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나선 시각 6시.
천천히 걸어서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6시 10분.
지금 일하는 회사의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망설일 것 없이 두 아이를 직장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거라고 대답할 거에요.

이시간까지 어린이집에 모여 있는 건 맞벌이 부모의 아이들.
꺅~ 소리를 지르며 요란스럽게 두 여자아이와 재회를 하면서도 물끄러미 우리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눈에 밟힙니다.

어느 연구소 누구 연구원님은 오늘 좀 늦나 보네.
감사가 있다더니 어느 팀 누구 선생님도 아직이구나.
직장동료가 육아동지로 인식되는 공간에서, 일상은 한결 부드럽고 따뜻해 집니다.

"누구야, 동생은 잘 크니? 외할머니가 집에 오셨다면서?"
"네. 히히히."
"준영이 엄마 안녕하세요~"
"어 그래, 이따 놀이터에서 만나자!" 
어린이집을 벗어나 놀이터에서 다시 모인 아이들은 대략 7시까지 뛰어놀다 진짜로 빠이빠이를 합니다.

이날은 퇴근길이 단출했어요.
전날 밤 고열이 났던 둘째와 남편은 어린이집과 일을 하루 쉬고 집에 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수족구로 판명났지만(ㅜㅜ) 어쨌든 그날만 해도 감기가 오려다 멈추었나보다, 가볍게 생각했지요.

오늘은 우리 둘이서 집까지 걸어가보자!

평소 자동차로 슝 지나치던 길을 걷는 건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새롭습니다.
싱그러운 녹음으로 뒤덮인 녹색 길 위에는 참견할 것들 투성이에요.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양 손에 쥐고, 바삐 지나가는 개미떼랑 무당벌레 구경도 하고, 여기서 짹짹짹 저기서 지지지지, 마침 퇴근하던 팀장님 할아버지도 만나고.
시들한 화단의 꽃이 마음이 쓰이는지 다음에는 같이 물을 주러 오잡니다.
화순에서의 날들이 떠오르네요.

문득 우리 둘만의 시간이 참 오랜만이구나 싶어요.
아픈 아이에게 얼른 가봐야지 하면서도 어쩐지 재촉할 수가 없습니다.



11.jpg


"엄마, 나 힘들다."
"그래? 그럼 좀 쉬었다 갈까? 엄마도 구두 신어서 발이 좀 아프다."

벤치에 앉습니다.
아이가 무릎을 베고 눕네요.

15년 전 대학캠퍼스 어딘가에선 네 아빠가 너처럼 엄마 무릎을 베고 있었어...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엄마는 지나온 시간이 아득하고 지금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사진을 찍습니다.



12.jpg


"준영아, 노래 들을까?"
"어, 또봇!"

아이가 좋아하는 또봇, 엄마가 좋아하는 낭만고양이를 같이 흥얼거립니다.
우리끼리 통하는 또다른 무언가가 생겼구나!
코끝이 찡해집니다.

배부른 젊은 여자만 봐도 눈물이 나고.
예능프로그램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펑펑 울고.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아이 입에서 흘러나와도 울고 싶어지고.
하여간 엄마가 된 뒤로 이래저래 눈물만 많아졌어요.



13.jpg


엄만 한껏 표정을 꾸며보는데 아이는 마냥 장난꾸러기.



14.jpg


그 사진을 보며 마구 웃던 우리 모습을 남깁니다.
코 찡긋인걸 보니 이번엔 엄마도 '진짜로' 웃었네요.



15.jpg


"엄마 나 오늘 달리기 1등했다!"
"와 좋았겠다. 엄만 준영이가 1등하는 것도 좋지만 친구들과 함께 달리는 것 자체가 즐거웠으면 하고 생각해."
"엄마, 태희 보고싶다."
"엄마도. 어젯밤에 태희가 열이 많이 났는데 잘 이겨냈지? 이따가 집에 가서 태희 만나면 칭찬해주자!"


실은 엄마는 오늘 좀 힘든 하루였는데 말야, 준영이와 이렇게 신나게 웃다보니까 그 마음들이 다 사라졌어.
정말 고마워. 엄마의 딸로 태어나줘서.
아이를 업고 말랑말랑한 궁둥이를 조물락거리며 이런저런 말을 건넵니다.

다섯 살.
벌써 엄마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아이.
엄마로서 부닥치는 대부분의 '처음'은 이 아이와 함께하기 때문일까요.
말로는 당해내지 못할 만큼 자랐고 이제 둘째도 있건만, (우리동네 표현대로) "짠허고", 첫사랑 같이 애틋한 마음은 쭉 이어질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저희가 사는 곳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수족구 진단을 받은 둘째 아이는 이틀 째 할머니 집에 있고요.
오늘, 집에 오자마자 잠을 자는 첫째도 열이 오르기 시작한 걸 보니 어쩌면 동생과 같은 증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주에는 연차를 내고 아이를 보기도 어려운데. 우리 식구는 며칠 간 또 할머니집으로 외할머니집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할까요...

어쨌거나 엄마아빠, 그리고 우리 아이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네요.
모두 편안한 저녁 되세요.
(수족구 조심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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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elisabethahn
홈페이지 : http://plug.hani.co.kr/heroajs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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