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형_.jpg

얼마 전 잠자리에서 <무엇이 나를 용기 나게(슬프게/행복하게/두렵게) 하나요>라는 제목의 책들을 읽어주다가 아이에게 물었다. “인이는 언제 용기가 나?” “돌멩이 큰 거 던질 때요.” 으이구~ 왜 아니겠냐. 로봇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용기는 힘세다는 의미다. 재미삼아 제목별로 내처 물어봤다. “그럼 언제 행복해?” “엄마가 놀아줄 때요.” “언제 두려워? 무서운 거 말야.” “엄마가 혼낼 때요.” “언제가 슬퍼?” “엄마 회사 가고 난 다음에요.”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어릴 때부터 일하는 엄마 대신 할머니와 이모가 돌봐준 덕에 아이는 엄마 껌딱지가 아니었다. 아이가 잠자기 전에 퇴근해 얼굴 보는 게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나 될까? 주말에는 주중에 못한 엄마 노릇 좀 해보자고 하루 종일 아이를 지켜보기는 하지만 안 하던 엄마 노릇이 주말이라고 잘될 리 있겠나. 나도 모르게 한두 번은 버럭질을 하게 되고 스리슬쩍 애니메이션 한편 틀어주고는 방에 들어가 낮잠을 자기도 한다. 빵점짜리는 아니여도 ‘과락’을 겨우 면할 정도의 엄마인데 아이가 느끼는 행복과 슬픔과 두려움, 그러니까 아이의 우주를 온전히 내가 채우고 있다니.

유치원에 입학한 뒤 셔틀버스를 타고 등하원을 하면서 몇 번 버스 타는 데 데려다 준 적이 있다. 아이는 버스가 올 때까지 뛰어다니고 소리지르고 무슨 엽기만화 캐릭터처럼 “하하하하” 웃어댔다. 애가 친구와 형들을 만나서 즐거워하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함께 기다리는 엄마가 말했다. “인이가 엄마랑 같이 오니까 어깨가 올라갔네요. 할머니나 이모랑 버스 기다릴 때는 얌전하거든요.” 아~ 다시 마음이 싸해졌다. 할머니와 이모는 아이를 볼 때마다 엄마보다 심하게 하트를 뿅뿅 날리는 양육자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엄마는 옆에만 있어도 기운이 펄펄 나는 사람인가 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종종 생각해보게 된다. 헌신이나 희생, 이런 단어들과 패키지가 되면서 엄마는 아이에게 사랑을 퍼주는 사람이라고 생각들을 하지만 과연 그게 맞을까? 엄마에게 아이는 사랑을 줘야 하는 존재라면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신생아 때 병원에서 바뀌었던 두 아이를 제 핏줄에게로 다시 바꾸려고 할 때 엄마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 그런데 막상 바꾼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케이타에게 미안하다”며 흐느껴 운다. 절대 바뀔 것 같지 않던, 키우던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쉽게 다른 아이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낀다. 반면 아이들은 (키워준) 엄마를 내내 그리워한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사랑일 것이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가 건강하게 큰다고 하지만 엄마 역시 아이의 무한한 사랑으로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갈 힘을 얻는다. 엄마 사랑해줘서 고마워. 우리 아기.


(*한겨레 신문 7월 1일자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180396/4bf/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50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험한 세월 살아가는 힘은 공부 imagefile [4] 신순화 2017-08-15 11011
50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세번째 유치원 면담을 가다 imagefile [1] 홍창욱 2016-11-13 11000
50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김치독립'이 진정한 어른!! imagefile [4] 신순화 2014-06-12 10964
»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아이가 주는 사랑의 힘…내리사랑은 틀렸다 imagefile [1] 김은형 2014-07-03 10952
501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안희정은 집안일을 했을까?...권력자와 가정주부 imagefile [5] 강남구 2018-03-08 10952
500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35편] 아줌마, 원격진료가 도대체 뭐길래! imagefile [2] 지호엄마 2014-03-25 10950
499 [하어영 기자의 철딱서니 없는 육아빠] 아내 뜻 받드는 것도 육아 imagefile [3] 하어영 2015-10-05 10948
498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고마워요, 고마워~ imagefile [2] 최형주 2016-12-16 10944
497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 잠들기 직전의 노래 imagefile [4] 안정숙 2017-05-17 10925
49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이들은 방학, 엄마는 개학!! imagefile [1] 신순화 2016-07-27 10918
495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 딸딸 엄마 임신부의 두 얼굴 imagefile [7] 안정숙 2017-11-11 10904
49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딸과의 친구사이, 졸업은 언제? imagefile [1] 홍창욱 2015-04-13 10904
49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엄마와의 수다, 유년 기억의 초대 imagefile [1] 홍창욱 2015-12-21 10898
492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뉴질랜드에서 만난 생태주의 imagefile [4] 정은주 2017-02-27 10894
491 [최형주의 젖 이야기] 푸우우우~~~ imagefile [2] 최형주 2014-02-27 10890
490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나보다 결혼 잘 한 사람 있나 imagefile [4] 최형주 2015-10-27 10887
489 [김명주의 하마육아] 사랑했던 아이돌이 아들의 의상에 미치는 영향 imagefile [10] 김명주 2015-06-30 10886
488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아들을 꼭 이겨야 했던 이유 imagefile [2] 김태규 2015-06-16 10856
487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우리집만의 12월 imagefile [2] 윤영희 2016-12-11 10854
486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imagefile [8] 안정숙 2014-06-01 10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