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룸19.jpg

 

"엄마.. 왜 밤만 되면 무서운 생각이 드는 걸까요.

무서운 꿈을 꾸면 어떻게 해요?"

잘 시간만 되면 여섯살 막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서 울먹이곤 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얘기인줄 알았는데

아이는 낮엔 잘 놀다가도 잘 시간만 되면 울면서 매달리곤 하는 것이다.

 

"무서운 생각이 뭘까?"

이렇게 물었더니 이런 저런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 괴물한테 잡혀 먹으면 어떻게 해요. 무서운 괴물들이 많이 있잖아요.

... 전쟁이 나서 다 죽으면 어떻게 해요? 도둑이 들어오면요."

이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얼마전에 큰 아이와 제법 무서운 공상과학영화를 보았는데 오며 가며 흘깃 보던

이룸이한테 무서움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었나보다.

요즘 우리 마을에 바바리맨이 나타나서 한동안 뒤숭숭했었는데 유치원 선생님이

조심하라는 안내를 해 준 것도 일부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유럽 난민 사태가 심각해진 후 밥상에서 큰 아이들과 신문을 읽어가며 난민들이 생기는

원인을 설명해주면서 주로 전쟁이 일어나 살기가 어렵고 위험해진 나라의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함께 들으며 나름대로 전쟁에 대한 공포를 느꼈을 수 도 있다.

자기 자신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세상에 무서운 것들이 많다는 생각들이

여섯살 어린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있었다.

 

사실 아이들과 대화를 할때 이룸이를 따로 배려하는 일이 드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겠거니, 그러니까 상관없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룸이는 다 듣고 있었고, 잘 알 수 없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은

어둡고 무서운 감정으로 쌓아 두고 있던 모양이었다.

 

즐거운 생각을 해 보자,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볼까? 하며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이의 생각을 돌려보려고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음... 그럼... 주문을 외워보자. 마법의 주문이야."

"주문이요?"

"응, 오빠도 여섯살때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잠 잘때마다 울고 그랬거든.

그때 주문을 만들었어. 좋은 꿈만 꿀 수 있게 하는 주문."

 

그랬다. 꼭 이룸이 나이때 였다.

사촌형아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땡땡의 모험' 시리즈를 주문해서 들여다보는 것을

제일 좋아했던 필규는 그 중에 한 권, 인디언이 나오는 장면을 본 후로

밤 마다 그 인디언이 창문으로 나타날것 같다는 생각에 무서워 잠을 못 자곤 했다.

처음엔 그럴리 없다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거라고 달래고 설득했지만

아이의 무서운 감정을 없앨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이런 제안을 했다.

"그럼.. 잘 자게 하는 주문을 만들어서 외워보자. 뇌는 주인이 말하는 대로 생각을

한대. 그러니까 자기전에 뇌 한테 좋은 꿈만 꾸게 해달라는 주문을 들려주는 거야.

그럼 뇌는 주인이 말 한 그대로 꿈을 만든대."

필규는 한참 생각하다가 주문을 만들었다.

 

"나는 좋은 것만 생각할꺼야. 아주 아주 좋은 것만 생각할거야.

난 모든 것이 잘 될꺼야. 난 아침, 점심, 저녁 마다 모든 것이 잘 될거야"

 

잠자리에 누워서 이 주문을 외웠다. 처음엔 같이 외워주었지만 나중에는 자기 혼자

외우고 눈을 감곤 했다.

 

그렇게 해서 무서운 꿈을 꾸지 않고 자고 나더니 주문이 효과가 있다며 좋아했다.

그 다음부터는 주문 외우는 것을 잊는 법이 없었다.

 

여섯 살때부터 시작된 잠자기 전 주문 외우기는 일곱살, 여덟 살을 넘어 아홉 살, 열 살

그리고 열 한 살 때 까지 이어졌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느새 필규는 아무런 주문없이 그냥 스르르 자고 있었다.

 

이룸이는 이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다.

그리고 자기 주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난 재미있는 꿈만 꿀거야. 난 신나는 꿈만 꿀거야. 나는 잠을 잘 잘거야.

나는 깨지 않고, 울지 않고 잘 잘거야."

 

이룸 20.jpg

 

그 다음날 이룸이는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았다며 좋아했다.

주문을 외우자마자 무서운 생각들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시 어두워지고 잘 때가 다가오면 이룸이는 심란해져서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그럼 옆에 누워서 주문을  같이 외워주고 잠들때 까지 손을 잡아 준다.

힘들게 힘들게 이룸이는 눈물자국 가득한 얼굴로 주문을 외우고 그리고

잠이 들었다.

무서운 생각이 당장 사라진건 아니지만 이룸이는 자기를 지켜줄 주문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고 있다.

그리고 편안하게 자고 일어난 날은 주문이 자기를 지켜주었다며 좋아한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의 마음속에 어른이 다 알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어른의 도움이 그다지 효과가 없을 때도 있다. 시간이 필요한 것도 있고

조금 더 자라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

그래도 부모니까 힘들다고 매달리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게 된다. 필규는 주문을 외우며 그 시간들을 지나왔고, 이제 이룸이가

오빠가 했던 방법을 해 보고 있다.

필규한테는 큰 효과가 있었는데 이룸이는 어떨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첫 아이 키우며 조심하고 삼가했던 많은 것들이 동생들에게는 훨씬 무심해지기

쉽다. 더구나 어른들이 아는 이야기는 뭐든 알고 싶어하는 첫 아이가 있다보니

제일 어린 막내가 받을 수 도 있는 영향에 대해 간과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직 내게는 어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고 있다.

나이보다 의젓하다고, 또래보다 조숙하다고 해서 여섯살 아이가 아홉살, 열세살

아이와 같을 수는 없다. 조금 더 세심하게 조금 더 잘 배려하며 상처받지 않게

힘들지 않을 수 있도록 신경쓰고 노력해야지.... 다짐한다.

 

무서운 밤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른다.

그냥 같이 외우는 주문에 의지하고 지켜주는 가족들에 의지해서 이 순간들이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

 

꿈 속까지 따라가서 지켜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그 마음으로 막내를 바라보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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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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