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녀를 둔 지인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때 뱃속 아기는 5개월 즘 됐었나 보다. 주제는 예방접종이었는데 그녀의 의견은 이러했다. 뇌수막염은 선택이라고는 하나 꼭 맞혀야 한다, 폐렴구균은 생각 좀 해보자, 허나 로타 바이러스는 돈지랄이다! 확신에 찬 어조였으므로 나는 과연 그렇구나 설득당했다. 그리하여 얼마 후 친정 어머니가 '친구 외손녀는 예방접종비로 백 만원도 넘게 썼다는데.'라며 귀동냥 정보를 풀었을 때 호기롭게 풍월을 읊었다. "그거 다 돈지랄인데?"

 

 아, 그러나 누가 여자는 약하나 어미는 강하다 했던가.
 약한 여자는 어미가 돼도 나약했으니.

 아는 동생이 "예방접종은 이 불확실한 세상에 발명돼 가장 좋은 것 중 하난데요?"하기에 과연 그렇구나 또 납득했다. 그래, 이 불확실성의 세계 속에서 내 다른 건 못해줘도 바이러스로부터 너를 지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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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에서 깨 제대로 의식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아기는 이미 B형 간염 1차 예방접종을 마쳤다. 한 달 후 2차, 그로부터 5개월 후 3차, 총 3차례. 각 5천원씩 총 1만 5천원이 들었다.

 

 생후 1년 반 정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영부영하는 새 예방접종일 넘기기 쉽다더니 챙겨야 할 목록이 꽤 많았다.
 B형 간염 1차 예방접종 후 에미 품에 안겨 맞은 첫 주사가 BCG 결핵 예방접종.
 BCG 예방접종은 경피용과 피내용 두 가지가 있다는데 피내용은 흔히 말하는 불주사다. 해서 어깨 쪽에 제법 도드라진 흉터가 남게 된다. 경피용은 9개의 가는 바늘이 달린 도구로 도장 찍듯 꾹 찍기를 두 번, 얼마간 조그만 땡땡이 무늬가 연하게 남지만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옅어진다.
 병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데 입원해 있던 병원의 가격은 7만원. 길 건너편 보건소에서 맞는 피내용은 5천원.
 주사 흔적이야 어찌됐든 질적 차이가 없다면 피내용도 괜찮겠다 싶었다. 물론 "초등학교 가면 애들이 너희집 가난하구나 놀린대요" 란 말에 귀가 팔랑팔랑하던 순간도 있었지만. (피내용이 가난의 커밍아웃이란 말이더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들의 미래 클래스 메이트에게 굴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을 했건만...
 
 보건소에 문의한 결과 생후 4주 즈음 일정 체중 이상이 돼야 피내용 접종이 가능하단다. 퇴원 2주 후 갓난 아기를 바리바리 싸안고 다시 보건소에 올 생각에 아득했다. 한겨울이다. 결국 퇴원 하루 전  병원에서 경피용으로 접종. 경피용은 2주 후에도 바로 맞을 수 있었다.
 암튼 그게 뭐라고 아기가 우니 에미의 마음은 미어지고...
 
 2개월 후 돈지랄의 서막이 열렸으니, 로타 바이러스와 DTaP-IPV(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소아마비) 1차를 같은 날 접종.
 로타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장염을 예방해준다는 로타텍은 주사가 아니라 입에 투약하는 경구용이었다. 물론 백일도 안 된 아기가 맛있게 꿀꺽꿀꺽 삼켜줄리가 만무하다. 하여 많은 엄마들은 아기 입가로 약이 질질 흘러내리는 안타까운 광경을 목도하는데!
 저기! 몇 만 원 어치 돈이 흐르고 있어!!
 곧이어 저 약을 백 퍼센트 다 먹지 않아도 과연 효과가 있는가라는 의문과 근심이 회오리처럼 일기 시작한다. 병원에서는 괜찮단다. 그러나 미덥지 못해 병원문을 나서며 검색한다. 나같은 엄마가 꽤 된다. 진짜로 괜찮단다. (아니, 그렇다면 이것은 아기의 특성을 고려한 제약회사의 혜안이란 말인가.)
 로타 장염을 예방하는 경구약으로 로타텍과 로타릭스액 두 종류가 있는데 나는 로타텍으로 총 3회에 걸쳐 각 십만 원씩, 총 삼십 만원.
 필수접종인 DTaP-IPV(테트락심)는 4차에 걸쳐 총 2만원.

