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일주일.

이번 한 주를 보내고 나니 드는 생각이다.

요즘 일본은 날마다 35도를 기록하고 있고 분지지역은 39도까지 오르고 있는데

하늘 위에서 고기압이 2층집을 지어 더운 공기가 꼼짝달싹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밖에 1,2분만 서 있어도 입안이 마르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오후 2시.

유치원에 둘째 아이를 데리러 가야하는 시간이다.

유치원 마당에서 엄마들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도 더위에 지친 모습이었다.

자전거 뒤 보조의자에 아이를 태우고 패달을 밟는 엄마들 얼굴은

그야말로 벌겋다 못해 자주색으로 달아오르고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었다.

아마 체감온도는 37도쯤을 오르내리고 있지 않을까.

 

자전거로 겨우 10분 거리지만,

이런 더위에 아이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도 큰 일인데

더위에 지친건지 잠이 오는건지, 아들은

00네 집에 가서 놀고싶다, 우리집에 00가 온다고 그랬다,

이대로는 집에 안간다, 장난감 사러 갈 거다... 온갖 생떼를 쓰며

유치원을 출발하는 순간부터 집 현관을 들어설 때까지 발버둥을 치며 울어댔다.

 

뭐 아들이 이러는 건 이번주만 그런건 아니다.

선생님과 인사하고 엄마 손을 잡는 순간부터 "00랑 더 놀고싶다"는 말을

1학기 내내 해온 터라, 가끔 친구가 우리집에 오거나

친구집에 가서 놀거나 하며 놀이욕구를 채워주곤 했다.

그런데 7월 들어서는 방학 전에 내가 마무리해야 할 일도 많았고

날씨가 너무 심하게 더워지면서 누군가가 오거나 누구네 집에 간다는 것

자체를 생각할 수 없을만큼 일상이 정신없어졌다.

내가 이런데 다른 엄마들도 방학 전에 얼마나 다들 바쁠까.

 

그러던 차에 아들은 이번 주는 무슨 작정을 했는지 유치원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00네 집에 가서 놀거야!!!"하며 자전거를 타서도 내 등을 두드리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는 아이 엄마가 민망해할까봐 쳐다보지도 못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아! 아들을 키우면서 이런 순간을 얼마나 수없이 겪었던가!

자전거를 세우고 아이를 타이르고 알아듣게 설명해야 하지만

우리 아들의 경우, 이렇게 흥분했을 때는 타이르는 게 아이의 분노를 더 키우기만 할 뿐

전혀 먹히지가 않는다... 아들의 가장 큰 단점이다.

이미 산산조각이 난 아들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달래지지가 않는다.

울분을 다 쏟아내고 그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

 

35도의 땡볕 속을 번개처럼 달려 집 앞에 도착했는데

나비가 팔랑거리는 소리까지 들릴만큼 고요한 우리 동네 주택가에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우는 아들의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아직 인사만 하고 지내는 이웃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우리 아들 덕분에

곤하게 낮잠자던 아기들, 어르신들이 다 깬 건 어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때까지 꾹 참고 있던 나는, 집 안에 들어서서 아무말고 않은 채

아들의 양쪽 어깨를 꽉 움켜잡고 무섭게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제서야 그렇게 난리치던 아들은 어디로 가고, 울음을 뚝 그쳤다.

"엄마랑 이러지 않기로 약속했지?

자전거 위에서 움직이면  너무너무 위험한 거니까 절대 그러지 않기로 했지??"

그랬더니 고개를 푹 숙이는 아들. 자기가 잘못 했다는 걸 아들도 알고 있다.

그런데 늘 상황이 종료되고 난 뒤에만 알게 되는, 늘 이런 식의 무한반복이다.

 

저도 이 더운 날씨에 울고불고 하느라 얼마나 지쳤을까..

아들 얼굴은 땀이랑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엉망인데다 몸은 뜨겁기만 하고

나도 자전거 바퀴에 여기저기 부딪혀 멍이 든 다리가 몹시 아파왔다.

 

아... 아이들이 놀아도 놀아도 더 놀고 싶어하는 마음... 엄마도 너무 잘 안다.

너무 잘 알아서 괴롭다.

큰아이도 이렇게 놀이욕구가 엄청나서 늘 친구들과 약속해서 놀려주느라 무척 힘들었다.

유아기까지는 엄마가 약속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 말이다.

고생은 했지만, 유아기에 충분히 논 큰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무척 안정되어

친구관계도 원만하고 혼자서도 잘 노는 걸 경험했기에

작은 아이도 놀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려고 노력해왔다.

엄마 입장에서는 이정도 놀면 됐지? 싶은데, 아이는 놀면 놀수록 더 놀고 싶어한다.

너희들 마음은 충분히 알지만, 날마다 그럴 순 없단다..

 

일본의 유치원이 끝나는 2시라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뭔가

'덜 논 듯한' 기분을 주는 탓인지 일본에선 유치원을 보내는 엄마들도 아이들도

2시부터 집에서 어찌 지내지?! 하는 부담이 늘 숙제와도 같다.

아이가 태어나서 1,2년은 엄마가 몸이 무척 힘든 시기지만

4,5.6살 시기는 아직 몸도 써야하고 마음도 머리도 쓰며 아이들의 외면과 내면의 성장을

도와야 하니, 어쩜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닐까 싶다.

