의 언행을 관찰하면서 기록하는 걸 좋아하고, 평소 마리아 몬테소리의 저작을 읽으며 몬테소리 식 교육법에 흥미를 갖고 있던 내게 좋은 기회인 것 같아 이 과정을 이수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자격증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관련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한 다음 시험을 보고, 나의 보육/교육 철학과 경험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제작하고, 480시간의 현장 실습을 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기에 반드시 들어가는 또 다른 과정이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교육이다.

 

지지난 주에 있었던 응급처치(First Aid) 교육은 대부분 영상자료를 함께 보고 강사가 내용을 여러 차례 구두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연습까지 한 건 세 가지 부문이었는데, 하나는 응급처치자가 본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들에 관한 내용, 또 하나는 음식물 등의 이물질이 기도에 걸려 질식한 경우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급성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에피펜(에피네프린 주사)을 놓는 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중 두 번째, 질식 대처법의 경우 내가 임신 말기에 개인적으로 찾아본 적이 있는 내용이어서 좀 더 흥미롭게 봤다. 임신 중에 즐겨보던 육아서에 영아기 아이들은 입에 뭘 막 넣는 때가 길게 간다면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질식 사고에 대비해두는 것이 좋다기에 대처 영상을 한 번 찾아본 적이 있어서다.

 

응급처치 때까지만 해도 수업 내용은 그럭저럭 쉽게 익힐 만했고 또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2차 교육, 심폐소생술 교육은 좀 달랐다. 그저 재미로 보고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처음엔 슬슬 웃으며 입장했던 다른 친구들도 세 시간 후엔 온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기진맥진한 상태로 널브러졌다. 사실 이번 주는 교육장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느낌이 남달랐다. 바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이런 광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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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CPR이라고 불리는 이 심폐소생술은 나같이 의학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하게 느껴질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레스트가 왔을 때 의사가 다급히 외치는 제세동기,’ 라는 기계, “200줄 차지, 물러서! !” 하는 그 급박한 외침, 구급차에서부터 시작된 CPR을 응급실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수술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멈출 수 없어 이동용 병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있는 힘을 다해 빠르게 압박을 가하는 의사, 그 병상을 급한 발걸음으로 따라가며 엠부를 짜는 간호사. 그 모든 요소들이 훈련 과정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 영상을 볼 때만 해도 나는 내가 즐겨보던 여러 의학 드라마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영상을 보면 볼수록, 흘려 듣거나 웃으며 볼 수만은 없겠다는 긴장감이 생겨났다. 영상 속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초기 대응을 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소생 가능성이 크게 달라진다고 했다. 이런 설명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사는 우리 모두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마네킹 앞에 세워두고 실제로 소생술을 차근차근 시행해보도록 시켰는데,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인 줄 미처 몰랐던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우리 앞에 놓인 성인용과 신생아용 특수 마네킹에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어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빨간불이, 제대로 하면 초록불이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심폐소생술은 한 세트 당 30회의 압박법과 2회의 호흡법을 시행하게 되어 있는데, 30회의 압박을 행하는 내내 초록불이 지속적으로 들어와야만 통과 명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게 정말 쉽지 않았다. 분당 100~120회의 압박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30회 압박을 할 때 속도도 일정하게 빨라야 하고, 압박을 주는 깊이도 2인치( 5센치)로 일정해야만 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30회 압박 후 2회에 걸쳐 숨을 불어 넣을 때에도, 마네킹의 턱과 이마를 잡고 일정한 방향과 정도로 들어 올려 숨을 제대로 불어 넣어야 마네킹의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그 심폐소생술이 실제로 이렇게까지 힘이 들 줄이야!

 

영상에서는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신고를 해도 구급대가 당도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급대가 올 때까지 계속 심폐소생술을 이어가야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습에 돌입하자 강사는 힘이 딸려서, 혹은 압박 지점을 제대로 짚지 못해서 빨간불을 연이어 내고 마는 우리를 압박하며 채근했다. “너희들 지금 그런 식으로 하면 이 사람 죽어! 이건 마네킹이 아니야,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특히 우리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위해 이 과정을 이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강사는 신생아용 마네킹을 다룰 때 특히 더 우리를 긴장시켰다. 신생아가 질식 등의 이유로 숨을 쉬지 못할 때에도 30회 압박, 2회 호흡을 번갈아 하는 CPR을 시행해야 하는데, 이 때 신생아의 경우는 두 손이 아니라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만으로 압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렵고 힘이 들었다. 가뜩이나 힘이 들어 손가락이 벌벌 떨리는데 강사가 너희가 돌보던 애가 지금 숨이 넘어간다고! 살려야 하잖아! 멈추면 안 돼!” 하고 소리를 치니 정말 실제 상황이라도 된 듯 온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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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을 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제대로, 많이 할 줄은 몰랐던지라 정말 수업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두 세트씩 한 번, 두 번, 이렇게 끊어서 연습을 시키더니 나중엔 네, 다섯 세트씩 두어 번을 연이어 시켰다. CPR만 따로 떼서 시키는 것도 아니고 쓰러지는 사람을 발견한 순간부터 구급대원들이 도착하는 순간까지 매뉴얼대로 모든 동작과 말을 다 해내야 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AED(자동 제세동기, 즉 심장충격기)라는 말이 입에 잘 붙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고, CPR 시행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환자의 자가호흡여부 확인 과정을 빠트려 혼이 나기도 했다. 신생아는 의식 상태를 확인할 때 어깨를 두드리거나 흔들지 않고 발바닥을 두드려야 한다는 걸 깜빡하고 어깨를 흔들다가 강사에게 혼쭐이 난 학생도 있었다. 그렇게 세 시간 동안, 40세트에 달하는 CPR을 직접 연습했더니 강의실을 빠져나올 때쯤엔 어깨, , 손가락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교육장을 빠져 나오는데, 문득 겁이 났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정말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이렇게 힘이 들고 어렵고, 또 두렵기까지 한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 내가 과연 선뜻 나서서 내가 CPR을 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아이가 눈 앞에서 쓰러져 숨을 쉬지 못할 때, 내가 과연 침착하게 이 과정을 떠올리며 해 낼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보육교사로 일하게 되어 다른 아이들을 돌보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혹은 놀이터에서 내 아이와 놀던 어느 아이가 갑자기 쓰러져 숨을 쉬지 못하는 걸 본다면, 내가 과연 나설 수 있을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올바른 방법은 물론이고 가까운 곳 어디에 AED(자동 제세동기)가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응급 상황에 나 말고 주변에 또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더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심폐소생술을 더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익혀야만 하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우리 아이들이 이용하는 도서관, 공원, 놀이터 등의 공공장소,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주택단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과연 이에 적절히 대처할 수단과 방법을 갖추고 있을까. 우리 주위에 응급처치법과 심폐소생술을 실제로 알고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이게 꼭 보육교사나 공공기관 직원 등 특정 직업군에만 교육되어야 할 일일까


이런저런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요즘,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지식과 경험과 지혜가 하나로 모일 때,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보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2만개 이상의 AED가 설치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접근 가능/사용 가능한 기기는 그에 훨씬 못 미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최근 안전 교육이 강화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제대로 교육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당장 우리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을 한 번 살펴보면 어떨까.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 요구해야 할 것들이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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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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