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 1.jpg

 

둘째 아이이자  딸중에선 첫째인 윤정이가 방학을 했다.

며칠전 한 학년을 마치는 평가에서 윤정이는 모두 백점을 맞은 시험지를

자랑스럽게 들고 왔었다. 수학과 국어에서 전부 만점을 받은 아이는

남자 아이 한명과 윤정이가 유일하다고 담임선생님께서 칭찬하셨단다.

 

솔직히 초등학교 1학년 시험에서 백점을 받은것이 뭐 그렇게 대수냐고

고학년이나 되야 시험성적이 의미가 있는거라고, 나도 첫 아이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이 70점을 받든, 80점을 받든

크게 동요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결과물을 받아들었을때는 적잖이

동요가 되었다.ㅠㅠ)

 

그런데 윤정이가

"엄마, 내가 여자 중에서 1등이래요! 하며 모두 백점을 받은 시험지를

꺼내들었을때는 어찌나 기쁘던지 순간 눈물마저 글썽했다.

큰 아이 키우면서 기대했던 것이 와장창 무너지는 것을 너무나 많이

겪었던 나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그런 종류의 기쁨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시험은 대부분 백점 받는거 아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런줄 알았다.

그런데 시험지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정말 어려웠다.

생각을 이리저리 많이 해야 정답을 쓸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수학 시험도 국어 실력이 우선 확보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다.

첫 아이 1학년때와는 또 다르게 어려워져 있었다.

어려운 문제들을 잘 푼것도 기특했지만 아는 것도 실수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 대견했다.

1학년 아이들은 덤벙대거나 시험에 익숙하지 않거나 해서 다 아는 것을

엉뚱하게 쓰는 경우가 정말 많기 때문이다.

글씨도 또박 또박, 문장을 지어내는 문제들도 야무지게 해 냈다.

그런 것들을 하나 하나 확인해가며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안 다니고 바로 학교에 입학하는 윤정이를 놓고

주변에선 염려가 많았다.

친구 사귀기가 어려울거라는 둥, 사회성이 부족할 수 있다는 둥,

처음 해보는 단체 생활이 힘들거라는 둥 염려는 다양했다.

 

오빠와 네 살 터울로 태어나서 같이 자라는 동안 내가 본 윤정이는

늘 믿음이 가는 아이였다.

첫 아이를 힘들게 키우면서 자주 다투고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탓인지 윤정이는 일찍부터 제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습관이

생겼고 상황에 따라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눈치가 일찍부터 떠 졌다.

첫 아이 때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통해서 둘째인 윤정이에게

조금 더 스스로 하기를 기대했고 아이의 요구에 대해서도

덜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서운해 하기도 했지만

윤정이는 늘 제 몫을 잘 해 내곤 했다.

 

첫 아이가 입학했을때 나는 날마나 노심초사했다.

아이가 주간학습계획표를 받아와 아무렇게나 팽개쳐 놓으면

내가 냉장고 옆에 붙여 놓고 그날 그날 배움과  가져가야 할 것을

챙겼다. 숙제도 말해주어야 해 갔다. 정작 본인은 태평한데

엄마인 내가 안절부절하며 살았다. 그러는동안 큰 아이는

스스로 챙기고 확인하는 습관을 끝내 갖지 못했다.

 

이런 시행착오의 경험으로부터 나는 윤정이부터는 자기 일을

스스로 책임지게 키울 생각을 했다.

주간학습계획표도 내가 챙기지 않았다.

"니가 학교 다니는 거니까 니가 확인해서 챙겨가.

니가 엄마한테 말한 것 만 엄마는 챙겨줄꺼니까..

주간학습계획표를 확인하는 것은 니 일이야"

이렇게 선언했다.

윤정이는 주간학습계획표를 받아오면 제방 책상 벽에 붙이고

날마다 들여다보며 숙제와 준비물을 챙겼다.

나는 정말 윤정이가 부탁한 것 만 챙겨 주었다.

가끔 윤정이가 학교에 가고 없을때 주간학습계획표를

들여다보며 요즘 무엇을 배우는지 확인하긴 했지만

내가 알고 있더라도 본인이 내게 뭐가 필요한지 얘기하지 않으면'

미리 챙겨서 말해주지 않았다.

 

2학기 시작하고 바로 정기 상담이 있어 담임선생님을 만났을때

선생님은 윤정이가 두어 번 준비물을 못 챙겨와 당황해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엄마가 잘 안챙겨준다며 서운해 했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건 제가 아니라 윤정이기 때문에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윤정이 몫이라고 얘기했거든요. 자기가 확인하고 내게 얘기해준 것 만

챙겨주었는데 몇 번 잘 못 챙긴게 있나보네요"

담임선생님은 그래도 1학년이면 어린데 조금 더 잘 살펴주세요...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그 후에도 변함없었다.

