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머리 커, 벗을 때 아파.”
 
남편과 나는 어디 내놔도 남부끄러운 외모를 지녔다. 하여 둘 사이에서나마 외모 우위를 선점해볼까 싶어 틈날 때마다 서로의 외적 결함을 지적하는데, 순도 백퍼센트의 진심을 담은 공격 끝에는 우리의 결정체 아이에 대한 한줄 평도 빠지지 않는다.
“엄마 안 닮아 정말 다행이다.”
무얼 안 닮았다는 건지 알기에, 가슴 쓸어내리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줄곧 까무잡잡했다. 당연하다. 마이클 잭슨 빼고 까맣다가 하얘진 사람 얘긴 들은 적도 없다. 우유에 세수하면 하얘진다, 오이를 붙이면 하얘진다는 이야기에 솔깃한 날도 있었다만 미백 효과가 좋다는 레블라이트 시술 백 번을 받은들 내 피부가 하얘질 리가.
내겐 까만 피부색이 콤플렉스였다. 그나마 이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겠다, 새로운 사람 만날 일도 잘 없겠다, 어지간하면 화장으로 가려지니 좀 낫다만 어려서는 까맣다, 까맣군, 까맣네란 말을 어찌나 들었던지,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 했거늘.
특징적 외모가 있다 보면 다른 이들로부터 ‘아, 그 ○○한 애’로 통하기 마련, 결국 나는 아, 그 까만 애?가 됐다.
인도 사람 같다, 동남아 스타일이다,란 말도 제법 들어 인도인과 동남 아시아인에 대한 묘한 동족의식 마저 싹 터 그들에 대한 차별이 나에 대한 차별로 느껴질 정도였다.
한 후배로부터 “아니, 선배는 까맣기만 하지, 이목구비가 전혀 그쪽 스타일이 아니야, 동남아 사람들은 또렷또렷 예쁘다고!”란 직언도 들었다만 피부색만큼은 전통적인 한국인보다 동남아인에 가까운 게 사실이었다.
하얀 피부가 열 가지 결점을 가린다면 까만 피부는 열 가지 이상의 결점을 도드라지게 하는 법. 내 아이는 백옥까진 아니더라도 평균적인 한국인 피부에 가깝길 바랐다.
행인지 불행인지 까만 엄마의 아들은 외모적으로 완벽하게 아빠를 재현해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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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로 말하자면, 어디로 보나, 누가 보나 곰이랄까.
‘대두, 저주받은 체구’라며 무수한 범인을 약 올리던 가수도 있지 않았던가. 강동원, 이나영 류의 소두가 각광받는 세상, 남편은 똑똑한 사람치고 머리 작은 사람이 없다며 정신승리를 거듭하는데!
아인슈타인이며 안철수 씨 머리가 크긴 하다. 어려서부터 큰 머리 일화가 몇 가지 있기도 하더라. 실제로도 머리 큰 사람이 아이큐가 높다는 보고가 있기도 했다. 허나 그렇다고 머리 작은 사람이 아이큐가 낮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툼한 손발에 어디 내놔도 모자람 없는 머리 크기를 자랑하는 남편, 집안 내력인들 남편 형제들, 시조카들까지 빠짐없이 머리가 크다. 커.
막내동서는 걱정 마란다.
“형님, 괜찮아요, 남자애니까. 전 애들 어깨를 키워 주려고요!”
어깨를 강화해 머리 크기를 은폐하려는 작전을 이미 세웠을 정도로 이 집안 남자들의 큰 머리는 공공연한 사실이거늘,
남편은 한사코 우리 애 머리가 무어 크냔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알아 버렸다.
단추 없는 옷을 벗을 때마다 “머리 아파, 머리 아파.”를 연발하기에 “할 수 없어, 네 머리가 커서.”하는 말을 몇 번 들은 탓인가.
“네 머리 하나도 안 커. 엄마 이상하다.”란 고슴도치 아빠의 감언을 기꺼이 뿌리치고 진실을 직시하기에 이르렀다.
“아니야, 내 머리 커. 벗을 때마다 아파.”
 
맞아, 아들아. 사실 넌 머리가 좀 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의사 선생님이 머리가 너무 큰데,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거든. 그때마다 엄마 심장은 덜컹 허리춤까지 내려앉았지.
“집안 내력이에요.”하자, “그렇다면…”하시기에 한숨은 돌렸다만 마음 한쪽에 불안이 있었지.
다른 아이들보다 매사 느린 너를 볼 땐 머리둘레가 자꾸 마음에 걸리더라고. 영유아 검진 때 보니 머리둘레 백분위가 95더라고! 백 명을 놓고 보자면 네 머리가 다섯 번째 정도로 크단 이야기야.
몇 가지 검사를 하다 네 머리 둘레를 재고 뇌 촬영을 해보자던 병원도 있었어.
그렇게 너의 머리 크기는 엄마의 근심이었단다.
 
그러하니, 괜찮아.
머리 좀 크면 어때.
기껏해야 옷 벗을 때 머리 좀 아프고, 얼굴이 주먹만 하다는 격찬 좀 못 받고, 몇 번밖에 안 입었는데도 티셔츠 목이 죽죽 늘어나기밖에 더 하겠니. 두상과 신체가 조화로운 황금비율 따위는 애초에 관심도 갖지 마.
시대 분위기가 네 머리 크기를 환영하지야 않겠지만, 괜찮아, 아빠 아들이잖아.
 
오늘 아침 유치원 등원 준비를 하던 아이는 티셔츠를 껴입다 말고 한 마디를 보탰다.
“입을 때도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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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나이 마흔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들 한 마디 할 동안 열 마디 한다며 타박 받을만큼 급하고 남 이야기 들을 줄 모르는 성격이었거늘, 걷고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늦된 아이를 만나고 변해갑니다. 이제야 겨우 기다리고,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람에게 처음 다가온 특별함,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의 이야기가 따뜻함으로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이메일 : toyo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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