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의 천국인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진가 2명이 길을 나섰다가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원숭이 떼와 맞닥뜨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으르렁대며 사냥중인 사자 몇 마리를 피해 달아나던 원숭이들이었다. 암사자 한 마리가 암컷원숭이 한마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내 목덜미를 물어 숨통을 끊어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원숭이에게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것 같은 새끼원숭이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잔뜩 겁을 먹었을 새끼는 줄행랑을 쳐서 바로 옆 나무 위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어린 아기에겐 벅찬 일이었다. 1m 가량을 올라가서는 아등바등 겨우 매달려 있었다.

새끼원숭이의 ‘실패한 탈출’을, 사자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죽은 어미원숭이를 이미 처분한 사자가 새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새끼원숭이는 놀랐는지 그나마 올라갔던 1m 높이에서조차 미끄러져 떨어졌다. 사자는 한발 더 다가서더니, 얼어붙은 원숭이에게 서서히 앞발을 내밀었다. 사냥의 흔적인 피와 흙이 묻어있었다. 공포와 혼란에 빠진 새끼원숭이는 자포자기한 듯했다. 조심스레 툭툭 건드리던 사자가 입으로 목덜미를 물어올릴 때까지, 원숭이는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사자는 땅바닥에 자리를 잡아 배를 깔고 앉더니, 새끼원숭이를 내려놓고 두 앞발로 감쌌다. 그리고 그대로 두었다. 더 이상 탈출 의지가 없어보이던 새끼 원숭이는, 얼마 뒤 사자 품에 기대는가 싶더니 사자 가슴팍에 입을 대고는 젖 빠는 시늉을 했다. 암사자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수사자 두 마리가 뭘 하나 싶어 궁금해 다가오자, 암사자는 공격적으로 그들을 쫓아버렸다. 마치 새끼 원숭이를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

사자 품의 원숭이 (출처:허핑턴포스트) » 사자 품의 원숭이 (출처:허핑턴포스트)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 모든 광경을 누구보다 초조하게 바라보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아빠 원숭이였다. 난리통에 몸을 피해 나무 꼭대기에 먼저 올랐던 아빠는, 사자 품의 제 새끼를 어떻게든 구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사자의 주의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조심스레 내려와 아기를 안아 들고는 입으로 물고 허겁지겁 다시 나무에 올랐다. 꼭대기에 돌아와 앉은 아빠는 아기를 꼭 안은 채 한참을 있었다.

진가들은 이 과정을 차곡차곡 담아 인터넷에 공개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어떤 이들은 고양이과 짐승들은 먹이를 갖고 노는 습성이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 더 지났다면 새끼원숭이도 먹어치웠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훨씬 많은 이들은 암사자가 어미 잃은 새끼원숭이가 가여워서 보호해주려 한 거라고 했다. 새끼원숭이의 딱한 처지에 암사자의 모성이 발로했다는 '낭만적' 이야기다.

후자라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건, 어쩌면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서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빠가 되고 나니 세상 모든 자식들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가 않다. 세상 모든 위험이 내 아이들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인 것만 같다. 얼마 전 대형 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불과 그보다 두어달 전 엄마가 된 한 후배가 생면부지의 피해자들에게 ‘제발 살아있어줘요’라고 외치던 걸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이고 보면, 결국 이 세상은 그런 아들 딸들이 사는 세상 아니던가. 그러니 부모가 되면서 세상에 대해 조금은 더 따뜻하고 책임감 있는 시선을 갖게 된 것도 같다. 아이들 덕분에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라, 외려 아이들이 고맙다.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4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글을 쓰고 며칠 뒤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그간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아직도 때때로 무단히 눈물이 맺히고 울컥합니다. 지난 16년 가량 엄마들 아빠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을 아이들의, 너무 일찍 다가온 명복을 빕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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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이메일 :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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