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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무엇일까.

스마트폰 게임, 닌텐도, 요즘은 포켓몬에 열광하지만 적어도 우리집에서는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고 아이들이 열광하는 놀이는 역시 '숨바꼭질'이다.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모습을 안 보이게 숨겨야 하는 긴박함, 그리고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술래의 기척을 들어가며 느껴오는 그 긴장과 떨림,

못 찾을 때의 통쾌함과 참아야 하는 웃음까지

숨바꼭질은 놀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미난 요소들을 다 품고 있다.

 

크고, 구불 구불 미로처럼 복도와 방이 펼쳐져 있는 단독주택을 얻어

이사를 왔더니 우리집에 놀러온 아이들은 이 집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가 '숨바꼭질'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냈다.

1층과 2층에 걸쳐 10개의 문이 달려있는 우리집은 아이들이 숨기에 제격이다.

쌓아놓은 잡동사니들도 어른들에게는 빨리 치워야할 골치아픈 짐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숨바꼭질을 더 재미있게 해주는 요소들이다.

몇 번 숨고나면 뻔해보이지만 그래도 매번 숨을 죽이고 찾아 헤매는 아이들은

지칠줄을 모른다.

 

지난주 친정아버지 생신잔치를 우리집에서 했다.

한 상 잘 먹고 일어난 조카들과 우리집 아이들은 바로 의기투합해서 숨바꼭질에

들어갔다. 명랑한 이모들이 술래를 맡아주니 재미와 흥분이 한층 더해졌다.

 

몸집이 가늘고 키가 큰 이룸이는 숨을 곳이 많다.

언니들은 안 들어가는 좁은 틈에도 기가 막히게 잘 숨어 든다.

세탁실 벽과 주방 냉장고 사이의 좁은 틈에 이룸이는 제 몸을 잘 끼워 넣었고

똑똑한 이모 술래도 결국 이룸이를 찾아내지 못하자 이룸이는 소리없이

웃느라 애를 먹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설거지를 하며 이룸이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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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뻔한 장소에 숨는게 통할 때도 있다.

윤정이는 이리 저리 찾다가 내가 항상 기타를 세워 놓는 뒤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나는 방석으로 옆쪽을 가려주었다. 얼마 가지 못하고 들킬 자리지만

윤정이의 재미와 흥분은 고스란했다.

 

아들 친구들이 몰려와 숨바꼭질을 할 때는 서랍장이 주저앉기도 하고, 가구가 휘어지기도 했다.

급하게 몸을 숨기려는 사내아이들은 조심성 없이 마구 몸을 밀어넣기 마련이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놀고 가면 어질러진 집안이며 망가진 물건들에 한숨이 나왔지만 나무라지는 않았다.

얼마나 신나게, 재미있게 놀았는지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마음껏 몸을 움직여 노는 재미를 요즘 아이들은 누리기 어렵다.

그냥 걷기만해도 발소리가 들린다고 이웃집에서 인터폰을 해대는 공동주택의 삶은

아이들의 에너지와 호기심을 억누르게 한다. 친구들이 놀러와도 간식을 먹고는

컴퓨터 앞이나 각자의 스마트폰을 켜고 게임이며 동영상에 빠져들기 쉽다.

 

그래서 우리집이라도 아이들이 마음껏 놀기를 바라는 것이다.

넓은 집, 숨고, 뛰어도 되는 집, 발을 구르고, 우당탕 계단을 달려 내려오고, 소리를 지르고

급하면 신발도 안 신고 마당으로 내달릴 수 있는 집이다.

바로 면해 있는 이웃집도 없고 집 옆은 산비탈이고 마당도 넓으니 아이들은 맘 놓고

놀 수 있다. 그게 우리집의 제일 좋은 점이다.

 

마음껏 놀 시간과 장소가 있으면 스마트폰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아이들에겐 어려서부터 그런 시간과 장소가 주어지지 않을 뿐 이다.

어른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 놀이, 저 혼자 놀 수 있는 놀이, 조용하고, 방해되지 않고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되는 놀이를 강요하다보면 방법은 결국 스마트폰 밖에 없다.

아이를 그런 환경에 넣어 두고 놀 줄을 모르네, 창의력이 없네, 몸을 쓰지 않네

할 수 있을까.

 

처음 이 집에 왔을때 이 집 현관에 '삼락재'라는 근사한 현판이 붙어 있었다.

'군자삼락'에서 나온 이름이겠으나 아이들은 집을 둘러보고 바로 '빌라빌라콜라'라고

붙여 버렸다. 말괄량이 삐삐가 사는 '뒤죽박죽 별장'이란 뜻이다.

늘 어질러져 있고 물건들은 뒤죽박죽 섞여 있기 마련이지만 그만큼 맘 편히

놀 수 있는 집이 우리집이다. 정리에 서툴고 게으른 내 성격도 이 집에 딱 맞는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고 항상 말끔하고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에서 사는

삶을 가끔 꿈 꾸지만 결국 그런 집은 내게도 너무 재미없어 보여 접고 만다.

아이들의 생기와 즐거움으로 늘 북적거리는 집이 더 좋다.

 

한바탕 숨바꼭질을 하느라 온 집을 어지르고서야 조카들은 돌아갔다.

넘어진 옷걸이며 쏟아져 나와 있는 짐들을 정리하며 조카들이 흘려놓은 웃음소리가

아직도 집안 구석 구석에 뒹구는 것 같아 행복했다.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집은 '숨을 곳이 많은 집'이란 말이 있다.

깨끗하고 넓은 집이 아니다. 숨을 곳이 많은 집이다. 그만큼 찾아낼 수 있는

재미가 많은 집이라는 뜻 이리라.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려고 어른들은 애쓰지만 결국은 어른들에게

편한 환경으로 결정하기 쉽다. 그 사이에서 아이들의 흥미는 또 눌려지고

막혀 버린다.

이 집에서 사는 일은 고되고 힘들다. 그러나 놀이와 재미가 있다.

그게 더 좋다.

 

다음에는 내가 술래가 되어봐야지.. 생각한다.

아님 나도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어린 술래가 나를 찾으러 올때까지 숨을 참아 보겠다.

숨바꼭질을 할 때는 얼마든지 어려질 수 있다.

우린 누구나 그런 아이를 마음속에 지니고 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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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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