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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한국과 같이 5일이 어린이날이고,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각각 따로 있다.

4월 말과 5월 초에 걸쳐 이어지는 긴 연휴가 있어

평소에 자주 만나기 힘든 가족들이 모처럼 다 모일 수 있는 시기다.

 

이번 어린이날 전후에도 시동생네와 이사한 우리집에서 먼저 모여 놀다가

시댁으로 옮겨가 함께 1박을 하며 지냈다.

일본 부모들은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에게 선물하기를

목숨걸고(?) 지키는 것에 비해

어린이날에는 선물하는 경우가 드물다.

가끔 자전거를 사주거나(이제부터 타고놀기 좋은 시기이니)

간단한 과자세트을 하나씩 사서 주는 경우는 있지만

꼭 선물을 해 줘야 하는 분위기는 없어보인다.

 

대신, 어린이날 전후로 가족단위로 모여 집에서 맛있는 걸 만들어먹거나

먹으러 가거나, 여행이나 이벤트를 즐기거나 하는데

그것 자체가 선물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여서 장난감같은 물건을

따로 꼭 준비하지는 않는다. 물론 가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그래서 올해도 아이들에게 특별히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곧 큰아이 생일도 돌아오고 남편과 내가  너무 바빠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는 요즘이었다.

이제 겨우 만5살, 2살인 아이들을 키우며 맞벌이하느라

시동생네도 바쁘긴 마찬가지였을 거다.

설날 이후로 처음 모두 모인 자리인데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한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내심, 나는 아이들 과자선물이라도 하나씩 사올 걸..하며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네 명의 아이들이 만나자마자 너무나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아이 넷은 뭔가를 먹을 때는 우르르 함께 모여 먹고

- 기분이 업되어 평소 안 먹던 음식도 누나따라 형따라 흉내내며 너무 잘 먹음.

놀 때는 넷이 되었다가, 둘씩 짝을 지어 놀다가 그렇게 장소를 옮겨가며 놀았다.

- 이 놀이는 1박2일동안 쉴 새없이 이어져 어른들 각자에겐 힐링의 시간선물이

   저절로 주어졌다. 동서는 오랫만에 혼자 쇼핑을, 나는 너무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세상에!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어린이날 제일 좋은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아닐까?!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같이 놀 수 있는 또래 아이다.

만3,4세만 넘어도 장난감이나 놀이터보다도 친구가 더 절실해진다.

어른이 아무리 열심히 정성을 다해 놀아주어도

또래 친구와 놀이에 빠진 아이들의 눈빛은 부모가 가끔

질투를 느낄 만큼 생기있게 반짝인다.

 

엄마와 함께가 아니면 놀이터도 나가기 힘들었던 유아기를 벗어나

1학년이 되어 혼자서도 집 현관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출입이

가능해지면 친구집의 초인종을 누르거나

어느 순간엔 그 집에 눌러앉아 간식을 얻어먹고 있거나 해서

그걸 본 엄마는 식은땀이 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도 초등이 되고나면 그 집에서 데려올 때 울고불고 하진 않지만

유아기 때는 거의 한바탕 전쟁을 치르며 데리고 나와야 한다.

 

일본의 요즘 아이들도 이렇게 미리 약속을 하지 않으면 놀기가 힘들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노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이들도 가끔은 집에서 편하게 놀고 싶어한다.

하지만, 집에서 맘껏 친구들과 놀도록 허락하는 어른이 요즘은 잘 없다.

일 땜에 집에 부모가 없으니 못 노는 경우도 있고,

아이들이 집으로 몰려오는 걸 싫어해서 그런 경우도 있고,

또 많은 경우는 남의 집에 자기 아이가 가는 것도 싫어한다.

사정이 이러니, 아이 친구들을 집에 자주 부르고 싶어도

엄마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쉽게 부르지 못 할 때도 많다.

 

이런 현실이다보니, 한번 실컷 놀 기회가 생겼을 때의 아이들 모습은

좀 안타까울 정도로 필사적이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오버하는 표정과 몸짓, 1분 아니 1초라도 아껴서 놀려고

시계를 자주 보거나, 좋아하는 간식을 차려줘도 시간이 아까워 허둥지둥 먹으며

"빨리 놀자"그러거나, 놀다보면 시간이 눈깜짝할 사이라 얼른 학원갈 시간이

되어 아쉬워하며 뛰어나가는 아이나...

 

우리 두 아이,

특히 가장 놀이상대를 필요로 하는(특히 동성, 싸움놀이가 가능한)

시기를 맞이한 둘째가 이번에 한 살 많은 사촌형과 놀 때의 모습은 정말 눈물겨웠다.

형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형이 하는 거라면 입에도 안대던 바나나를 따라 먹질 않나,

시도때도 없이 몸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놀이에 매순간 진지하게 응해주는 형이

너무 위대하고 고마웠던지 1박2일동안 아들의 시선은 사촌형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노느라고 잠도 부족해 몹시 피곤했을텐데도

단 한 번의 짜증도 부리지 않고 형 곁을 지키는 아들이 나중엔 애처로워보이기까지..

나는 평소에 우리 아이들에게 사교육은 안 시켜줘도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만큼은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챙겨주었다고 생각했다.

놀이가 제일 큰 공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늘 놀이와 사람이 고픈가 보다.

지금 아니면 한동안 이렇게 실컷 놀 기회가 또 없을 거란 걸

요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어른들의 여러가지 복잡한 '룰'에 의지하지 않고도

언제든 놀 수 있는 또래를 만나는게 참 힘든 일이란 걸

어린 꼬마들도 알고 있는 듯 하다.

 

이번 연휴 기간동안엔 한국에서 친정부모님도 다녀가셨다.

오랫만에 만나 너무 좋았던지 외할머니가 목욕하실 때

기웃거리더니 아이들이 따라 들어가 할머니랑 함께 목욕을 했다.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먹고 할아버지께 장난감 선물도 받고

함께 외출도 하며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보낸 뒤, 부모님은 떠나셨다.

 

좀 더 가까이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내 처지가

또 다시 문득 한스러워 혼자 끙끙 마음을 앓아야 했다.

친정 식구들이 따뜻하고 다정하게 남기고 간 시간과 분위기들이

아직 집안 곳곳에 남아있다.

부엌 한 켠에 쌓인 김과 미역, 고추장, 참기름 병을 보며 아이들도 아쉬운지

"엄마, 할머니 또 언제 오셔? 우리는 한국에 안 가?" 그런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이번 어린이날에 받은

사촌과의 행복했던 시간선물처럼

나도 가족과 함께 보내며 큰 선물을 받은 셈이구나 싶다.

꼭 어린이날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친척이든 친구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따뜻한 시간 선물을 위해 더 고민하고 노력해야 겠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일이 가능한

동네와 사회가 된다면 더 좋겠고, 그런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찾아볼 참이다.

 

그 어떤 좋은 물건도 사람을 결코 대신할 순 없다는 걸

아니, 대신해선 안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가정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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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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