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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 해를 마치는 날, 아이들과 안산 화랑유원지에 있는 세월호 합동 분향소에 다녀왔다.

1년동안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대견함이 큰 만큼

떠나간 아이들을 생각하는 일은 사무치고 가슴 저려온다.

 

오전에 친정 언니는 큰 조카가 전교 5등이란 기특한 성적으로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마쳤다는 소식을 카톡으로 전해왔다. 180센티가 다 되어가는 조카는 훤칠하고 늠름하게

자라고 있어 가족들에게 큰 기쁨과 기대가 되고 있다.

조카는 새해에 고등학교 2학년이 될 것이다. 조카를 볼때마다 어쩔수없이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떠오른다.

모두 부모와 가족들의 정성스런 손길로 그만큼 자라나서 기대에 찬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아이들 아닌가. 사랑하는 아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부모들을 생각하면

내 아이가, 내 조카가 잘 자라는 것도 미안하고 죄스럽다.

 

새벽에 살포지 눈발이 지나간 거리는 조금씩 찬바람이 강해지고 있었다.

며칠동안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고 있는 이룸이는 차 안이 답답하다고 힘들어 했다.

"이룸아... 몸이 힘들지? 미안해. 우린 지금 세월호에 탔다가 세상을 떠난 언니, 오빠들

보러 가는거야.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인데 그 언니 오빠들을 기억하고 찾아주는

사람이 많이 없대. 우리라도 찾아가서 인사하고 오자"

 

화랑유원지의 합동 분향소는 민망하리만큼 한산했다.

넓은 분향소 광장을 가득 메우던 추모 인파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경찰들만 천천히 주차장을 오가고 있었다.

 

분향소 문을 열자마다 다시 눈에 가득 차 오르는 희생자들의 영정..

어쩔수없이 나는 또 울었다.

세 아이의 손을 잡고 국화꽃을 들고 이번엔 영정사진 한장, 한장 모두

다 눈을 맞추어 가며 걸었다.

 

많은 사람들은 잊었지만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과

친지들과 이웃들은 여전히 잊지 않고 생일이 되었다고, 추석이라고,

크리스마스라고 찾아와서 선물이며 과자며 편지들을 놓아두고 있었다.

4월에 처음 분향했을때는 그냥 수많은 꽃들만 있던 재단에는

8개월간 차곡 차곡 쌓인 그리움들이 깨알같이 적어간 편지들로, 선물들로

꽃다발과 추억이 깃든 물건들로 가득했다.

 

백일사진을 놓아둔 엄마도 있었고, 아이를 불러가며 써 내려간 아빠의 편지에는

군데 군데 아마도 눈물자국일 얼룩으로 글씨가 번져있었다. 읽으면서 나도 울었다.

서너살 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아빠가 달리는 사진, 엄마보다 더 큰 아들과

사고 전 마지막으로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같이 찍은 사진, 하늘나라에 간 동생을

그리워하며 누나가 그려준 동생의 얼굴 그림, 조카를 그리워하는 이모의 편지와

친구의 영정사진을 들고 반 아이들이 모두 모여 함께 찍은 단체 사진까지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이 재단을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과 그 사진들을 보며, 그 글들을 읽으며 또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들고 있던 국화꽃은 특별히 '한윤지'씨와 그의 어린 아들, 남편의 영정 앞에

놓았다.

한국이름 '한윤지'였던 여성은 '판응옥타인'이란 이름을 가진 베트남 사람이었다.

어린 아들과 남편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가던 길에 세월호를 탔고

윤지씨는 주검으로, 어린 아들과 남편은 지금도 실종자로 남아있다.

딸과 손자, 사위를 잃은 윤지씨의  아빠와 여동생이 베트남에서 날아왔지만

그들에게 누구도 제대로된 정보와 도움을 베풀지 않았다는 기사를

'한겨레 신문'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을때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웠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한국 유가족이나 베트남 유가족이나

다를  수 없는데  그들이 받은 처우는 유가족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빈약하고 형편없는 것이었다.

아직 손자와 사위의 주검조차 찾지 못한채 억울하고 슬픈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 윤지씨의 가족을 생각하며 단원고의 아이들만큼

일반인 희생자들도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국화꽃을 올렸다.

 

"필규, 윤정, 이룸... 우리는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이잖아.

그때 이렇게 크고 멋진 배인줄 몰랐다고 우리는 막 흥분해서

소리 질렀던거 기억나지? 엄마가 타이타닉 만큼 큰 배라고 얘기했더니

필규 오빠가 '결과도 타이타닉같으면 절대 안되거든요'했던것도

기억나니? 그런데 그렇게 됬지. 타이타닉보다 더 끔찍하게...

그러니까 절대 잊으면 안되는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건지, 왜 아무도 구조를 못했는지, 어떻게 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지.. 생각하고, 지켜보고, 희생당한

사람들을 잊지 않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야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린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곁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온기가 더욱 고맙게 사무쳐왔다.

 

오늘밤 보신각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지난 일은 잊고 희망과 기대를 품고 새 해를 맞이하자고

다짐할지도 모른다. 어리석게 쥐고 있는 욕심이야 버리고 잊어야 하겠지만

시간이 흘러도 분노해야 하는 일엔 분노해야 하고, 슬퍼해야 하는 일엔

오래 슬퍼해야 한다.

 

화랑유원지를 다녀오며 나는 다시 스멀스멀 마음을 채우던

욕심을 내려 놓았다.

아침에 나간 가족이 저녁에 다시 모이는 것...

이 지독한 세상에서 그 이상의 행복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절절하게

깨닫고 있다.

지금 세 아이는 내 곁에 있고,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 야근을 한다는

남편만 직장에 있다. 밤이 되면 남편도 무사히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서로 애쓰며 잘 살았다고 격려하고 내년에도 아끼며 도우며 잘 살아가자고

다짐할 것이다.

 

해가 바뀌어도 슬픔은 이어질테지만  슬퍼하는 동안 더 강해지고

더 슬기로와 져야지... 마음먹어본다.

 

'베이비트리'라는 공간이 있어 1년 동안 내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나누었고 내 부족함과 서툼도 부끄럽지 않게 드러내며 위로받고

격려받을 수 있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고, 혹은 바다건너 멀리 있지만 변함없이

따스하고 깊은 글로 삶의 길을 함께 걸어주는 든든한 필진과

이 공간을 지켜주는 한겨레의 많은 분들과, 응원과 채찍으로

더 노력하게 하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내 아이가 소중한만큼 다른 아이도 안전하고 행복해야 한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일에 모두 마음을 모으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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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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