 

 일주일 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아기 예방접종 수첩을 챙기고) Hib 뇌수막염과 폐구균 단백 결합백신 PCV 예방 접종 출동!
 폐구균 백신은 프리베나 13가와 신플로릭스가 있는데 교차 접종이 되지 않는다. 하여 1차로 맞은 백신으로 끝까지 동일하게 접종해야 한다. 나와 남편은 (평소답지 않게) 무조건 좋은 걸로요,해서 프리베나 13가를 선택. 3차까지 15만원씩, 마지막 4차는 (왠지 모르게) 12만 5천원. 도합 57만 5천원.
 여러 종류가 있는 뇌수막염 백신은 교차접종이 가능하다. 1차는 박셈힙을 접종했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돼 2, 3, 4차는 모두 퍼스트힙으로. 1, 2, 3차 각 4만원 씩, 4차 시기에는 뇌수막염 예방접종이 전면 무료화되어 12만원으로 끝났다.

 

 그 해 겨울 한 달의 시간 차를 두고 독감 1, 2차 예방접종. 각 2만 5천원, 3만원으로 합이 5만 5천원. 다음 해 겨울에는 남편 회사의 지원으로 무료.
 수두, MMR 두 접종이 같은 날, 만원.
 일본 뇌염 예방은 3차까지 사백신으로 무료 접종. 아직 2차례 더 남았다.

 

 마지막으로 A형 간염 예방접종이 2차에 걸쳐 각 5만원, 3만 5천원으로 총 8만 5천원. 사정상 각각 다른 병원에서 맞았는데 1, 2차의 상이한 특성 때문인지 개개 병원의 가격 정책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가격이 달랐다.
 이로써 숨가쁜 예방접종도 당분간 일단락.

 

 사실 예방접종은 돈도 돈이지만 그 효과나 부작용 탓에 찬반 양론이 공존해 엄마를 갈등하게 한다. 물론 하는 편이 좋다는 의견이 대세지만 한편에서 끊임없이 부작용 사례를 나열하므로 병원에 다녀온 날은 초긴장 상태가 된다. 열은 나지 않는가, 부종은 심하지 않는가, 기운이 없진 않는가.
 겁쟁이 엄마의 두려움은 아기가 평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발랄하게 눈을 떴을 때에야 잦아드는데.
 그런데 과연 예방접종은 참으로 하는 편이 좋은걸까?...라고 이미 죄다 맞힌 지금에 와서야 의문을 품어본들 무익하오.

 

 이리하여 줄줄이 나열한 예방접종비의 총합은 얼마인고 하니... 계산기가 필요하다!
 출생 이듬해 겨울의 독감 예방접종비와 뇌수막염4차 예방접종비 무료화에 힘입어 도합 124만원. 이것은!!! 그렇다, 분윳값을 상회한다.

 

 이래서야 분윳값이 아니라 예방접종비 벌기 위해 인형 눈이라도 붙여야겠어!라며 혹여라도 근심에 빠져드는 산모님이 계시다면 안심하시라.
 2012년만 해도 필수 예방접종비조차 5천원은 내야했는데 2013년에 이르며 전면무료화되었고 (맞죠?) 2014년에는 뇌수막염에 이어 (가장 지출이 큰! 돈 잡아먹는 하마이던) 폐렴구균 예방접종비도 무료화되었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아기들은 돈 걱정없이 예방접종 할 수 있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돈지랄이란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로타 바이러스와 A형 간염 예방접종 정도.

 어찌보면 옷이나 장난감, 책값에 비해 맥시멈이 확실한 분야가 예방접종비긴 하다. 그러나 선택 접종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데서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부모도 적지 않았을 터이다.

 

 아마도 우리 어른들은,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무수히 많은 빈부차와 계급차를 목격하고 상처받은 채 무력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두손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아기들이 예방접종으로 인해 너무 빨리 그 격차를 마주하지 않게 돼 다행이다.

 

 잘 때가 제일 천사같은 세상 모든 아기들이 모쪼록 건강하게, 가능하다면 정의롭고 아름다운 것만 가득 보고 자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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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나이 마흔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들 한 마디 할 동안 열 마디 한다며 타박 받을만큼 급하고 남 이야기 들을 줄 모르는 성격이었거늘, 걷고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늦된 아이를 만나고 변해갑니다. 이제야 겨우 기다리고,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람에게 처음 다가온 특별함,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의 이야기가 따뜻함으로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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