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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무조건 우리 여자들끼리만 가는 거에요."

 

올해 사이좋게 환갑을 맞은 친정엄마, 시어머니와 여행.

시기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 책 작업을 끝낼 예정이었던 5~6월로 잡았고, 맘 같아서는 최대한 멀리멀리 날아가고 싶었지만, 만삭에 가까워질 내 처지를 고려해 장소는 제주도로 정했다.

'남편과 아이 놔두고 엄마들만 떠나는' 엄마 둘 딸 하나 제주도 프로젝트!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서 블로그에, 베이비트리에 호들갑스레 글을 올렸다.

 

여성에 의한, 여성 해방의 날로 삼아보자!

60 평생 가족 뒷바라지 밖에 할 줄 몰랐던 엄마들에게 잠시나마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면 어떨까.

아니다, 이건 왠 허풍!

솔직히 말하면 이런 거창한 의도라기보다 엄마들의 희생 덕에 진작부터 '자유'의 수혜를 받고 자란 딸이 밀린 숙제를 하는 심정이었다. '환갑 기념'이라니 말하기도 좋고. 둘째가 태어나기 전, 바람을 쐬고 싶은 사심도 듬뿍 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돈지간인데 괜찮을까?

삼시 세끼 엄마가 해주는 밥만 먹고 살아온 아빠들의 반응은 과연?

세 여자가 돌아가며 하루씩 일정을 짜볼까?

10년 뒤 자신에게 편지 쓰기 같은 건 너무 유치한가?

 

불안 요소가 군데군데 있었지만 그것들이 도리어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어떤 결론이 나든 의미있을 것 같았다.

정말, 그때만 해도 굉장히 의욕적이었다.

 

그런데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멈췄다.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내 아이를 보며 마음껏 웃을 수도 없던 시간.

원고 수정 작업은 전혀 진전이 없었고, 그 사이 뱃속의 아이는 30주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넋이 나간 시간이었는데도 제주는 늘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향하던 곳이 바로 그 섬, 제주가 아니었던가.

난 도저히 그 땅을 밟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음을 되돌린 것도 그들 덕분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감사히 써야한다는 것,

치열하게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 하는 것.

그 즈음 내가 하루에 수십 번씩 되뇌이던 것들이었다.

 

서둘러 비행기 표를 사고, 숙소를 잡고, 렌트카 예약을 했다.

마침 화순에서 가까운 광주공항 발 제주 왕복 티켓이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 놔두고'가 이번 여행의 핵심이었는데 내 맘대로 준영이와 준영아빠도 끼워넣었다.

얼마나 급한 결정이었느냐 하면, 한껏 부풀어 있을 엄마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겨우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편을 몇 군데 읽었을 뿐, 출발하는 날 오전까지도 일정, 음식점 하나도 정한 게 없는 그야말로 대충 시작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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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와 반팔 셔츠, 티셔츠 두어 벌, 카디건, 선크림, 모자.

여름 여행은 짐이 가벼워서 좋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시나리오.

책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나는 '만약에' 하는 것들이 있으면 몽땅 챙겨야 마음이 놓이는, 애초부터 가볍게 여행하기 글러 먹은 타입이다.

 

더구나 그때는 5월 말이었는데, 봄이라기엔 덥고 여름이라기엔 어정쩡한데다 이따금 비소식까지 껴 있었다.

일단 아이와 남편 몫의 외출복과 속옷을 반팔, 긴팔 별로 세벌 씩 챙겼다.

'혹시' 몰라 우산, 양산 각각 한 개씩, 비상약도 넣었다.

여행 중에 책 주문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노트북도 챙기고, 짬이 날 때 읽고 싶은 책, 보고싶은 영화 한 두 편 넣은 외장하드, 아이가 좋아하는 책 두어 권... 그러다 보니 커다란 가방 두 개, 노트북을 넣은 가방 등 작은 가방 두 개가 꾸려졌고 카메라 가방에 삼각대가 추가됐다.

