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이었던 90년대에는

'또하나의 문화'에서 나온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많은 글들 가운데 <고립된 엄마>라는 어떤 주부의 생생한 기록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습니다.

어릴 때는 평화롭고 잔잔하게 느껴졌던

엄마들의 일상과 삶의 이면에는

생각보다 많은 고민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90년대에서 2000년으로 막 넘어가던 그 시기에

제 주변의 선배들은 공동육아를 만들거나 생협을 이용하며

육아와 살림을 자기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만 해결하지 않고

사회화시키고 싶어했습니다.

날마다 이어지는 각종 모임의 회의에, 그럼에도 입시교육 중심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선배들의 일상은 고달퍼 보였지만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가는 모습들이

미혼인 저에게는 부러워 보였지요.

 

저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그 흐름 속으로 들어갈 거라 믿었고 나는

60년대에 태어난 선배들과는 다르게, 뭔가 또 다른 육아문화를 만들어봐야지

하는 욕심과 야심?같은 게 있었던 거 같습니다.

90년대를 살던 아이들의 교육환경도 많은 문제가 있었는데(그때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요즘 엄마가 된다고 연락옵니다...)

답답한 마음에 베낭여행을 떠났다가

큰 베낭 둘러맨 채로 스위스에 들러 발도르프 교육 연수도 받았으니

이제 아이만 있으면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국제결혼을 했다는 겁니다.

외국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지, 2년만에 아이를 낳고 보니

정말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더군요.

나에게 맞는 육아정보는 어떻게 찾을 거며, 엄마 친구, 아기 친구들은 도대체

어딜 가면 만날 수 있는 거지?? 일도 하고 싶은데 어딜 가서 일자리를 찾지?

한국에서의 경력이 여기서 통하기는 할까?

 

그제서야 한국이라는 홈그라운드의 소중함이 절절히 느껴지더군요.

똥개도 자기 동네에선 30점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저에겐 그 30점 조차도 없었으니까요.

남편의 소개와 같은 아파트의 아기 엄마들 몇몇을 겨우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내게 되긴 했지만, 저는 기저귀는 어떤 메이커가 좋고 장난감은 어떤 게 좋고...

하는 주제를 좀 넘어서는 대화에 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습니다.

일본도 전업주부들의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고

일하는 엄마는 엄마대로 바쁘고 고단하고

그 두 그룹의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고 만날 기회는 잘 없어 보였습니다.

 

백화점 수유실에서 아기를 안고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이대론 안되겠다! 싶더군요.

나와 아기에게 맞는 친구를 찾아내고야 말리라!

우선, 가치관이 맞을 듯한 그룹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가 가입해있던 생협에서 먼저 시작해야겠다 싶었죠.

일본은 한국보다 생협의 역사가 긴데

마침 시어머니께서 30년 동안 쭉 생협을 이용하시고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요리교실이나 육아모임을 많이 연다고 하더군요.

용기를 내어 일단 괜찮겠다 싶은 모임에 참가신청서를 냈지요.

 

그렇게 시작된 생협 친구들과의 만남 덕분에

모노톤이던 제 육아환경이 무지개빛으로^^

첨가물이 없는 자연 재료로 아이들과 함께 요리해서 점심을 차려 먹고

그림책을 읽거나 놀다가 헤어지는 식이었는데

엄마와 둘만 있을 때와는 아이의 웃음의 질이 다르다는 걸 느끼곤 했죠.

엄마 아빠가 완벽한 양육을 한다 하더라도

아이가 그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문화'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DSCN0648.JPG

 <<아이들과 함께 피자를 만드는 모습>>

 

큰아이를 키우면서

어설펐던 일본어와 서로 다른 문화 차이 탓이었는지

유치원 엄마들과는 빨리 쉽게 친해지지 못해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도 이 생협 친구들과 만나면

긴장이 풀리고 힘을 얻고 돌아오곤 했지요.

(첫아이를 키우면서 보낸 어두운 육아기는 소설 한 권 분량이라,, 다음 기회에...)

누구 집은 몇 평이고 00차를 타고...그런 얘기듣다가 여기 친구들을 만나면

"00공원에 오리가 새끼 낳았는데 봤어??  너무 귀여워~"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아무튼 아이는 점점 크면서 그 모임 친구들 만날 날을 기대하고 만나기만 하면

친구들과도 너무 잘 놀고 기분이 좋아선지 평소 싫어하는 음식을 마구 먹기도^^

아이가 즐겁고 신나면 엄마는 저절로 편해지는 법.

그렇게 자란 큰아이가 벌써 초등 3학년.

모임의 큰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니 동생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놀아주거나

함께 만들 수 있는 음식도 다양해지더군요.

그동안 이 모임은 멤버교체가 되기도 하고 프로그램 내용도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했는데

아이 어른 모두 흥분의 도가니였던 수제 소시지 만들기는 아빠들도 감동하게 만들었다는^^

그리고 저번 글에서도 소개했듯이 된장도 만들고 발렌타인 때는 초콜릿도 만들구요.

 

요즘은 아이들에게 채소를 많이 먹이자! 를 테마로 

디저트까지 채소로 만드는 시도도 해 보았습니다.

