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CN5038.JPG



점점 무더워지는 6월.
텃밭은 누군가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손에 들고 있다 한번 놓치면 영영 찾기도 힘들 것같던 작은 씨앗들 속에
어쩜 이런 힘이 숨어 있었을까.
6월 들어 처음 텃밭에 간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밭 전체가 커다란 분만실 같아!!'


DSCN5050.JPG

초음파 없이도 아가들이 자라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밭은
그 자체가 식물들의 분만실같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호박 아기.. 아고..이뻐라.
첫아이 임신하고 10주쯤 되었을 땐가,
작고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던 뱃속 아기를
산부인과에서 처음 보았을 때 느낌도 딱 이랬던 거 같은데.

DSCN5051.JPG

몇 번 키워본 경험이 있는 토마토는 어쩐지,
둘째 아이를 키울 때 느낌이 든다.
음, 이 다음엔 니가 이렇게 될 때지?
조금 더 지나면 이게 필요할 거야..

뭔가 좀 알 것 같아서 느긋하게 바라보게 되고,
처음 키우는 작물보다 조바심이나 두려움이 덜 한 것 같다.
조금만 돌봐주면 스스로 알아서 잘 자라는 토마토 형제들,
다음에 가면 빨갛게 익어있을텐데..
얼마나 달고 맛날까.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DSCN5047.JPG

가지네 아기들도 참 신기하고 이쁘다.

열매랑 꽃이랑 어찌 저리 보라색 세트일까.

맛나고 귀한 빛깔의 완소 여름 채소인 가지는

날 때부터 신비한 보라빛을 품고 태어나다니, 우월한 유전자.. 부럽다.^^


DSCN5052.JPG

인간의 아기들도
밭에 있는 식물들만큼이나 아름답다.
여름이 다가오니,
밭은 봄보다 더 많은 생명들로 북적거리는데
아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가 되어주고 있다.

DSCN5044.JPG

뭘 하느라 저리 나란히 앉아 한참을 있는 걸까.
앞에 가서 보니, 땅 속의 벌레들에 매혹되어 눈들이 반짝반짝..
밭일하는 틈틈이 아이들의 이런 뒷모습이 너무 이뻐 자꾸 돌아보게 된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텃밭 식물들처럼
너희들도 싱싱하고 튼실하게 잘 자라렴.


DSCN5053.JPG

봄에 같은 생협모임 엄마가
밭 한켠에 심어둔 꽃 모종이
이렇게 부케처럼 풍성하게 피었다.

채소들이 자라 열매를 맺고, 꽃도 함께 피어나고
6월의 텃밭은 생명의 기운이 그득그득하다.

좀 더 무더운 한여름이 오면 밭은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분만실같을 거다.
오이와 토마토와 옥수수가 날마다 태어나는 곳.

하루하루 진이 빠지도록 열심히 사는데도
뭐 하나 나아진 것 없는 어른들의 일상에,
날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성장이
작은 기쁨과 보람이 되는 것처럼
텃발 식물들의 성장을 보며 생명의 신비로움과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느끼게 된다.

뭔가 하나도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끝난 날이면
어쩐지 텃밭에 잠시라도 들러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매일매일 생명이 자라고 태어나는 자연의 분만실.
식물 엄마들..
맛나는 물과 흙, 햇빛 많이 먹고 아가들 열심히 키워요!!


((그나저나 식물 엄마들은 좋겠어요. 메르스 걱정하지않아도 되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건지...!! 빨리 안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81886/c8f/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605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봄에는 꽃구경, 주말 책놀이는 덤 imagefile [5] 양선아 2014-04-07 13098
604 [윤은숙의 산전수전 육아수련] 제가 왜이럴까요? 자식 상대성이론에 대하여 imagefile [4] 윤은숙 2017-04-06 13075
60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내 아이를 싫어하는 아이, 아빠 마음은 긴 강을 건넌다 imagefile [6] 홍창욱 2014-12-18 13063
602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 오늘이 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라면 imagefile [12] 안정숙 2014-11-13 13056
60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셋째가 입학했다!! imagefile [5] 신순화 2017-03-02 13052
600 [윤은숙의 산전수전 육아수련] 끝없는 아픔, 끝까지 함께 imagefile [8] 윤은숙 2015-04-20 13041
599 [김명주의 하마육아] 인생 리셋, 아들과 함께 하는 새 인생 4년차 imagefile [2] 김명주 2015-12-08 13039
598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아들 이해하기, 산 너머 산 imagefile [4] 윤영희 2014-10-15 13028
597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아들의 사춘기에 임하는 엄마의 십계명 imagefile [2] 정은주 2017-07-17 13027
59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이들 플리마켓 셀러로 참여하다 imagefile [2] 홍창욱 2017-11-28 13026
595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백만불 짜리 다리 케이티, 수영장 가다 [4] 케이티 2014-06-13 13022
594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꽃 길만 걷게 하진 않을게 imagefile [2] 정은주 2018-12-05 13006
59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이들 정치교육은 투표장에서부터.. imagefile [13] 신순화 2014-06-05 12989
592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할배요~ imagefile [1] 김외현 2014-02-11 12988
591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세월호 참사 이후 엄마보다 아이 생각 imagefile [1] 전병희 2014-08-04 12981
590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주중 어린이집 행사, 맞벌이 부모에겐 곤란해 imagefile 양선아 2014-11-11 12967
589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첫아이 중학교 보내기 imagefile [6] 윤영희 2016-03-07 12965
58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우리 가족이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방법 imagefile [2] 신순화 2019-01-04 12948
58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픈 부모를 돌보는 일 imagefile [6] 신순화 2017-01-25 12938
586 [김명주의 하마육아] 머리 커도 괜찮아, 아빠 아들이야 imagefile [7] 김명주 2016-07-18 12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