 

아이가 더 어려서 여행을 할 때는 이유식만 따로 안 챙겨도 얼마나 편할까 싶었는데, 막상 그 시기가 닥쳐도 짐의 양이 거의 비슷한 것은 '꾸리는 자'가 그대로인 때문이리라.

그래도 모우수유만 하던 6개월 전후에는 아이와 내 짐의 비율이 일정했는데, 갈수록 아이의 짐이 늘어나고 그만큼 내 짐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다보면 언젠가 나 혼자 다시 여행을 떠나는 날, 배낭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 짐 싸는 상상만으로도 나는 갑자기 행복해진다.

 

반면 엄마들 짐은 무척 단출했다.

친정 엄마는 중간 사이즈 트렁크 하나, 시어머니는 (세상에!) 약간 큰 손가방 하나가 전부.

입만 열면 여행, 여행 하며 잘난 척을 했는데 진짜 고수가 여기 계셨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 식구의 엄청난 물량 공세에 트렁크가 부족해서 렌트카 업체에서 무료로 대여해 준 유모차는 두 엄마와 카시트에 앉은 아이가 탄 뒷좌석 바닥에 일자로 뉘어졌고, 렌트키 직원은 혹시나 유모차가 상할까봐 불안한 표정으로 키를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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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공항에서 두 할머니와 준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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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아이.

아니다. 아이를 임신했던 2012년 여름에도 제주도에 갔으니까 엄밀히 따지면 이번이 두번째다.

 

잠시 그때가 생각났다.

지금 준영이 또래쯤 되는 어린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던 김포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가장 진상은 내릴 때까지 대성통곡을 했던 한 남자 아이였다.

그 아이 옆자리에 있던 한 여자는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마자 자리를 옮겼고, 그 앞에 앉아 있던 커플(아이가 없는 부부로 보였다)은 비행하는 내내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 엄마는 쩔쩔매며 안고, 업고, 과자를 주며 달랬지만 아이는 도통 진정되지 않았다.

 

당신들도 아이를 품어보면, 낳고 길러보면 알겠지.

그때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엄마 편이 되어,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 못한 젊은 여자들을 쏘아보았다.

 

그런데 나도 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진 그 젊은 여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전에도 상식적으로 사고하고 세상에 연민을 품고 살아온 줄 알았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내 안의 모성이 발현되기 전의 나는 나 혼자 잘난 줄 아는 얼치기일 뿐이었다.

'남녀평등과 일, 가정의 양립'에 관한 법안을 준비하면서도 그것이 왜, 얼마나 중요한지 가슴으로 알지 못했다.

아니, 여성의 독립, 평등이 여전히 화두가 되어야 하는 세상에 사는 줄도 몰랐지.

매일 아침 30분씩 늦고 사무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어린이집 원장과 큰 소리로 통화를 하는 워킹맘 동료.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 배려해주는 척 했지만 실은 거짓이었음을 고백한다.

세상의 보살핌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는 오지랖을 품게 된 것도 모두 엄마가 된 이후의 일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무서워 하지도, 울어 제끼지도, 칭얼거리지도 않았다.

그 무렵 막 익히기 시작한 '떴다 떴다 비행기' 노래를 부르며, 이 할머니 무릎에서 저 할머니 무릎으로 옮겨다니며, 예쁜 승무원 이모들과 인사를 하며 즐겁게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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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공항에 도착한 뒤로 나는 (엄마들 몰래) 문화유산답사기와 지도를 대조해가며 구체적인 일정을 짜느라 무척 분주했다.

 

숙소가 북쪽 끝에 있으니까, 제주 국제공항을 기준으로 오른쪽 지역을 돌아보면 되겠군.

조천읍(본향당)~구좌읍(동굴, 오름, 해녀박물관)~성산읍(성산일출봉, 김영갑 갤러리), 그리고 시간이 나면 서쪽 강정마을까지 가보자.

요리 강사인 사촌언니에게 맛집 여러 곳을 추천 받았는데 이런, 숙소와 정반대 방향이라 막상 도움은 안 되겠다.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부랴부랴 일정을 짜고 있다니.

