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면 시내 버스 환승 센터에서 꼭 만나는 이들이 있다. 인근 고등학교의 장애학생들과 인솔교사들이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학생, 다운 증후군 학생, 지체 장애 학생 여럿이 인솔교사 여럿과 함께 시내 곳곳에 있는 장애학생 직업교육장에 가느라 아침마다 분주하다. 아마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특정 시기가 되면 직업교육을 받으러 학교 바깥 기관에 다니는 모양이다. 이곳에 살면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학생들이 타고 내릴 때 시간이 지체되어도, 자폐스펙트럼 장애 학생들이 특유의 소리를 내거나 몸짓을 할 때도 이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피하거나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은 없다. 이들을 향해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를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혼자 혹은 여럿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도 없었거니와, 지하철에서 가끔 만나는 장애인들은 대개 자의와 상관없이 자신의 존재를 열등하고 무능하고 불쌍한 것으로 깎아 내려야만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맞닥뜨리는 비장애인들은 철저한 무관심이나 동정, 아니면 혐오로 이들을 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를 대면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으로 판단 혹은 진단 내려지는 순간, 거주지도, 교육기관도, 병원도 모두 비장애인 사회와 동떨어진 곳에 배치되어 생활한다. 그들이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비리와 부패와 폭력, 인권침해는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알려지고, 그나마도 큰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금세 잊혀진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장애 인구와 비장애 인구는 서로 철저히 분리된 세계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장애를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거나 의학의 힘으로 치료하거나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할 것으로만 바라보면, 그건 장애를 겪는 개인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어제 본 영화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자폐 스펙트럼 장애 여성 템플 그랜딘은 동물학자로 성장해 후일 미국 대학의 교수가 된다. 이렇게만 보면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는 자폐 장애를 가진 한 사람이 그것을 극복하고 학자로 성공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템플이 자폐를 극복했다고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템플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껴안고 자폐 장애와 함께 살아온 것으로 그려진다. 템플은 촉각에 예민해 엄마조차도 품에 안아줄 수 없었던 아이였고, 그래서 곧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에도 오롯이 혼자 그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느라 힘겨워했다. 그러다 우연히 이모네 농장에서 소를 안정시킬 때 쓰는 기구를 보고 그 기구가 자신의 불안을 덜어주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 기구를 계기로 템플은 동물의 행동에 나타나는 인과관계나 동물의 심리상태를 분석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고, 이것이 훗날 그가 동물학자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된다.


Templegrandin.jpg

<사진출처: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f/fd/Templegrandin.jpg>

 

하지만 이런 우연에 가까운 사건보다 템플이 건강하게,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학자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템플의 장애와 함께살아 온 부모와 친지, 교사와 친구, 그리고 그와의 공존을 받아들인 사회였다. 평생 말을 하지 못할 테니 특수기관에 보내 되는대로 살게 하라는 의사의 소견과 달리 아이를 꾸준히 가르치며 한 발, 한 발 아이를 세상에 내보낸 템플의 엄마,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템플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 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교사, 소에게 쓰는 기구에 웅크리고 들어가는 템플을 보고 다그치거나 낙담하기보다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은 이모. 그리고 그렇게 세상 속으로 조금씩 들어선 템플을 혐오하거나 내치지 않고 지켜보며 도와주고 도움 받은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템플은 처음 자폐 진단을 받았던 때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자폐 장애인으로서 자신이 느끼는 세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가축의 세계에 그대로 투영해 볼 수 있을 만큼의 공감능력을 가졌던 템플은 그런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공장제 축산업계에서 가축을 조금이라도 더 인도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혁신을 이뤄냈다. 그 모든 일들은, 템플과 그의 주변 세계가 템플의 장애를 껴안고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힘들어도 결국 함께 살아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최근 서울의 한 동네에서는 일반 중학교 내에 발달장애인 작업장을 설치하기 위해 시작된 공사가 주민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는 일이 벌어졌다. 장애인 시설을 위험하고 불결하게 여겨 혐오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이런 시설들은 언제나 이런 대접을 받아왔고,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랬다. 여기서도 안 된다, 저기서도 안 된다, 밀리고 떠밀려 갈 곳이 없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무릎을 꿇고 호소했고, 비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자식들의 안전을 위한다며 끝끝내 그 호소를 외면했다. 그 아픈 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과연 언제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나게 될까, 하는 생각에 참담해졌다. 발달장애인이 위험한 게 아니라, 발달장애인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고 반영한 생활 지도와 교육 과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때문에 발달장애인이 때때로 보이는 과잉행동을 효과적으로 제지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아직도 잘 모른다. 비장애 아이들의 학업과 성공, 권리를 위해 쏟아 부어지는 관심과 자본에 비해, 장애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전무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 아이들은 아직 사회안에 들어와 있지 못하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재만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를 아직 만들지 못했다. 사람들을 각기 다양한 생김과 능력을 가진 존재로 보지 못하고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해내는 버릇을 우리는 아직 버리지 못했다. 장애인 시설을 들이느니 차라리원전을 들이겠다거나, 쓰레기 매립지를 들이겠다는 등의 대응은 우리가 지금 어떤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어른들을 보고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과연 지금보다 얼마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우리 어른들부터, 불편함을 마주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유쾌하게 살아나가는 힘을 길러 나가야 할 때다. 어른들의 무지를 일깨우고자,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한 고등학생이 써 붙인 대자보가 전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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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함께걸음 http://www.cowal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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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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