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꺼내놓고 싶었던 이야기.

직장맘과 전업맘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아주 원초적으로 "먹을 것"을 소재로 이야기해볼께요.

 

아이 다섯살때였어요. 그때는 제가 직장맘이었답니다.

야외 현장수업이었나 기관에 도시락을 싸서 보내야했습니다.

그때까지 다섯살 아이에게 김밥 한줄 사먹인 적도, 집에서 김밥을 해 먹인 적도 없었어요.

회사 다니느라 바빴고, 아이랑 같은 반에 어떤 아이들이 있고 그 엄마들 연락처는 무엇인지도 알기 어려운 폐쇄적인 기관에 다니던 차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어떤 도시락을 준비하는지 정보를 얻을 틈이 없었지요.

 

제가 싼 아이의 첫 도시락은

새로 지은 밥에 아이가 좋아하는 애호박볶음과 소세지 등의 반찬이 담겨있었지요.

처음엔 아이가 잘 먹었다고 했습니다.

두번째였나 세번째였어요. 기관장님께서 저에게 살짝 귀띔을 해주셨습니다.

다들 김밥을 싸오는데, 햇님군만 맨밥에 도시락이었고, 아이 표정이 좋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기관장님께서 아이에게 김밥을 주려하니 극구 사양하더래요.

다음번엔 김밥을 싸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 머리가 띵하고 울렸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김밥을 먹는데, 그냥 도시락을 먹는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갑자기 너무 미안해졌습니다.

 

2010년까지 김밥은 저에게 사먹는 음식이었습니다.

김밥을 집에서 만들기란 상상도 하기 힘든 품목이었어요.

속에 든건 어찌나 많고, 밥은 양념도 해야하고, 김밥 마는건 어찌나 힘든지.

어쩜 그렇게 힘든걸 만들어먹나했지요.

아이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게 되면, 부엌이 전쟁터가 되었고, 시간도 참 많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2011년부터 전업주부를 하게 되면서, 김밥은 좀 다른 의미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집에서 밥을 해먹다보니 김밥은 오히려 쉬운 끼니거리가 되더군요.

적당히 있는 재료를 자르고 후라이팬에 볶아서 김과 밥으로 대충 말면 끝!

요리를 제법 해야하는 전업주부 엄마들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은 바로 김밥이었습니다.

 

어제. 아이가 현장학습을 가야했고, 저는 또 도시락을 싸야했습니다.

김밥을 싸야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예의상 아이에게 물어봤어요.

"도시락에 뭐 싸줄까? 뭐 먹고 싶어? "

이 질문, 중요합니다.

제가 직장맘일때는 이런 질문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이죠.

이 질문이 저를 잡습니다.

 

우리 순수한 햇님군.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 있잖아. 그런데 지난번에 누구는 사람모양 도시락을 싸왔더라. 소시지를 잘라서 몸을 이렇게 만들고, 밥으로 머리를 만들고 ~~~~"

 

헉!!

이 말씀은 사람모양 도시락을 준비하란 말씀이시지요?

사람모양 도시락은 어떻게 만드는거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민을 하다가

나중엔 화가 났습니다.

아니아니 어떤 엄마가 먹을걸로 장난을 치는건지!!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사람모양 도시락이 먹고 싶다는데..

없는 솜씨 재주를 부려봐야죠.

 

새벽에 일어나 정말 곰이 재주를 부리듯 도시락을 만들었어요.

결과물은 글쎄요.

아무래도 첫 도전이니만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막판에  김으로 눈 만들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_-

그래도 도시락 바닥에 깐 편지로 엄마의 미흡한 솜씨는 커버가 될거라 생각했답니다.

 

내심 뿌듯한 마음에 도시락 사진을 찍어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는데,

친여동생이 제게 비수를 꽂았습니다.

 

" 쫌....

 

그래... 무서워--"

 

너무한거 아닙니까?