문득 지금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싫지가 않았다.

원래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계획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피곤한 사람이었는데.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기른 지난 2년 반 동안 엄마로서의 경험은 개인적인 즐거움, 성취가 가장 최우선이었던 나에게 가족의 의미,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관대함, 다른 존재에 대한 너그러움. 이것이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도 전에는 최대한 많이 보고 오고 싶어 조바심이 났는데, 지금은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 때론 사진이나 글로 남기는 기록의 의무조차 생략하고 싶을 만큼.

 

그나저나 엄마들 모시고 가볍게 떠난 여행인데, 난 왜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또 엉뚱한 데서 심각해지는지.

정말 어쩔 수 없는 천성이란 게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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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떴다 비행기 몇 번 부르고 사진 몇 장 찍었더니 어느새 제주공항.

 

짬이 좀 나자 엄마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카톡 확인하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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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엄마, 아니 아빠까지 네 어른의 눈길은 오로지 한 곳, 아이에게 집중된다.

 

아무리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라고 해도 믿는 구석이 있긴 했다.

바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도 편.

'제주의 속살에 다가가고 싶어하는 육지인을 위한 제주도 답사기'가 손에 있는데 두려울 게 무어랴!

 

"본향당이 뭐냐면 한 마디로 제주 여인들의 한풀이 장소에요.

제주에 세 가지가 많다는 건 알지? 바람, 돌, 그리고 여자.

제주 여인들은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시시콜콜한 일들을 여기 본향당에 와서 신고를 했대. 아기를 낳았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농사를 망쳤다...

제주 신을 할망(할머니)이라고 부르는데, 그 할망은 여인들의 모든 하소연을 들어주는 자애로운 대상이었던 거지.

지금 우리가 가는 와흘본향당은 제주도민속자료로 지정된 다섯 개의 애표적인 마을 신당 중 하나랍니다.

아, 그리고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중간산마을인데, 해안이나 산간마을에 비해 제주에서 농토가 잘 발달되어 있고... 제주를 이해하려면 4.3항쟁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해요. 광주로 치면 5.18이랑 비슷한 사건이었는데..."

 

나는 공항에서 첫 목적지인 와흘본향당으로 가는 동안 책에 미리 표시해둔 부분을 힐끔힐끔 참고하며 한껏 잘난 체를 했다.

앞으로 우린 2박 3일 동안 진짜 제주를 탐험할 거에요.

그러니까 전에 엄마들이 했던 제주여행은 다 잊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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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리 덕인당 보리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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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카 직원이 소개시켜준 해물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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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동굴 대신 만장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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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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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결과지만, 임시변통의 꾀를 부리던 자의 최후는 비루했다.

 

'와흘본향당'은 화재로 출입문이 폐쇄돼서 입구만 서성이다 왔고, 저자가 '감귤초콜릿보다 더 진한 제주의 맛'이라고 자신있게 소개한 보리빵도 우리 입맛에는 별로였다. 엄마들은 팥만 들어가면 만사 오케이인 줄 알았건만, 그것도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파워블로거가 아니라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은 진짜겠지 했는데 해물칼국수는 너무 짜고 직원은 불친절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탈리아 씨에나의 깜뽀 광장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일 만큼 압도적인 경관을 가졌다는 '아부오름'의 입구도 굳게 닫혀 있었고, 게다가 세계 자연유산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며 찾아간 용천동굴은 아예 일반인 공개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다행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점은, 여행 주최자의 부실함과 그 때문에 길에서 낭비한 시간 마저 그들은 즐겁게 받아들여주었다는 것이다.

"그치? 이런 게 진짜 여행의 묘미지?"

얼렁뚱당 상황을 모면하면서 다시 한 번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남편과 둘이 호주를 일주할 때, 운전 담당인 그가 길만 잘못 들어도 세상에 이렇게 무책임하고 한심한 치가 어디 있냐는 생각부터 했던 내가, 막상 그 상황에 닥치니까 이렇게 뻔뻔하게 돌변하다니. 그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 옆에 있는 그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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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리 해안도로 어디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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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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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해녀박물관을 방문한 일이었다.

