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는 필규.jpg

 

우리집에서 제일 많이 싸우는 사람은 나와 아들이다.
둘 다 욱하는 기질이 있는데다 목소리 크기 비슷하고, 덩치도 슬슬
나와 비슷해져 가는 열 한살 아들은 자칭 사춘기 시작이라며
대들고 반항하는 것이 하루 하루 도를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집은 아들과 내가 잘 지내면 평화로운 분위기가 흐르지만
아들과 내가 싸우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냉전이 시작된다.
아들과 잘 지내는 법을 익히는 일은 내겐 너무 너무 중요한 일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해주면 사이가 좋아지지만, 아들이 원하는
것은 게임을 좀 더 자주 하게 해달라거나, 주말에만 보는 TV를 주중에도
틀어 달라거나, 제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매일 해달라거나 등등
내가 싫어하는 것 들 투성이니 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제일 늦게 자고, 제일 늦게 일어나고 씻는 거 너무 싫어하고 책만 들면
옆에서 천둥 벼락이 쳐도 꿈쩍을 않고, 화나면 버릇없고 무례하기가
한이 없으니 아들과 나 사이엔 이래 저래 싸울 일이 넘쳐난다.

어린 여동생 둘에게 늘 엄마를 빼앗기고 있다고 느끼는 아들은
저만 엄마를 차지하고 싶어서 늘 안달을 하는데 요즘 우리는
'설거지 데이트'를 하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홉살 무렵엔가 갖고 싶은 고가의 장난감을 조르는 아들에게
아르바이트로 권했던 일이 설거지였다. 아들은 설거지 한번에
3백원이란 내 제안에 솔깃해서 며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러다가 덜컥 손님에게 몇 만원의 거금을 용돈으로 한 번에 받고나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는 끝이 났다. 일확천금의 맛을 알아버린 아들은
3백원짜리 노동이 시시해져버린 것이다.

 

아들이 열살, 큰 딸이 여섯 살이 되었을때 나는 '집안일 나누기'를
시도했었다. 이렇게 큰 집에서 넘치는 일 속에 살면서 엄마만 집안일을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했더니 두 아이들은 순순히 내 의견에 공감했다.
출근은 안 하지만 나도 집에서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엄마인데 집안일도
너무 많아서 힘드니 서로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서 하기로 한 것이다.
아들은 내가 내 놓은 것들 중에서 '저녁 설거지'를 골랐다.
아홉살때 몇 번 해 봤던 일이라 만만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둘째는 현관 신발정리와 상차리는 것 돕기로 했다.
막내는 엄마 심부름이었다.

 

한 일주일은 정말 저녁마다 설거지를 도왔다. 왠일인가 싶었다.
용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매일 설거지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아들은 일주일 꼬박 잘 했다. 그러다가 너무 힘들다고 줄이자는 것이다.
나는 받아들였고 일주일에 3일로 결정했다. 목, 금, 토로 정하고
하다가 어떤 날은 내가 잊어 버리고, 또 어떤날은 일이 있어서
넘어가고 하면서 흐지부지 되었었다.


작년 말 쯤에 내가 아들의 설거지가 잘 안지켜진다고 항의했더니
아들은 매일 저녁 설거지를 하는 대신 격려차원으로 한 번에
100원씩 용돈을 달라고 했다. 100원에 매일 설거지를?
나는 기꺼이 응했다. 그리고 아들은 정말 매일 저녁 설거지를
나와 같이 했다. 끝나고 나면 기분 좋게 100원을 받아 갔다.

 

새해가 되고 열한 살이 된 아들은 요즘 용돈 모으는 재미에 빠져있다.
외가에서 신정을 쇠는 바람에 이모들에게 듬뿍 받았던 새뱃돈을
저금통에 넣어 두고 매일 매일 설거지를 해서 받는 100원을 그 안에
넣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돈을 많이 모아서 부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아들은 매일 개와 닭들에게 물을 챙겨주는 일도 나섰다. 물론
건당 100원씩 추가 용돈을 받는다. 엄마가 바쁠때 막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권당 100원씩이다.

