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이라는 단어는 본래 가진 뜻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자란 인상을 풍겼다. 키며, 몸무게, 얼굴은 물론이고 성적, 성격까지 평균이라고 하면 '제법인데?'라기보다 '뭔가 좀 부족하지 않나?'하는 느낌인 게다. 뭐든 평균 이상은 돼야 해볼만 하고 가볼만 하고 먹어볼만 하고.
 그러던 '평균'이 아기가 들어서고부터 엄청난 두려움과 압박으로 다가왔다. 뒤집고 기고 서고 걷고 매 순간이 고비다. 한 단계 도약하는 문턱마다 매번 평균에서 낙오한 아들은, 이미 뱃속에서부터 머리 크기며 몸무게가 평균과 제법 차이를 보여 엄마의 평균 집착증에 불을 붙였다.
 
 그래, 그렇다면 국민 타이틀이 붙은 물건들을 사들여 아기용품만은 평균에 발맞추어야겠어.
 아는 게 조금은 있어야 다양한 제품을 둘러보고 비교분석도 해볼 터인데 도무지 듣고 배운 바 없으니 남들 다 쓰는 제품 위주로 사들였다. 남들 다 예스할 때 노 하는 것도 멋이 있다만 다수결이 괜히 민주주의 의결 방식이 된 게 아니지. 다수 의견을 따르면 실패확률이 낮음에 틀림이 없다.(라며 지나치게 안이한 태도로 쇼핑에 돌입한다.)
 국민 기저귀함, 국민 속싸개, 국민 욕조. 이른바 국민 시리즈가 집안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국민 가수하면 god, 국민 남동생은 이승기, 국민 여동생 김연아에서 소희까지. 이 국민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람이 싫었던 적이 없다. 항상 환호를 보내고 있었으니 내 이 나라 국민임에 틀림이 없구나. 그러하다면 유아제품이라고 다를쏘냐!
 

2014-10-03 06;30;16.jpg

 
 그러니 젖병도 국민 닉네임을 획득한 더블하트로 결정.
 네이밍 센스도 기가 막힌 더블하트의 신모유실감 160ml짜리를 3개 준비했다가 곧이어 240ml짜리 4개에 젖꼭지도 단계별로 추가 구매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은 앤젤 젖병을 사용했기에 혹 유두혼동이 있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나오지도 않는 에미 젖을 몇 시간이고 물고 있을 때처럼 아기는 순순하게 변화를 받아들였다. (순둥이 아기라고 칭송받던, 참으로 아름답던 짧은 시절이었다.)
 조금더 저렴한 젖병은 어떨까 싶어 이마트의 DAIZ 젖병과 누크 등도 시도해보았는데 젖꼭지가 아기 구강구조와 맞지 않는지 분유가 자꾸 옆으로 흘렀다. (역시 국민 타이틀은 거저 얻는 게 아니구나.) 그러다 유피스와 더블하트의 젖꼭지가 호환 가능하다는 정보를 입수, 200ml짜리 유피스 젖병 2개를 구입했다. 더블하트에 비해 현저히 저렴한 가격! 허나 이 유피스 젖병은 거의 사용할 일이 없었으니.
 
 보통의 설거지와 달리 젖병 씻기는 왜 이다지도 까다로운지. B&B 젖병 세정제로 거품을 부글부글 내어 젖병은 젖병 스펀지로 젖꼭지는 젖꼭지 전용솔로 꼼꼼하게 닦고 헹구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 후 끓인 물에 잠시 담가뒀다 젖병집게로 건져 젖병 건조대에 하나씩 걸어둔다. 세균이 번식할새라 토끼 간 말리듯 간혹은 햇빛에 내어 말린다. 국민 젖병 소독기를 장만하지 못했으니 하는 수 없지,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한다만 이게 뭐라 말할 수 없이 성가시다.
 엄마가 되면 자연스레 생기는 줄 알았던 모성, 일신의 귀찮음과 괴로움 따위는 기꺼이 감내하는 초인적 능력이 어쩐 일인지 조금도 발현되지 않는다. 한밤에 깨어난 아기가 울며 분유를 찾는데도  쉬이 눈이 떠지질 않고 가득 채운 분유를 몇 밀리 먹지도 않고 잠들어 버리기를 반복하면 몇 배로 늘어나는 설거지 분량에 스멀스멀 화가 돋는다.
 