 

제주 해녀의 상징은 하도리에서 찾게 된다. 하도리에는 현재도 가장 많은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고, 일제강점기에 해녀들의 항일운동이 일어났던 곳으로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에는 기념탑도 세워져 있고 2006년 문을 연 해녀박물관도 있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가운데

 

이런 객관적인 서술 말고도 책에는 해녀에 관한 흥미진진한 내용이 가득했다.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원래는 잠녀, 또는 잠수라고 부르던 말이 일제강점기에 해녀라는 말로 바뀌었다던가, 아무런 보조장비 없이 잠수일을 하는 나잠업은 제주도와 일본에만 있다는 것, 고려 때는 남자는 전복을 잡고 여자는 미역이나 해조류를 채취하는 남녀 나체 조업(나잠업)이 행해졌다는 것, 국가에 바치고 관리들이 상사에게 뇌물로 쓰이기 위한 전복을 납품하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했던 해녀들, 그리하여 전복을 잡지 말도록 명했던 정조, 해녀조합과 선주들의 수탈에 시달리던 해녀들의 대대적인 시위...

 

그 중에서도 해녀박물관에 가 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바로 이 대목 때문이었다.

 

"제주에선 여자애들이 7~8세 때가 되면 갯가 헤엄은 어느정도 익숙하죠. 12~13세가 되면 할머니, 어머니로부터 두렁박을 받아 얕은 데서 깊은 데로 파도를 타고 나가고 들어오는 연습을 합니다... 15~16세가 되면 애기 해녀로서 물질에 입문해서 비로소 해녀가 되고... 첫 애기해녀는 이모나 고모 손에 이끌려 나옵니다. 엄마는 데려오지 않아요... 해녀들은 바다 속에 무자맥질하여 보통 수심 5미터에서 30초쯤 작업하다가 물 위에 뜨곤 하지만, 기량에 따라서는 수심 20미터까지 들어가고 2분 이상 견디기도 합니다. 물 위로 솟을 때마다 '호오이' 하면서 한꺼번에 막혔던 숨을 몰아쉽니다. 그 소리를 '숨비소리'라고 하죠. 숨비소리는 음정이 날카로우면서도 짙은 애상을 간직한 정 깊은 생명의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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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박물관 2층에서 난 그 생명의 소리, '숨비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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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바다를 보면 가슴이 트인다 했는가
숨비소리를 토해내며 현실과 싸우야 했던
제주 해녀

턱 밑까지 올라온 숨을 억누르고
한계를 이겨낸 뒤 내뱉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생명의 소리
숨비소리


한평생 자맥질 해 내려간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숨비소리 한 번에 자식을 키웠고
숨비소리 두 번에 부모를 모셨다

해녀의 바다는 어떤 모습인지...
그녀의 소망을 바다에 새긴다
그녀의 꿈을 망사리에 담아 올린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희망의 햇살이 눈부신 그곳으로 간다


물 밖으로 내쉬는 숨비소리가 허공에 흩어진다
힘든 물질 끝에 숨비소리는 바다 속만큼 깊다
또 다시 물 속으로 머리를 디민다
더 깊이 더 깊이

숨비소리는 해녀의 노래가 되어
제주의 바람이 되어
푸름 꿈의 모습으로 날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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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의 바쁜 손놀림, 유연한 발길질,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환하게 웃는 모습, 그리고 호오이, 하는 숨비소리.

나를 제주로 끌고 온 힘, 나를 낳고 길러온 힘이 바로 여기 있었구나!

그리고 생각나는 얼굴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무엇이든 거뜬히 해낼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 엄마, 아니 우리 자신들. 그리고 진도 앞바다에 함께 묻혀버린 부모와 아이들...

 

아, 삶은 어찌 이리 연약하고 애잔하면서도 질기고 강하단 말인가.

