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물놀이.jpg

 

비가 내린다. 종일 좍좍 잘도 내린다.

7월 장마철이니 어쩔 수 없다.

비가 들이칠까봐 꽉 닫아 놓은 유리창 너머로 빗물 흐르는 마당을 내다보던 딸들이

살금 살금 밖으로 나간다. 마침 빗줄기가 좀 줄어들었다.

마당엔 얼마전에 온 가족이 힘을 합해 만들어 놓은 데크 옆으로

남편이 한창 짓다 만 아이들의 나무 놀이집 뼈대가 서 있다.

원두막처럼 바닥을 올려서 나무로 계단을 만들고 벽을 세우다가

장마철이 시작되어서 그 대로 둔 것이다.

 

나뭇바닥에 방수천을 쳐 놓았는데 그 위에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서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두 아이들은 처음엔 비옷을 입고 그 웅덩이 위를

철벅거리며 걸어 다녔다.

나는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느라 이따금씩만 아이들을 살펴 보았다.

 

잠시 후 빗줄기가 거세어졌다.

잠시 생각하다가 아이들 있는 곳에 우산 세개를 설치해 주었다.

어지간한 비는 잠깐씩 그 안에서 피하면서 놀면 될 것 같았다.

아이들은 우산 속에서 우산살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을 그릇에

받기도 하고, 손도 내밀어 비를 맞기도 하고, 빗속에 얼굴을 내밀고

혀를 내밀어 비를 맛보기도 했다.

지켜보니 퍽이나 즐겁고 재미나게 놀고 있었다.

 

그래..

내가 어린 시절에도 빗속에서 신나게 논 기억이 있다.

야단 맞기도했지만 늘 바쁜 엄마는 우리가 무얼 하고 노는지 신경 쓰실

겨를이 없었다. 비 속에서 철벅거리고 놀다보면 정말 신났다.

처음엔 우산도 받치면서 빗물에 안 젖으려고 신경쓰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온 몸이 비에 젖으면 우산도 집어 던지고 더 신나게 놀았다.

 

서른 넘어 마라톤을 시작했을때  어느 여름 동호회의 여행에서

억수같은 빗속을 한 시간 넘게 달린 적이 있었다.

스므명이 넘는 사람들이 열을 지어서 빗속을 달리는데 우린 내내

소리를 지르고 깔깔 웃었다. 빗물을 눈으로도 입으로도 거침없이 들어왔다.

세상과 완벽하게 한 몸이 된 듯한 기분이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지금도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으면 그날이 생각나고 다시한번 즐겁게

빗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두 아이들은 곧 비를 피하려는 것을 잊어 버렸다. 조금 젖다가

다 젖어버리자 아이들은 빗속에서 자유로와졌다. 마음껏 철벅거리다가

고여있는 빗물을 그릇에 담아 옷에 붓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 물놀이 2.jpg

 

낙숫물이 떨어져 내리는 빗물받이 통 앞에 쪼그리고 앉아 빗물을 받아서는

소꿉장난 그릇에 옮겨 담는 일은 몇 번을 해도 질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장화속에 물이 고여 걸을때마다 개구리 소리가 났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빗속을 뛰어 다녔다.

 

지켜보는 내 마음이 다 시원해졌다.

 

가끔씩 신나게 비 속에서 노는 일이 나쁠리 없다. 너무 오래 놀다보면 체온도 떨어지고

감기에 걸릴 위험도 있겠지만 한시간쯤 신나게 빗속에서 놀고 젖을 옷을 다 벗은다음

따끈한 물에 목욕을 하면 그만이다.

산성비다, 방사능이 섞여 있다, 황사도 들었다더라 하는 말로 아이들을 붙들기엔

비 속에서 노는 일엔 너무나  강한 매혹이 있다.

몸으로 떨어지는 비를 느끼며 비 내리는 세상을 거침없이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아이들에게 짜릿한 해방감과 즐거움을 준다. 빗물이 고여있는 곳은 어디나

신나는 놀이터가 되고, 물이 넘치는 세상에서 재미나게 놀 것들이 너무나 많다.

물길도 만들고, 물도 옮겨 담고, 몸에도 부어보고, 놀아도 놀아도 질리지가 않는다.

멋지지 않는가. 비만 와도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은...

 

내 안에도 여전히 아이가 있다.

그 아이도 비를 좋아하고, 비가 오면 풍덩 뛰어 들고 싶어한다. 그래서 나는

비 내리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노는 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의 아이를

다시 불러본다. 모든 어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아이들이 행복해야 그 어른도 행복하다.

오늘은 급히 써야 할 글이 있어 사진만 찍어주고 같이 못 놀았지만

장마는 길 것이다. 다음에 또 큰 비가 내리면 그땐 나도 같이 빗속으로 뛰어 들어야지.

신나게 철벅거리며 나이를 잊어버리리라. 그냥 나도 어린아이가 되어야지.

 

여름도 장마도 아직 길다.

비 내리는 날은 빗속에서 놀아보자.

세상과, 자연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기분..

그 기분이 우리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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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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