 

IMG_4271.JPG

<<김밥과 시금치 롤케잌.

     초등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서 모양이 그리 반듯하진 않지만 맛은 대성공^^>>

 

제가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는

여행을 다니면서 '요리'라는 게 삶에서 참 중요하구나.. 는 걸 느껴서입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각 나라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유스호스텔 부엌에서 현란하게 맛나보이는 요리를 하는

사람 곁에 하나 둘 모여 들어 이게 뭐야?를 시작해 금방 친구가 되고

자연스레 자신의 나라와 문화에 대해 얘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외국어도 많이 늘구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요리가 자립의 기초가 된다는 건데,

집안 살림 중에서도 청소, 빨래는 좀 미뤄도 되지만 먹는 것만큼은

끼니마다 안 챙길 수 없잖아요? 특히 아이들이 있는 경우엔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지요. 저는 요리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아직도 가끔씩

저녁밥 할 때가 되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데... 날마다 해야만 하는 음식만들기를

즐기면서 할 수 있다면... 결국 함께 만들어 먹는 방법이 제일이더군요.

남자아이건 여자아이건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을 갖고 하나씩 스스로 만들 수 있다면

자립하는데도 도움이 되지요. 요리 잘 하는 남자 멋있잖아요?^^

먹는 것에 관심많은 일본인들 중엔 남자들도 기본적인 요리를 잘 하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 이 모임은

아직 둘째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녀 어리긴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일을 하고 있어 예전보다 자주 만나진 못합니다.

사무직, 컴퓨터 관련 회사, 중학교 영어교사 등의 직장맘도 있고

저처럼 일주일에 몇 일만 일하거나 집에서도 가능한 일을 하며 비교적 시간여유가 있는

엄마들도 있고, 전업맘이라 해도 생협같은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다들 나름대로 바쁘지요. 그래서 요즘은 주로 일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모이는데

다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만나면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

자극도 많이 되고 너무 재밌어요.

저랑 마음이 가장 잘 맞는 미츠코란 친구는 이 모임에 오면     

"몸 속의 세포가 기뻐하는 것 같다"고 그러더군요.

 

 

DSCN0653.JPG

<<누나 옆에서 열심히 피자를 만드는 둘째 모습.

     피자 소스 바르는 게 재밌었던 모양인지 너무 떡칠을 하네요^^  >>

 

 

사람들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하는 우리집 두 아이는

이 모임에만 가면 엄마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는데(그래서 제가 이 모임을 그렇게 좋아하는지도^^)

많은 또래 친구들과

아이가 하는 말이라도 대충 듣지 않고 열심히 상대해주는 어른들 속에서

그야말로  "몸 속의 세포가 기뻐하는 듯"  행복해 보입니다.

 

어쩌면 저는 요즘 유행하는 육아 정보를 너무 몰랐던 것이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내 식대로 내 상상력대로 아이를 키웠으니까요.

둘째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큰아이가 열살쯤 되고 나니

내 마음가는 대로 키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본에서 자랄 아이들이니 한국 교육을 따라갈 수도 없고,

일본 교육도 잘 모르니 괴로울 때도 많았지만,

에라,, 모르겠다! 내가 선 자리가 육아의 해방구라 생각하고 맘대로 키워보자!!싶었죠.

 

저는 요즘 한국사회를 구체적으로 겪어보지 못해 육아환경을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일본의 육아환경도 경험한 것 외에는 다 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 모임을 이어오면서도 어찌 좋은 일들만 있었겠어요..

준비하느라 고생하는 사람들은 늘 정해져있고,

힘든 일에는 싹 빠지는 얄미운 사람들도 있었고

사소한 오해로 잘 지내다가 연락을 끊어 마음고생한 적도 있고...

하지만, 저로서는

생전 겪어보지도 못한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에 적응해가야 하는 스트레스나,

지진과 방사능 문제,

두 아이가 점점 나와 한국어로는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는

문제해결이 어려운 복잡한 고민을 늘 안고 사는 터라...

그런 무거운 마음 잠시 내려놓기 위해서라도 이런 모임이 꼭 필요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육아문제는 더 이상 각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고

정책적으로도 많은 개선과 발전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동네, 마을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생활문화를 우리 스스로

아주 소박한 것이라도 하나씩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이곳 베이비트리도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있고

바다 건너 사는 저까지 엄청 영향받고 있습니다.^^

(서천석 님, 신순화 님의 팬입니다)

오늘도 저희집 둘째는

유치원 버스 오기 15분 전에 일어나 폭풍세수와 아침밥먹기로 겨우겨우 버스에 올라탔지요.

그 15분동안도 장난감가지고 더 놀다 유치원갈거다 어쩐다 울고불고...

날마다 큰 산을 몇 번씩 넘어야하는 힘든 시기지만

많은 분들의 육아기를 읽으며

결국 육아가 우리의 삶을 진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다가 제 삶으로 돌아오면 다시 짜증많고 잔소리많은 엄마가 되긴 합니다만..

그래서 육아는 혼자가 아니라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과 함께 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의견을 듣다 보면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댓글쓰기조차 그토록 귀찮아하는 제가  이렇게 여기서 글을 쓰고 있네요!

베이비트리가 사람 하나 바꿔놓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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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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