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닮고 싶은 점은 없다. 우리 아빠는 거의 매일 잔소리를 해대고 키도 작다. 그러니 부모님께 닮고 싶지 않은 3가지로 주제를 바꾸겠다.’

 아빠에게 닮고 싶지 않은 세가지.jpg

 (사진: 픽사베이) 

 

거실 책상 위에 놓인 아이 일기장. 펼쳐보는 순간, ... 절로 한 숨이 나왔다. 제목엔 부모님께 닮고 싶은 3가지라고 적혀있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부모님께 닮고 싶은 3가지로 주제를 정했고, 아이는 부모님께 닮고 싶지 않은 3가지로 주제를 바꿨다.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두 가지 사실. 하나는 일기장을 선생님이 본다는 것, 다른 하나는 글의 주제는 글쓴이의 몫이라는 점이다. 부모님께 닮고 싶지 않은 3가지. 다음 글이 궁금해졌다.

 

아이의 일기를 읽기 두어 시간 전, 아이를 내려다보며 큰 소리를 질렀다.

너가 학생이야?”

소리는 거실을 가득 메웠다. 고개를 숙여 아이 눈을 바라봤다. 아이의 놀란 눈은 더 커졌다. 화를 내는 말은 입 밖으로도 나가지만 내 마음으로도 들어왔다. 마음 속으로 들어온 말은 질문으로 다시 나왔다. 내 말은 과연 적절했나? 방금 한 말은 넌 학생도 아니야, 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날은 말의 의미보다 느낌에 집중하기로 했다. 더 강하게. 더 세게.

학급 회장이라면서 학교 숙제를 안 해 가?”

아이 눈동자는 파르르 흔들렸다. 혼을 낼 때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면 나도 같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마음을 더 큰 목소리로 덮었다.

 

일주일 전부터 아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계속해댔다. 학교 숙제 다 했니? 그럴 때마다 또박또박 떨어지는 아이의 대답.

-..

-?

-다음 주 수요일까지야.

또 며칠을 지나 물었지만 대답은 비슷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어.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해리포터에 빠진 아이. 엎드린 채로 발을 위 아래로 굴렸다. 아빠의 마음과 상관없이 아이는 여유롭고 즐거웠다. 결국 숙제 기한이 하루를 넘어갔다. 숙제 공책은 제출되지 않은 채로 책가방에 그대로 남이 있었다. 숙제가 많으면 이해라도 가겠다. 일주일에 단 하루 제출하는 숙제.

 

-오늘은 수영장 가지 마.

-?

아이는 혼나면서도 이해가 필요했다.

-숙제 다 하고 가든가, 아니면 가지마.

-수영 배우는 것도 일종의 숙제잖아.

그건 그랬다. 배우는 건 일종의 숙제니까. 난 또 아이 말에 동의하는 건가? 아이의 말에 동의를 하는 순간 난 어느새 아이에게 동화가 됐다. 오늘은 안. .

-학교 숙제를 먼저 해!

-, 그러야 하는데?

-수영도 숙제이고 학교 숙제도 숙제니까, 중요한 숙제를 먼저 해!

 

  아이는 더 이상 묻지 않은 채 연필을 들었다. 오른 손으로는 글을 쓰면서 왼손으로는 눈물을 훔쳤다. 유난히 아이의 뒤통수가 작아보였다.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혼을 내다가도 아이가 귀여워 보이면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는 잘 안다. 자기가 눈물을 보이면 아빠의 목소리가 작아진다는 걸 말이다. 혼을 낼 때에도 아이가 자주했던 말, 아빠가 아무리 혼내도 난 아빠가 무섭지 않다, 라는 말. 눈가에 아이 눈물이 보이기만해도 순간 내가 너무 하나? 란 생각은 아이 앞에서 큰 목소리를 작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날 밤 아이는 내게 아무런 말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눈치를 살핀 건 나였다. 눈이 마주치면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숙제를 마친 아이는 소파 위에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들었다. 아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눈가에 눈물 자국이 남았는지 살폈다. 평소에 잠을 잘 때면 아직도 무섭다며 나를 찾더니만. 그래도 혼자 침대에서 잠을 자기가 무서웠는지 불이 환한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아빠에게 닮고 싶지 않은 세가지 3.jpg