 

몇 번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윤정이는 스스로 확인하고 챙기는 것에 잘 적응했다.

그래도 가끔 "엄마, 친구네 집에 가면 주간학습계획표가 냉장고 옆에 붙어 있어서

친구 엄마들이 매일 들여다보고 챙겨주더라요" 하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너는 이제 스스로 확인하고 챙기는 습관이 들었으니까 가면 갈 수록 더

쉬워질꺼야. 엄마가 다 알아서 챙겨주는 아이는 나중에 더 힘들지도 몰라.

힘들었겠지만 엄마는 너처럼 스스로 해야 한다고 믿어. 그동안

잘 해줘서 고마워" 격려를 해주었다.

 

숙제도, 일기도, 준비물도 윤정이는 제가 먼저 확인하고, 저 혼자 해서

내게 보여주었다. 내가 해준것은 수학 숙제를 채점해주거나 받아쓰기

틀린것을 확인해주는 정도였다.

 

방과후 프로그램이든 학교 행사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 일이든

권하기는 했지만 선택은 늘 윤정이 몫이었다. 그래서 1학기때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아무것도 하지않고 신나게 놀면서 지냈고

2학기때 들어서야 '우쿨렐레' 한 과목을 신청해 즐겁게 배우며 지냈다.

친구들은 벌써 속셈학원이니 태권도며 피아노 학원이니 바쁘게 지내는

아이들도 많아졌지만 윤정이는 학교 수업 외에 1주일에 한 번

집에서 배우는 피아노와 방과후 수업으로 우쿨렐레를 배우는 것 외엔

주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으로 지냈다.

 

슬슬 영어를 해야 하지 않을까.. 방과후 영어회화 프로그램이 좋다는데

그런거라도 좀 해보지... 컴퓨터도 미리 배워두면 좋을텐데...

하는 욕심이 앞설때도 있었지만 큰 아이 처럼 윤정이도 제가 하고 싶지 않으면

설득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키워 놓고는 내 말 안들을때마다 늘 화가 난다ㅠㅠ)

 

집에 오면 막내랑 어울려 레고 놀이 하고 오빠 오면 오빠가 좋아하는 만화 같이 보고

책 좀 넘겨보다 영화보고, 밖에 나가 노는 것은 늘 좋아하고 숙제하고 일기쓰고

윤정이의 1학년은 그렇게  채워졌다.

그리고 그 결과로 윤정이는 친구들이 아주 많아졌고, 

일기도 한 바닥쯤은 금방 쓸 수 있게 되었고,

날이 좋으면 걸어서 학교에 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체력도 좋아졌다.

글밥이 많은 책도 잘 읽고

우쿨렐레로 여러곡을 칠 줄도 알게 되었다.

급식을 처음에는 힘들어 했지만  이제는 어지간히 매운 음식도 잘 먹게 되었고

줄넘기와 실뜨기와 구름사다리 건너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국어와 수학에서 백점을 받은 것도 기특하지만 더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학교생활을 즐겁게 잘 했다는 것과  공부를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내가 늘 바래오던 것들이다.

큰 아이는 학교를 제대로 좋아해보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었던 경험이 있기에

윤정이의 모습은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고마움으로 다가온다.

 

이제 방학이다.

방학이 너무 짧다고 윤정이는 벌써부터 투덜대지만,

방학이라해도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와 우쿨렐레가 있긴 하지만 즐겁게 악기를 하면서

남는 시간엔 실컷 놀고 매일 늦잠을 잘거라며 좋아한다.

그런 방학도 좋다.

늦잠자고 빈둥거리다 피아노치고 우쿨렐레 치고 친구들 불러 놀고

가끔 엄마와 오빠, 동생과 외출도 하면서 추운 겨울을 씩씩하게

지내는 것이다.

 

사교육과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윤정이는 올 해 단 한 번도 병원에 간 일이 없이,

아픈 것은 앓고 견디며 단단해졌고 학교에서의 배움만으로도 충분히

제 앎을 넓혀가며 지내왔다.

고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면 혹 학원을 가고 싶다고 할 수도 있고

제 실력에 자신을 잃는 순간도 오겠지만 윤정이라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1년동안 그런 믿음을 윤정이에게서

보아왔다.

 

첫 학교, 첫 학년을 잘 지내준 딸에게 정말 정말

마음을 다해 잘했다고, 애썼다고 말해주고 싶다.

처음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처음이라서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열심히 몸과 마음을 기울여 잘 해내줘서 고맙다.

 

처음처럼 그렇게 가보자.

아직 남은 길도 한걸음, 한걸음 또박 또박

제 발걸음으로 가보는거다.

그 걸음을 늘 응원하고 함께 할께.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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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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