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남짓. 동네의 한 단체에서 초등학교 3, 4학년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 프로그램의 반 구성은 유치부 / 1,2학년 / 3,4학년 / 5학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많으면 여덟 명, 적으면 서너 명이 오는 프로그램이지만 한 반에 꼭 어른 둘이 투입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돌본다. 자폐나 다운증후군 등으로 발달장애를 겪는 아이들도 오고, 초등학생 아이들은 대체로 아직 산만하기 때문에 어른 한 사람만으로는 통제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원래 유치부를 맡고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오지 못해 내가 유치부에 투입된 일이 있는데, 다른 한 사람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안 나는 아이들 사이에 앉아 수시로 튀어나오는 엉뚱발랄한 말과 몸짓에 호응하고 제지하느라 바빴다. 덕분에 케이티가 조금 더 커서 기관에 다니게 되면 딱 이런 풍경이 되겠구나, 하는 걸 미리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내가 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케이티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놀이방' 교실에 맡겨진다. 그 방에는 보육 총 책임자인 성인 한 사람, 그리고 이 사람을 보조하는 중/고등학교 학생 한둘이 함께 머물며 8명 안팎의 어린 아이들을 돌본다. 방에는 각기 다른 발달단계를 거치고 있는 0세~3세 아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놀고, 세 명의 돌보미는 정해진 것 없이 이 아이 저 아이의 관심사에 따라 함께 위치를 이동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볕이 좋아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 놀고 싶어하면 어른 한 사람이 더 붙는데, 한 두 사람이 아직 걷지 못하는 아기들을 어깨에 옆구리에 둘러매고 돌보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이 큰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본다.


겨우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이만한 인력이 배치되어 아이들을 돌보는 건 미국에서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닌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하려고 애쓰는 건,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그만큼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이들 하나 하나에게 최대한 관심을 쏟으면서도 한 사람에게 일이 너무 과중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이 곳을 알게 되어 드나들기 시작했을 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놀이방 교실에 투입되는 중/고등학생 보조돌보미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이미 동네 안에서 방과 후에, 주말에 아르바이트 삼아 이웃의 아이들을 돌보아 온 경력이 몇 년씩 된다. 이웃의 부모들로부터 신뢰를 쌓아 개인적으로 추천을 받고, 범죄경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후 자원활동가로 일하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십대 아이들이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걸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의 일부를 풀어주는 실마리는 뜻밖에도 학교 교과서에 있었다. 인근 중학교 교사인 미국인 친구에게서 몇 권 얻은 미국 교과서를 재미삼아 넘겨보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의 교과로 치면 '가정' 과목에 들어갈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의 무려 세 단원에 걸쳐 육아, 보육 관련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주양육자로서 부모의 책임과 역할, 그에 따른 고민과 내적/외적 갈등, 영/유아, 아동의 발달 단계별 특성, 안전지침, 위급 상황 발생시 대처법 등, 부모들을 위한 육아서에 나올법한 내용들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그 중 <아이 돌보기>라는 제목의 단원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부모들은 때때로 아이를 돌보는 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아이 돌보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신뢰할 만한 십대가 주변에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아이 돌보미로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 또, "떼쓰는 아이 다루기" 라는 소제목 밑에는 아이들이 왜 떼를 쓰며, 어떤 단계를 거쳐 이 행동을 잡아줄 수 있는지가 상세히 나와 있다. 그 부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이들이 떼 쓰는 행위는 일종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미 성숙한 문제 해결 방식을 배워 알고 있는 너희(십대 청소년)가 이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


아이 돌보는 일의 의미와 보람과 갈등을 느껴본 적도 배워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아이 돌보기는 '엄마만의 일', 엄마니까 당연히 잘 해야 하는, 아니 엄마가 되면 잘 하게 되어 있는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인식이 강할수록 아이 돌보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일처럼 여겨지기도 쉽다. 지금 우리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아이를 돌보는 일이 가치 있는 일로도 고된 일로도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갓 엄마가 된 여성들은 혼자 끙끙 앓는다. '초보' 엄마들이 숱하게 겪는 심리적 방황과 불안, 고된 육아로 인한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 대부분이 그런 부담과 자책으로부터 오지 않는가. 왜 나는 육아가 이렇게 힘들지? 이렇게 힘들어하는 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왜 우리 애는 이렇게 떼가 많지? 등등.


만일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육아의 가치와 고됨을 배우고 겪어본다면 그 이후 우리 사회와 다음 세대 엄마들의 경험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지금의 우리와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육아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면 후에 부모가 된 이들이 조금 더 높은 자존감을 갖고 아이를 돌보게 되고, 이들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자면 먼저 해결되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안다. 학교 교육에서 가정 수업 따위는 밀려난 지 오래인데 가정 교과 내용에 아이 돌보기 내용을 넣어봐야 무슨 소용일까. 육아-보육-교육으로 이어지는, '한 사람의 성장'과 관련된 사회적 인식, 국가적 제도 모두가 제자리걸음인 이상, 교과서에 그런 내용 몇 줄 집어 넣는다고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 십대 시절의 전부를 입시에 갖다 바치는 교육 현실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십대 후반이 되어도 자신을 돌볼 줄 몰랐고, 그렇게 자란 우리가 어느새 부모가 되어 다음 세대를 기르고 있다. 이렇게는 안 된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이 모든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해법은 결국 우리 모두가 '육아의 의미와 가치'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데 있다. 한 사람의 성장, 그것을 돕는 일이 육아이며, 그렇기에 세상 어떤 일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일이 육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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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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