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날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대"

얼마 전, 가까운 친구로부터 대뜸 이런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긴 연휴 탓에 한 달 가까이 못 본 터라 서로 새해 안부를 묻던 중이었다. 한 두 번의 문자메시지 교환 끝에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이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이어지는 문자메시지에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어느 엄마가 자식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충격이었다. 내가 '이모'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미국인 친구는 올해 55세. 서른 셋, 서른 넷의 미혼 자녀를 둔 중년의 여성이다. 내가 처음 받은 충격은 노년의 엄마가 중년의 딸에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는 데서 왔다. 왜냐하면 그건 곧, 이번 사건(?)이 있기 전까지 이 노년의 엄마와 중년의 딸은 서로의 사랑을 말로 표현하며 살아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내향적이고 소심하며 집안 환경 탓에 철이 일찍 든 맏딸. 그러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에 더 익숙한 사람이다.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거의 없고, 그런 걸 기대하지도 않았다. 나 역시 부모님께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노년의 엄마와 중년의 딸이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왔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나로서는, 노년의 엄마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또 그 말을 듣고 깊이 상처받은 중년의 딸을 보는 것도 모두 충격이었다. 아무리 감정표현에 적극적이고 익숙한 사람들이라지만, 어떻게 일흔이 넘은 엄마가 쉰이 넘은 딸에게 "난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무리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 한들, 또 그렇게까지 상처 받을 건 또 뭔가. 무슨 사연인지 궁금했다.


지난 연말에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부모님 댁에 가 머무는 내내 이모는 엄마와 다퉜다고 했다. 이모의 유별난 한국 사랑이 화근이었다. 이모는 최근 2, 3년간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 한국 대중가요를 듣고, 한국 음식을 먹는다. 나를 만나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모르니 한국인 친구를 사귀어 만나 간단한 문장이라도 배워 익히고 싶었던 것이다. 이모의 엄마는 처음부터 그걸 못마땅히 여겼다. 이번에 일이 벌어진 것도 그런 갈등이 쌓여 폭발한 것이었다. 냉장고에 넣어 둔 김치와 먹다 만 라면을 보고 이모의 엄마는 "어디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걸 갖고 와서는!"하고 불같이 화를 냈다. 화가 난 엄마가 냉장고 속 한국 음식을 꺼내 버리려다 라면이 담긴 그릇이 깨졌는데, 그걸 치우는 와중에도 이모와 엄마는 옥신각신 다퉜다고 했다. 그런 일들이 며칠 째 이어지는 와중에 나온 말이 "나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였던 것이다.


이모는 노년의 엄마가 '엄마'로서의 통제권을 점점 더 많이 잃어가면서 불안감, 상실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사춘기 딸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할 때 엄마가 느끼는 소외감 같은 걸 노년의 엄마가 다시금 느끼고 있는 것 같달까. 이모와 엄마는 대체로 살갑고 친한 모녀지간에 속한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3년동안 이모의 엄마는 알츠하이머로 병석에 누워 지내는 남편을 돌보느라 많이 지쳤고 이모는 같은 기간 동안 외국의 문화에 급속도로 매료되었다. 이모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연휴며 휴가때는 꼬박꼬박 부모님 댁에 넘어가 엄마를 도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의 엄마는 이모에게 뭔지 모를 배신감, 소외감 같은 걸 갖고 있는 느낌이라고 한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자식들을 자기 품 안에 두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나와의 대화 중에 이모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모의 엄마는 요즘도 꼭 집안 행사에 낼 음식 모두를 몇날 며칠 직접 요리해 내는 분이라고 한다. 남편이 몸져 누워 있는데도 남편 쪽 집안 행사에 혼자라도 가서 얼굴을 비춰야 하고, 자식들, 손주들 일에 노심초사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집안일이라면 모두 당신 손을 거쳐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그런 엄마의 전형. 그러다 보니 이모가 당신이 모르는 외국에 여행을 다니며 그 곳 문화를 즐기고 사는 모습이 못마땅하고, 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늘어간다는 데에 상실감과 불안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젊은 시절에도, 또 노년에도 가족만을, 남편만을 챙기며 살아 온 엄마로서는 어쩌면 박탈감마저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이모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엄마라면, 자식이 즐겁고 행복한 걸 보며 좋아하고 축복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살아 온 건, 내 잘못이 아니라 엄마의 선택이었던 거잖아."


이모는 엄마로서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건, 결국 그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자유롭게 자신의 행복을 찾으며 살게 놓아주어야 하고,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함께 기뻐해 주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아이를 내 소유물로 여겨서도 안 되고, 대리 만족을 위한 존재로 여겨서도 안 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노여워하거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좇는다고 해서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그러려면, 아이를 키울 때 엄마가 엄마 자신을 잘 지켜내고 있어야 한다. 모든 걸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내놓으며 살다보면 어느날 문득 엄마 자신의 인생은 없어지고 만다. 내가 결혼도 하기 전부터 가졌던 생각의 일부가 이모의 말과 겹쳐졌다. 나는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그건 아이를 세상에 내놓기 위한 과정인 거라고 생각해 왔다.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입양을 생각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모든 아이들은 세상에 나가 자신의 가능성과 재능을 펼치며 다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다. 그러니 아이들이 자라면 기꺼이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 평생 내 곁에 두겠다는 욕심도 미련도, 내가 그 아이들을 돌보며 '희생' 해왔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게만 된다면 꼭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어도 아이를 기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케이티의 엄마가 된 후, 그 생각은 조금 더 확장되고, 또한 깊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로부터 독립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보호나 치료, 재활을 구실로 사회로부터 격리되다시피 하는 경우도 많고, 사회적,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다보니 부모가 끝까지 책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픈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부분적으로나마 독립해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그 부모들도 아이들을 기꺼이, 마음 편히 세상에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 장애가 있어도 학업과 취업, 취미활동, 사교생활, 여행이 가능해야 하고, 다양한 경로로 필요한 도움을 받으며 경제적, 신체적, 정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의 사회생활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자주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종종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또 그 부모들은 평생 스스로를 옭아매며 살아가고 있다. 이 부모들도 죄책감이나 불안한 마음 없이 아이들을 잘 키워 세상으로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로서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는 이유는 결국 이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널리 공유되어야 한다.


이모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 온 그 날 밤, 잠자는 케이티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너에게 사랑한다 말하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나이가 얼마나 들어도, 너에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네가 세상에 나갈 때, 미련 없이 불안감 없이 보내주겠다고. 크고 넓은 날개로 세상을 품는 네가 되도록, 그 날개를 마련하는 일에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를 온전히 품을 수 있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겠다고. 그 첫발이 바로 이 글쓰기이며, 글을 쓰며 엄마는 '나'의 인생을 놓지 않고 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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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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