나는 서럽고 슬퍼서, 미안하고 고마워서 한참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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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바라보는, 여행하는 내내 가장 자주 마주친 두 엄마의 표정.

그때마다 나는 내가 엄마가 된 자체가 기특한 '효도'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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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 만의 아침 산책 길

 

낯선 곳을 여행하는 묘미는 껍질을 벗어던지고 날 것의 자신을 만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남에게 보여지고 싶은 나와 진짜 나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지 않고, 내숭떨지 않고, '내 멋대로' 살아가는 것.

그러다보면 나와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엔 성장 배경도, 생각도, 경험도 모두 달라 불편하고 낯설고 멀리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소통하다보면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같은' 것들이 보인다. 그때부터 우린 행복해진다. 상대방에게, 자신에게 더 큰 사랑을 품게 되므로. 사랑을 품을 때만큼 평화로운 순간을 나는 알지 못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단편적인 면들만 보면 두 엄마도 무척 다르다.

친정엄마는 어딜 가든 드라이기와 드리이빗, 스프레이를 꼭 챙기고 시어머니는 립스틱 바르는 것도 쑥쓰러워한다. 퇴직 공무원 남편을 둔 엄마는 취미로 서예와 수묵화, 텃밭을 가꾸고, 시어머니는 자영업자인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한다. 시어머니는 직설적인 반면 엄마는 돌려말하는 편이다. 엄마는 사진 찍는 걸 무척 좋아하고 시어머니는 사진기 앞에서 웃는 게 어색하다. 시어머니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동네 친구들이 많고, 엄만 같이 취미생활을 하는 이들 몇명과 어울리는 걸 즐긴다. 시어머니는 드라마를 좋아하고, 엄마는 노래를 좋아한다.

 

하지만 연륜의 미덕일까. 아니면 같은 시대를 살아온 여성, 엄마란 공감대의 축복일까.

새벽녘 숙소에서, 차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얼마 전 부친상을 치른 시어머니를 위해 엄마는 20대 때 친정엄마를 잃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알콜 중독이었던 시아버지, 생활력이 전혀 없던 아버지와 반대로 강압적이었던 아버지, 동생들에 밀려 못 배운 서러움, 혹독했던 시집살이, 가난했던 젊은 시절, 고지식한 남편들에 대한 불만과 노총각 자식 걱정, 심지어 우리 부부 험담까지!

 

딸, 사위의 부모로서 존경하며 별 갈등없이 지내는 사이라 하더라도 어찌 편하기만 했을까.

겸연쩍고 어색할 때도, 아 저런 면이 있었구나 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같은 여자로서 그 둘 사이에 끼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그들만의' 시간으로 놔두었던 건, 그들 스스로 다름과 같음을 찾아내며 좀 더 살가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우린 그런 면에서 통하는 데가 있는 여자, 엄마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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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치열하고 혹독하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4.3의 역사처럼, 해녀들의 숨비소리처럼.

복잡한 관계 속에서, 일과 육아, 그리고 나만의 시간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갈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보살펴야 할 또 다른 아이가 태어나면 더욱 그러하리라.

 

하지만 머리가 욱신거리는 것도, 쓸쓸하다가도 용기를, 희망을 품게 되는 것도 모두 사람 덕분이다.

글로 옮기면 참 뻔하게 들리지만, 여행을 통해서든 일상에서든, 내가 단순해지는 순간 내 가슴에 새겨지는 것은 매번 같다.

 

모든 삶은, 존재는 귀하다는 것.

그러므로 열렬히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한다는 것.

 

여행의 끝은 대개 아쉽기 마련인데 제주공항을 떠나기 전, 아이와 마지막으로 떴다 떴다 비행기를 부르며 난 무척 설렜다.

우리의 다음 번 여행은 언제가, 어디가 될까.

엄마들 환갑 같이 그럴듯한 핑계거리가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아니면 책이 대박이 나서 인세로 당당하게 나혼자?!

무어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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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elisabet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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