전에는 돈만 생기면 레고를 사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이제 생각도 궁리도

좀 자란 모양이다.

 

그래도 물론 제일 열심히 꼬박 꼬박 하는 일은 설거지다.
저녁상을 치우고 집안 정리가 끝나면 남편은 두 딸들을 거두어
씻기러 가고 나와 아들은 주방으로 들어간다.
주로 내가 세재로 그릇을 닦으면 아들이 물로 헹구어 그릇 정리대에
가지런히 놓아 둔다. 가끔은 바꾸어서 하기도 한다.
처음엔 제대로 헹구라고 이런 저런 잔소리를 했지만 이젠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주로 수다를 떨면서 설거지를 한다.

 

'엄마, '개그콘서트- 어르신'에서요, 그거 보셨죠? 바보 정남이가요,
철판구이한다면서 진짜 철판을 불에 막 구울려고 하는거, 진짜 웃겨요'
대화의 주제는 주로 이런것들이다. 그래도 뭐 어떤가, 우린 웃으며
함께 그릇을 씻는다.
'엄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뒷 마무리 제일 못하는 나라같아요'
'왜?'
'4대강이나 용산대참사 같은거 보세요. 일은 저질러졌는데 결과는
다 덮어버리잖아요'
가끔은 이런 진지한 얘기들도 나온다. (이게 다 한겨레 신문
함께 읽는 덕이다.)


얘기 하면서 뽀뽀도 쪽 하고 뺨도 부비고 서로 궁둥이도 두드려준다.

'니가 지금부터 설거지를 열심히 하면 이담에 결혼해도 집안일을
니 부인과 사이좋게 함께 할 거야. 그러면 부인이 얼마나 좋아하겠니.'
'독립도 잘 할 수 있을거예요. 커서 독립하려면 이런것도 지금부터
해 놔야지요'
어머나, 왠 독립?? 그러면서도 나는 아들 말에 열심히 맞장구를 친다.
'그럼,그럼.. 이젠 헹구는 것도 아주 잘 하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들을 듬뿍 칭찬해 준다. 남편에게도 아들
자랑을 대놓고 늘어 놓는다. 설거지하고 아빠와 엄마에게 칭찬을
왕창 받으니 아들은 더 한층 으쓱해진다.
그리고 아빠에게 무어라고 속닥이면서 100원을 더 받는다.
하루에 한가지씩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면 아빠에게도 100원을
받기로 했단다. 그래, 그래... 아빠와 아들 사이에 그런 이쁜
거래도 있어야지.

 

가끔 귀찮거나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 있으면
'오늘은 안 할래요, 엄마. 미안해요' 하기도 하지만
그럴땐 나도 기분 좋게 혼자 한다. 다음날엔 다시 신나게
달려와줄 아들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커 갈수록 부모와 친밀하게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더 중요해진다.
취미가 같다면 퍼즐이나 보드게임을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아빠와 목공을 함께 하고, 엄마와 집안일을 함께 하면서 둘만의
시간과 대화를 가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이 일도 하다보면 시들해질 수 있고, 더 이상 안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르지만 그땐 그동안 함께 나눈 시간과 이야기에 더해 다른
일들이 우리 사이를 채우리라고 믿는다.

건들거리고, 의뭉스럽고, 슬쩍 슬쩍 엄마가 싫어하는 비속어를
써 가면서 엄마의 반응을 간보기도 하는 응큼한 아들이지만
열심히 설거지하고 받은 100원을 백만원인양 기쁘게 받아가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그 맑고 순수한 속내가 엿보여 나를
미소짓게 한다.

 

대안학교의 방학은 아직 길다. 개학을 하면 바빠져서 지금처럼 열심히
해줄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설거지 데이트'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신혼때 남편하고도 이렇게 알콩달콩 달콤한 설거지 데이트를
해 본 일이 없건만 아들과 나는 지금 한창 연애중인걸까?

다른 애인에게 눈  팔기 전에 달콤한 시간 열심히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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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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