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결혼할 때 만인 앞에서 공표하였다.

 

우리는 아무리 싸워도 각방을 쓰지 않겠다고. 

이는 우리 부부가 결혼하기 전 급조(?)한 가정헌법 중 하나로 결혼 후에도 문구를 집에 걸어놓을 정도였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아내가 처가에서 돌아온 후 한 달도 안 되어 각방금지 조항을 어기게 되었다.

아내가 결혼 전 먼저 제시한 조항인데 스스로 어기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내는 내게 “둘째가 새벽에 깨니까 당신이 피곤할까봐 저쪽 방에 가서 잘께요”라는 말을 남기고 훌훌 떠나버렸다.

나를 위한다는 말이고 실제 갓 난 아기인 둘째 때문에 뒤척일 일이 없을테니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둘째가 집에 들어오고 잠자리에 미세한 변화가 처음부터 있었다.

아내와 둘째가 침대 아래, 나와 첫째가 침대 위에 자게 된 것이다.

한 방에서 자는 셈이지만 각방 취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와 침대를 치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침대생활이 익숙해진지라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또 한번은 밤늦게 잠자리에 들다가 좁은 방 침대 밑에는 아내와 둘째, 침대 위에는 첫째가 자는 것을 보고는

왠지 꽉 막혀있다는 느낌이 들어 다른 방에서 잠을 잤던 적도 있다.

나도 갑갑함을 느꼈겠지만 남편이 깰까봐 아내는 둘째 돌보기에 더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각방을 쓰다 보니 첫째에게 어려움이 많았다.

한참 분리불안을 느낄 다섯 살 뽀뇨는 동화책을 이고 침대에 올라와 책을 다 읽고 겨우 잠이 들었는데

요즘엔 자다가 꼭 울면서 깨거나 엄마를 찾는 횟수가 잦아졌다.

자다가 아무 이유 없이 큰 소리로 울면서 벽을 차다보니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게 되고

가끔은 매를 들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도 해보았다.

아내가 제안한 ‘각방’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도 해석되었다.

아내는 육아를 위해 저쪽 방을, 나는 내일 일을 위해 이쪽 방을 쓰는 의미,

즉 가정과 일의 분리라는 틀이다.

아내가 전주 처가에서 복귀한 이후 내 개인적으로 변화를 가져야 했다.

첫 번째는 혼자만의 저녁시간을 갖는 것이 어렵다는 점,

둘째로는 사회생활이 이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아내는 중요한 일이 있으면 어떤 일이든 당연히 다녀오라고 하는데

아이 둘을 집에서 보는 일이 예사 일이 아니고 도와주는 가족들이 옆에 없는 상황에서 나는 다른 것들을 줄여 나가야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직장인들이 가지게 되는 고민을 나또한 하게 된다.

가정과 일(사회생활), 둘 다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각 방’은 그런 점에서 아내는 ‘육아’에 집중하게 하고 나는 ‘육아’에 손을 놓게 만드는 핑계로 다가왔다.

새해 첫날, 일터의 송년회식때 마신 술로 인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급기야 문을 잠그고 잠을 자는 아빠가 미워서인지 뽀뇨는 문밖에서 한 시간 동안 울며 문을 두드렸다.

그 시간 동안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안자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아내는 무얼 하고 있나’, ‘뽀뇨는 또 왜 아빠를 찾고 우나’라는 생각에 뒤척이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새해가 되어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는 상황에 만난 인생선배가 몇 가지 이야기를 툭툭 던진다.

 

“인생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사냐. 쉽게 가라 쉽게”.

 

술에 취해 대리운전을 하고 오며 왠지 그동안의 불편함이 속 시원하게 한 번에 사라짐을 느끼고는

어젯밤 아내 곁에 누웠다.

“뽀뇨야, 오늘부터 아빠랑 엄마 방에서 자자”,

“자기,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네, 오늘 고민하던 일이 풀렸거든요”.

아내의 출산과 산후조리, 수유 등으로 인해 분리되었던 우리의 물리적 공간이 ‘각방’이라면

내 입에 여러모로 맴돌았던 그 이름 ‘아빠’가 이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집에 오니 첫째와 둘째가 기절해있었던 하루. 신기해서 찰칵 ^^>

육아전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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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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