 그때다. 막내동서가 "아니, 형님, 일회용 젖병 모르세요?" 심봉사, 개안할 소리를 건넸다. 그리하여 일신의 안녕을 좇아 일회용 젖병이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였더니.
 이것은 가히 축복받아 마땅한 제품으로 젖병 설거지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나들이 때나 한밤에만 쓸 생각이었는데 사람이 그렇다, 불편하고 어려운 환경 적응은 코끼리 냉장고 들어가듯 하면서 편하고 쉬운 환경에는 미끄럼틀 미끌어지듯 순식간에 적응이 완료된다.
 당연한 듯 매번 일회용 젖병만 찾게 됐다. 처음에는 일회용 비닐팩을 쓰는데 미미한 심리적 저항도 있었다. 애 보는 엄마가 설거지가 귀찮아 비닐팩을 쓰다니 엄마실격인가? 환경에도 안 좋겠지 싶고. 게다 이 녀석은 '국민' 타이틀을 얻지 못했단 말이지. 많은 이들이 사용한다면 국민 일회용 젖병이라 불릴 법도 하거늘. 그랬다면 일회용의 유혹에 넘어간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도 있었을텐데 역시 엄마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PPSU나 유리 소재 젖병을 사용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도 눈앞의 편리함을 거부할 수 없어 매번 비닐팩을 찾는다. 결국 250ml 짜리 비닐팩 60매들이 상자를 6개째 뜯었을 즈음 아기는 분유를 끊고 완전히 이유식으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나는 수유 기간 동안의 아기가 평균적으로 몇 개의 젖병을 사용하는가, 비교해볼 기회를 영 잃었다. (젖병 떼기까지 아기가 사용하는 젖병 개수의 평균이 조사돼 있긴 한가 싶지만서도.)
 
 결국 아기는 젖병 떼기도 평균보다 늦었다. 엄마를 조바심나게 하던 뒤집기를 시작으로 이제나 저제나 두근두근 설렘을 불안과 초조로 바꾼 걷기는 물론이고,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우려되던 말문 트이기까지 뭐 하나 평균을 웃돈 게 없다. 어릴 때 빠른 거 아무 소용없다, 크면 다 똑같다, 때되면 다 한다는 위로도 지나고서야 그렇구나 하는 거지, 당면해 있을 때는 뭐 하나 심각하지 않은 게 없었다.
 아기가 없을 때는 몰랐다. 세상 엄마들 걱정이 하찮아 보이고 괜히 남들과 비교해 빠르다, 늦다 예민하게 구는 듯도 여겨졌다. 허나 이제 안다. '아기 발달 상황 공유해요.'라며 글 남기는 엄마들 마음을.
 
 엄마는 지금도 32개월 아기의 표준 키와 몸무게를 검색해 본다. 그래, 역시 평균이 아니야. 예전엔 평균만큼 못나 보이는 것도 없더니만 이제는 평균이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평균이라고 하면 그저 안도하고 감사한 마음이 된다. (고맙다, 평균!) 내 그간 평균을 괄시했던 죗값을 한동안 톡톡히 치러야 하나 보오.
 아들아, 평균만큼만 해보자, 우리.
 
 
 *분유 수유 기간 동안
 1. 더블하트 젖병 7개 (129,930원) - 과연 국민젖병답게 만족.
 2. 더블하트 젖꼭지 추가구매 (65,320원) - 신모유실감이 나온 후, 모유실감 젖꼭지를 싸게 구입. 누락된 것도 있어 정확한 개수를 모름.
 3. 이마트 DAIZ  젖병 (9,900원) - 매우 저렴한 가격이라 구입해 보았으나 실패.
 4. 누크 젖병 (10.900원) - 젖꼭지가 아기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 없음. 분유가 계속 입밖으로 흐름.
 5. 유피스 젖병 2개 (16,200원) - 더블하트 젖꼭지가 호환돼 구입했으나 일회용 젖병에 입문, 거의 사용하지 않음.
 6. 유피스 일회용 젖병 (6,550원) - 여기에 일회용 비닐팩을 걸쳐서 사용.
 7. 유피스 일회용 젖꼭지 (5,220원) - 미사용.
 8. 유피스 일회용 젖병 비닐팩 (32,600원) - 한 팩당 60개들이. 참으로 은혜로운 제품.
 9. 더블하트 노리개 젖꼭지 1, 2, 3단계 (20,522원) - 3단계는 미사용. 처음 1단계 때만 많이 찾고 이후로 노리개 젖꼭지를 크게 찾지 않음.
10. 더블하트 젖병 스펀지 브러쉬 3개 (22,800원)
11. 더블하트 젖꼭지 브러쉬 2개 (13,600원)
12. 피셔 프라이스 젖병 브러쉬 (6,500원)
13. 유피스 젖꼭지 브러쉬 4개 (12,100원)
14. 피셔 프라이스 젖병 집게 (3,800원) -젖병 소독 후 꺼낼 때 꼭 필요.
15. 아기박사 젖병 건조대 (8,270원) - 편리.
16. 아벤트 휴대용 분유통 (5,890원) - 3칸으로 분리. 한 번에 탈 양을 미리 나눠두면 매우 편리함.
17. B&B 젖병 세정제 (26,690원) - 400ml, 500ml, 800ml, 1000ml, 리필형, 액상형, 거품형 등 다양한 제품을 섭렵 총 5500ml 사용. 특별한 트러블이 없는한 쓰던 제품을 계속 쓰기에 대부분 B&B로. 몇 번 다른 세정제를 쓴 적이 있으나 기록에서 빠짐.
 
이리하여 젖병을 메인으로 둔 수유 관련 용품은 총 396,792원이 들었군요. 원 단위는 절사하시어도 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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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나이 마흔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들 한 마디 할 동안 열 마디 한다며 타박 받을만큼 급하고 남 이야기 들을 줄 모르는 성격이었거늘, 걷고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늦된 아이를 만나고 변해갑니다. 이제야 겨우 기다리고,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람에게 처음 다가온 특별함,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의 이야기가 따뜻함으로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이메일 : toyo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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