동생의 말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도시락 열어보고 애가 실망하면 어떻게 하나. 다른 친구들이 놀리면 어떻게 하나.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그게 도시락인줄 모르고 쿠키인줄 알더라구요.

 

현장학습 다녀온 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도시락 잘 먹었는지, 어땠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이 왈 "어 근데 외눈박이더라"

 

김이 떨어졌나봐요. 참기름으로 열심히 붙였는데. .

 

 

원래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랬다고 이야기하니 두명의 눈이 하나씩 떨어져서 외눈박이였다고 합니다.

밥 바로 밑에 편지를 넣긴 그래서, 은박지 밑에 코팅된 아이사진과 편지를 넣었는데,

귀뜸하지 않아서인지 아이는 편지를 찾지도 못했습니다.

이런이런 ㅠㅠ

 

저녁에 둘째 여동생에게 전화가 와서 도시락 사건을 이야기했어요.

제 전화통화를 들은 햇님군.

잠자리에서 한마디 합니다.

원래 도시락을 열어보고 기분이 별로였대요.

하지만 원래의 도시락 사진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고 하네요.

 

 

착한 아들이지요??

엄마의 도시락을 깔끔히 다 먹어줬고,

처음엔 잘 먹었다 맛있었다 이야기했는데, 잠자리에서 살짝 속내를 들춰냅니다.

 

다른 엄마들이 만든 귀티나는 도시락, 멋진 도시락을 앞으로 계속 예의주시하면서 만들어내야하나.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참 우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예전과 비교했을때 아이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햇님군은 제게 좀더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멋지지않나요?

 

 

저는 직장맘일때도, 전업맘일때도 야외학습 도시락은 영 2% 부족한 엄마입니다.

막 직장을 그만두고 주위를 둘러보니, 흔히들 생각하는 직장맘에 대한 편견과 다른 직장맘이 보이고, 전업맘의 전형과 다른 전업맘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엄마라는 이름앞에 유급노동자냐 아니냐의 딱지를 붙이고 가르는 일.

그것이 만약 모든 엄마들의 복지 개선을 위한 일이라면,

전업맘과 직장맘의 차이를 정확하게 찾고, 그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들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라면 곰곰히 잘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길고도 끝이 없겠지요.

 

 

작은 제안 해보겠습니다.

 

직장맘이어서 아이를 잘 케어하지 못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드시나요?

전업맘이어서 가계경제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드시나요?

 

그 죄책감이 당신을 누르는 시간을 1분 1초라도 허하지 마십시오.

어두운 마음이 당신을 짓밟는 시간에 아이의 마음속에 잠깐 머물러보세요.

 

도시락을 드시고 싶으신지. 김밥이 드시고 싶으신지.

여쭤보십시오.

 

아이와 대화를 나누세요.

지금 당신곁에 있는 소중한 아이와 지금. 지금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루하루에 감사하세요.

 

001.jpg 002.jpg

노란색은 계란노른자로 초록색은 브로콜리 가루로 색을 냈답니다.

주먹밥속엔 소불고기가 들어있고, 반찬으로 작은새송이버섯과 동그랑땡이 곁들여져있지요.

과일은 사과, 골드키위, 청포도, 그리고 삶은 달걀.

나름 열심히 만들었으나 2% 부족한 도시락. 외눈박이였다니. 충격이지요 ㅠㅠ

005.jpg

   멋지게 한복입고 현장학습 다녀온 햇님군!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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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희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이 시대의 평범한 30대 엄마. 베이스의 낮은 소리를 좋아하는 베이스맘은 2010년부터 일렉베이스를 배우고 있다. 아이 교육에 있어서도 기본적인 것부터 챙겨 나가는 게 옳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아이 교육 이전에 나(엄마)부터 행복해야 한다고 믿으며, 엄마이기 이전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행복을 찾고 있는 중이다. 엄마와 아이가 조화로운 삶을 살면서 행복을 찾는 방법이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이메일 : hasikicharu@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bass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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