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모이기 위해선

'공간'이 필요합니다.

안전하고 아늑한 실내에 가지고 놀 장난감과 그림책이 조금 있고

화장실과 세면대가 딸려있으면 그걸로도 충분하지만,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을 만큼의 넓이에

음식을 데우거나 간단하게 요리도 할 수 있는 부엌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딱'이죠.

만약 그런 시설이 내가 사는 동네나 아파트에 있다면 어떨까요?

전기나 수도요금 정도의 이용료만 지불하고

주민들이 돌아가며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시설이 있다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일본의 아파트는 입주자들의 공동시설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도 지은 지 8년이니 아주 최근에 시작된 건 아닌 거 같네요.

파티룸(공동부엌과 식당)

키즈룸(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 장난감이 조금 있고, 입주자들이 기증하는 경우도 있음)

게스트룸(입주자들의 손님들이 숙박하는 시설)

등을 갖추고 있는데, 이용료도 만원 - 2,3만원 정도로 저렴한 편에

모델하우스를 공개할 때 이런 시설을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아파트도 많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부엌 공간은 그리 크지 않지만

사면에서 사용할 수 있으니 여러 명이 부엌에 몰려도 쓰기가 무지 편해요.

벽에 붙어있는 경우보다 함께 씻고 썰고 볶고 닦고 수납하는 게 동시에 이루어지니

치우는 일도 후딱 끝나더군요. 수납장 속에는 식기와 수저 컵 냄비 등이 있는데

아이들 전용의 귀여운 캐릭터 숟가락과 포크도 구비되어있어

작은 부분에서도 역시 아이들을 배려하는 일본 사회의 문화를 느끼게 합니다.

 

 

30명 정도는 거뜬히 앉아 먹을 수 있을 만큼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저기 오른쪽 끝엔 키즈룸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어

아이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놉니다. 더구나 여긴 1층이고 바닥이 카페트라 맨발로 뛰어도 되고

더할 나위없이 좋은 건 큰 창문 밖은 바로 놀이터로 연결된다는 사실!

초등학생 정도 되면 자기들끼리 나가서 놀다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 공간에서 지난 8년동안 추억이 참 많습니다.

아이 생일잔치도 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도 하고 졸업과 입학 기념으로 모이기도 하고...

한국같으면 김치도 함께 모여 담고... 할 수 있는 게 더 많을텐데

여기서 친하게 지내는 한국 친구들이 제가 사는 곳과 멀어서 늘 그게 아쉬워요.

저는 일본 생협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거기 친구들이랑 뜻이 제일 잘 맞아서

이 공동부엌에서 계절마다 제철음식을 만들곤 합니다.

작년엔 생협 콩제품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의 제안으로

된장을 만들었어요. 한국 된장이 아니라 일본 된장(미소)인 게 제겐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첨가물 하나 없이 만든 된장국맛은 환상적이었답니다!

파는 물건에 의지하지않고 이런 걸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곧 다가올 겨울에도 함께 모여 만들 예정인데

아이들이랑 콩을 삶고 찧고 하는 게 - 혼자라면 엄두를 못 낼 일인데

이렇게 함께 하는 사람과 공간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죠.

 

 <<작년에 담은 된장 모습.

     직접 만든 거라 생각하니 너무 사랑스러워서 이쁜 도자기 용기에 고이 모셨어요^^>>

 

 

지난 11년동안

아이를 겨우 둘밖에 키워보지 않았지만

엄마가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써도

혼자서 아이들을 키울 수는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낍니다.

제가 사는 곳이  젖과 꿀이 흐른다는 친정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고립감을 더 많이 느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역시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라는 게 맞다는 확신이 들어요.

 

얼마 전에, 공동부엌에서 아이 열 명 어른 여섯 명이 모여

저녁밥을 지어 먹었는데  금방 퍼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밥을 작은 아이가 보더니

"와... 구름같다!!!"

이러더군요.

서너 명이서 먹는 밥보다 여럿이서 우르르 몰려 함께 먹는 밥이 더 맛있는 법이죠.

 

키즈카페에 가면 밥도 편하게 앉아 시켜먹고

아이들도 실컷 놀게 할 수 있지만

소란스럽고 공기가 답답한 그곳에서  웬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는 건 저뿐인가요?^^

제가 너무 아날로그 감성에만 정체되어 있는 걸까요..

일본도 모든 아파트에 이런 공간이 있는 게 아니고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이용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동내 골목마다 아파트마다 이런 공동시설을 주민들이 자주적으로 이용하고

함께 뭔가를 하는 문화가 어느 나라나 더 필요한 시대인 거 같아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기나 공작교실 등

야심찬 계획을 엄마들과 준비 중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지만

언젠가는 어른들끼리만 모여

재즈와 함께 맥주파티를 열었으면.. ^^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요.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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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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