(사진: 픽사베이) 

 

사랑하면 사랑스럽지 않은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아이가 가슴 아파하는 줄 알면서도 가슴을 아프게 해야 하는 때. 작아지는 목소리를 억지로 크게 만들고, 화를 낼 때에도 화를 내는 시간과 정도까지 생각을 하며 말을 해야 하는 때가 말이다. 아이를 받아준다는 건 그럴 수 있다는 거지, 그래도 된다는 건 아니니까. 나쁜 습관마저 수용을 한다는 건 그 나쁨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주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아이 엄마가 없으니 사랑도 훈육도 모두 한 사람의 역할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 그리고 아이의 가슴을 가끔은 의도적으로 아프게 하는 것. 서로 다른 얼굴, 하지만 같은 마음. 아이가 무슨 글을 썼는지 궁금해 읽은 건 소파에 누운 아이 얼굴을 쳐다본 뒤였다.

 

부모님께 닮고 싶지 않은 1번째는 키다. 아빠는 키가 작아서 나한테 그게 유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2번째는 잔소리다. 아빠는 매일 잔소리를 해서 미칠 지경이다.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3번째는 아빠가 내주는 숙제이다. 너무 많아서 죽겠다.

   

학교에서 다녀온 뒤 아이에게 물었다.

-민호야, 너 어제 일기 그렇게 쓴 거 선생님한테 보여주려고 그런 거지?

-아니.

-선생님한테 안 보여주었어?

-선생님한테 보여줬지. 그리고 그 글은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글이어서 애들 앞에서 발표했는데.

- ... ...

- 아빠, 표정이 왜 그래?

   

 

    KakaoTalk_20180430_150203598.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namgu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84509/8ab/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645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일본 가정식 imagefile [3] 윤영희 2015-05-29 10408
644 [김명주의 하마육아] 인생 리셋, 아들과 함께 하는 새 인생 4년차 imagefile [2] 김명주 2015-12-08 10402
64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사람들은 왜 하늘나라로 가?" imagefile [7] 홍창욱 2015-07-14 10401
642 [김명주의 하마육아] 머리 커도 괜찮아, 아빠 아들이야 imagefile [7] 김명주 2016-07-18 10391
64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어머니에게 소녀가 있었다 imagefile [2] 홍창욱 2016-08-27 10378
640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이제 진짜 베이비시터 imagefile [2] 최형주 2016-10-17 10372
639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몬테소리 실전편] 유아기 아이가 달라지는 전략 넷 imagefile [1] 케이티 2016-09-29 10369
63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무서운 밤, 마법의 주문 imagefile [4] 신순화 2015-09-18 10368
63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밥 한 그릇의 생각 imagefile [2] 신순화 2014-11-21 10362
636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신발이 닳도록, 카르페 디엠 imagefile [12] 케이티 2015-05-18 10357
63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징글징글하거나, 알콩달콩하거나 imagefile [1] 신순화 2014-12-05 10352
634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겨울엔 역시 눈 영화와 눈 썰매 imagefile 양선아 2015-01-05 10349
633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사는게 뭐라고 육아가 뭐라고 imagefile [13] 윤영희 2015-10-11 10348
632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절 imagefile 김외현 2014-09-10 10345
631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다리를 잃는다 해도 겁나지 않을 세상 imagefile [16] 케이티 2016-02-17 10326
630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어린이집 재롱잔치, 나도 이제 부모가 된건가 imagefile [2] 홍창욱 2015-01-22 10302
629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어머니가 그랬듯이 imagefile [7] 강남구 2016-09-11 10301
62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imagefile [6] 신순화 2016-04-20 10300
62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이럴수가, 되레 몸 불었다 imagefile [2] 홍창욱 2015-06-24 10285
626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 세 번째는 쉬울 줄 알았습니다만 imagefile [7] 안정숙 2017-07-20 10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