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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의 탄생과 동시에 내게는 '바느질'이라는 뜻밖의 과제가 주어졌다. 이곳에는 한국처럼 신축성 있는 면 재질의 바지가 흔치 않다. 폭이 거의 늘어나지 않는 일반 면바지를 아이 오른다리에 맞게 입히려면 제법 큰 사이즈로 사서 허리, 엉덩이 부분을 수선해야 하는데, 이곳은 옷 수선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비싼데다 수선 가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아기 때는 워낙 성장 속도가 빠르니 옷이 금방 작아지게 마련인데, 몇 개월 입지도 못할 옷을 사서 비싼 돈 들여 수선해 입히는 건 지금 우리 형편에 버거워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저주의 손(나는 긴장하거나 집중하면 손에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을 갖고 있다)을 가지고 손바느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고심 끝에 재봉틀을 장만했다.


처음에는 어떤 재봉틀을 사야 하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재봉질 관련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해 봤지만 그런 곳을 들여다볼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했다. 그래서 그냥 이름 있는 브랜드의 '아무거나' 중에서 가장 저렴한 것으로 샀다. 가격은 원화로 10만원이 채 안됐다. 나는 때때로 이곳을 'DIY(Do It Yourself)의 나라', '설명서의 나라'라고 부르는데, 재봉틀을 사고 그 사용법을 익히면서 또 한 번 그 생각을 했다. 재봉틀을 직접 본 적도 한번 없는 내가 지금까지 고장 한 번 안 내고 재봉틀을 잘 쓰고 있는 건 순전히 자세하고 쉬운 설명서, 그리고 각종 관련 서적 덕분이다. 특히 책을 보면 정말 기본적인 것부터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고 부록으로 도안도 여럿 들어 있어서 재봉질 입문에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치 나의 독학 재봉질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재봉틀 구입 후 첫 6개월 동안, 재봉질은 하나도 늘지 않고 욕만 잔뜩 늘었다. 용어도 낯설고, 천이나 부자재를 파는 가게가 멀리 있어 직접 천을 골라 살 기회가 없는 것도 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있는 재료(헌 옷)만 가지고 연습을 시작했다. 재봉질 초심자가 가장 처음 하게 되는 것이 '직선 박기'와 '곡선 박기' 연습인데, 그 두 기본 박음질을 익히는 데만도 여러 날이 들었다. 페달을 조금만 세게 밟으면 재봉틀이 너무 빨리 돌아 무서울 지경이었고, 조금만 덜 밟으면 박음선이 삐뚤빼뚤했다. 빨리 뭔갈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에 무턱대고 아무 천에나 마구 박다가 천을 찢어먹거나 바늘을 부러뜨렸다. 아이를 재워놓고 재봉틀을 돌리다 아이가 깨면 놀라 페달을 마구 밟아서 실을 엉키게 하거나 천이 오그라들게 만들기 일쑤였다. 초보자 주제에 '리폼'이란걸 해보겠다고 헌 옷을 요리조리 잘라 박음질을 하다 잘못했을 때 그걸 뜯어내는 일은 또 얼마나 힘이 들던지. 박는 건 드르륵, 30초만에 할 수 있어도 그걸 뜯는 건 그 열 배씩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내 입에서는 욕과 자기비하가 절로 튀어나왔다. "똑같은 실수를 또 했어!" "미치겠네" "짜증나"에서부터 "이런 멍청이!" "아 정말 넌 바보냐!" "니가 그렇지 뭐"에 이르는, 짜증과 욕과 자기비하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재봉질을 하면 할수록 자존감이 뚝뚝 떨어졌고, 내가 재봉질을 하는 날엔 그걸 지켜보는 남편이 더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렇게 6개월쯤 지나자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는 바지를 하나 둘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실뜯개를 이용해 솔기를 뜯는 요령이 생기자 작아진 바지를 원형 그대로 조각 조각 해체할 수 있었는데, 그걸 새 천에 크게 본떠 다시 합쳐 박는 방식으로 하면 새 바지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본을 뜰 때 허리는 약간만 늘리고, 오른다리 통은 크게 늘려 그렸다. 하지만 나의 거침없는 욕과 자기비하는 멈추지 않았다. 본뜬 천을 합쳐 박을 때마다 천의 앞 뒤, 좌우가 헷갈려 잘못 붙여버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수포자'(수학포기자)였던 나는 특히 도형 관련 문제를 정말 어려워 했는데, 평면 도안을 입체로 만들어내는 일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그럴 땐 결국 남편을 불러다 도움을 청해야 했다. 뒤집었을 때 모양이 이렇게 나오려면 지금 어떤 상태여야 하며, 여길 이렇게 올리면 저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남편에게 물었다. 그러면 말로 해봐야 그저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을 나를 위해 남편이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어렵고 짜증나고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실은 절박했다. 그런 절박함이 가끔은 너무 무거워졌지만,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재봉틀을 만졌다. 혼자, 때로는 둘이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며 조금씩 요령과 실력이 늘어갔다. 여기저기서 얻은 짜투리 천의 재질에 맞춰서 바늘과 바느질 기법, 실의 장력과 땀길이를 바꿔 보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는 훌쩍 자랐고, 나의 짜증과 욕과 자기비하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수선할 필요 없는 통 넓은 반바지를 입힐 수 있는 여름이 오자,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해 조금 더 완성도 있고 실용성 있는 바지를 만들어내고 싶어졌다. 본격적인 독학을 위해 도서관에서 재봉질 기초 책을 여러 권 빌려 탐독했다. 이웃 할머니로부터 옛날에 할머니가 보던 책도 몇 권 얻었다. 책에서 하라는 대로 아이 허리와 다리 각 부분의 치수를 재어 도안을 그려냈다. 그렇게 '정석'대로 해도 실수 연발, 사고 다발이어서 몇 번이나 뜯고, 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래도 그렇게 두어 달 하니 정말로 아이 몸에 꼭 맞는 바지가 만들어졌다.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가 자주 생겼지만, 실수에 조금은 너그러워질 만큼 재봉질 자체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다. 처음엔 '과제'로만 여겨졌던, 그래서 부담스럽기까지 했던 재봉질이 어느새 나의 '취미'로 번듯하게 자리잡았다.