 

한동안 그럭저럭 보내다가 다시 폭풍육아의 한 주를 보내고 나니

10년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가끔 꺼내 쓰는 나의 육아처방전이 떠올랐다.

많이 힘들 때, 단계별로 수위?를 높여가며 사용해 그때그때 위기를 넘기곤 했다.

 

1단계는 먹는다! 좋아하는 음식을 계절에 맞는 차 한 잔과 함께 즐긴다.

이 방법은 아이가 어릴 때도 낮잠자는 시간을 이용해 한 30분만 시간이 주어져도

가능한 방법인데, 혼자 이쁜 그릇에 담아 천천히 먹고나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날 하루 육아의 쉬어가는 페이지같은. 뭐 이런 정도로 금방 해소가 된다면

육아가 얼마나 쉬울까만은...!

DSCN1691.JPG

 

 

2단계 : 아이가 가장 아름답던 리즈시절의 사진을 꺼내본다.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사랑스러움에 녹아드는 모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로지 젖만 먹고도 몸 마디마디에 노란 고무줄을 채운 듯

          살이 겹쳐 오동통하고 이뻤던 아기 시절의 모습은, 지금 힘든 이 순간도

          언젠가는 그리워하는 날이 올거란 생각을 마구마구 주입하며

          힘들어하는 모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게 한다.

IMG_298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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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만 먹으면 골아떨어지던 그 시절!

저 통통한 몸을 다시 만질 수 없다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3단계 : 육아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지는 단계다.

           이쯤되면 육아 현미경을 잠시 버리고 망원경을 들어야 한다.

           얜 왜 이리 엄마를 힘들게 하지! 얘를 어떻게 바꿔줘야 할까! 현미경으로 아이의

           현재를 분석하고 파고들다보면, 절망스럽고 답을 찾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내 경우엔 아들을 키우면서 더 그랬다. 그래서 아들의 먼 미래를 그려보기로 했다.

           지금은 이렇게 똥오줌도 못 가리고 속을 썩혀도 다 크고나면 근사해질거야!

           뭐 꿈꾸는 것까진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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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아들아! 이 형아들 보니까 니 갈 길이 너무 멀고 험하구나;;;

 

 

4단계 : 상황이 좀 심각할 때 내리는 긴급처방전이다.

           육아로 인한 단순한 육체적인 피로뿐 아니라, 학교나 유치원 엄마들과 문제가 생겨

           신경전을 치르고 난 다음이나 아이들의 병간호로 내 심신이 허약해졌을 때 등

           복합적인 문제를 많이 겪고 있을 때는 일단,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한다.

           내 경우엔 이렇게 잠시 시간을 갖는 것이 가장 회복이 빨랐다.

           혼자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문제해결방법도 조금씩 떠오른다.

           뭐 다 끝내기도 전에 아이들과 아빠가 들이닥치긴 하지만.. 이런 시간이 없는 것보단 낫다.

 

DSCN1197.JPG

 

 

 

5단계 : 서천석 선생님의 새 책에서 "감성의 고향은 어두운 곳"이란 글이 있었다.

           나는 육아의 본질도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게 뭐지?? 뭐 이런 게 다 있지?? 왜 나만 이런 걸 겪지?? 이렇게 힘든데 다들 왜

           지금까지 가르쳐주지 않았던 거지?? ... 하는 생각을 엄마와 주부로 살면서

           얼마나 많이 겪는가. 먹는 것으로도, 황홀할만큼 이쁜 아이의 옛 사진으로도, 잠시만의

           자기 시간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순간이 가끔, 때로는 자주 엄마들을 덮친다.

           이럴 때면 육아를 넘어서 근원적인 자기 자신의 문제까지 마주하게 된다.

           이번 한 주도 나는 이 5단계 처방을 적용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결국 이럴 때면 내가 더 힘들어질 지도 모르지만,

           육아의 고통을 창조적인 그 무엇으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는 거다.

           얼마전에 베이비트리에 올라온 젖 그림들이 바로 이 5단계의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그 순간엔 극렬하게 경험하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그 순간들을 붙잡아

           나도 해소하고 다른 이들에게까지 신선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그런 일들...

           아이키우고 살림하고 일하기도 바쁜데 창조활동까지 하라니!

           하지만, 그냥 흘려보내기엔 이 뜨거운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억울하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들을 모으고 또 모아 할 수 있는 것들을 탐색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내성적/예민/고집세고 까다로운 아이키우기 완전정복>같은 부분이라면

           책도 한 권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절절한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아들과 이번주는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하고 약속한 결과,

금요일 하루는 거짓말처럼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이 평화로웠다.

자전거 뒤에서 "오늘은 나 안 울었지?" 라고 묻는 아들.

그래, 아주 눈꼽만큼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엄마가 무슨 액받이 무녀도 아니고.. 얼마나 더 너희들의 짜증과 분노를 받아줘야하는걸까.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던데,

육아가 밝은 파스텔톤이기만 하다면 이렇게 긴 육아일기는 쓰지 않았겠지.

나를 비롯한 육아에 지치고 힘든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은 한마디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랍니다."

 

이제 곧 40일간의 여름방학이 다가온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길 수 밖에.

이 방학이 지나고 나면 몸 속에 사리가 몇 개 더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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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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