재봉질이 취미가 되면서 나는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서늘해진 가을 밤, 이불을 덮지 않으려는 아이를 위해 남편의 후드 티셔츠를 뜯어 수면 조끼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출산 후 절대 입지 못하게 된 내 청바지를 잘라 아이 힙합바지(?!)를 만들고, 늘어진 내 니트의 목 부분을 잘라 아이용 넥워머를 만들었다. 이웃 할머니가 던져 준, 헤지고 늘어진 옷을 아이 잠옷 바지로 만들고, 친구가 준 홈인테리어용 원단으로는 가방을 만들었다. 밑단이 뜯어진 남편 바지를 접어 올려 다시 박음질 하고, 구멍난 부분에 같은 색, 비슷한 재질의 짜투리 천을 덧대 말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동안 꼭 만들어보고 싶었던, 그러나 재주와 실력이 모자라 엄두도 못 내고 있던 비옷과 후드 티셔츠도 만들었다. 처음엔 바지 하나 완성하는 데 일주일 꼬박 걸리던 것이, 이제 웬만한 건 하루 이틀 날 잡아 하면 뚝딱이다. 마음에 드는 도안을 찾으러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도 재미지고, 내가 만든 옷을 입고 빙글빙글 돌며 좋아해주는 아이를 보는 것도 기쁘다. 바짓단 하나 말끔히 만들어 준 걸로 "내가 마누라 하나는 잘 골랐다니까!" 하고 오버해주는 남편에게 의기양양, 브이(V)자 날려보는 것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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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헌 옷을 리폼해 만든 것들. 가장 왼쪽이 내 청바지, 그 다음이 이웃 할머니의 바지, 그 다음은 남편 니트, 맨 마지막은 남편의 후드티를 리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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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만들어 보고 싶었던 비옷. 일년 전에 기저귀 커버를 만들겠다며 온라인 매장에서 산 방수천을 못 쓰고 있다가 드디어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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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후드 티셔츠. 허리단에 들어간 고무줄은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여 넣었다. 때때로 남편이 큰 도움이 된다> 


첫 1년간은 재봉질이 쉽게 늘지 않아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그건 육아 스트레스와 겹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재워 놓고 페달을 밟으며 드륵 드륵 드르륵 하다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는 때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낡고 헤진 옷, 작아서 못 입는 옷을 다시 쓰게 되는데서 오는 뿌듯함과 보람이 컸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빨리, 대량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대에 내 아이만을 위한 옷을 내 손으로 천천히 지어 입히며 참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산업화 시대, 빨간 꽃 노란 꽃 피고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도 바깥 공기 한 번 마시지 못한 채 미싱을 돌려야 했던 그 숱한 시다 언니들, 미싱사 봉제사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착취당해야 했던, 그래서 끝내 '나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스러져간 태일이는, 정말로 사라졌을까? 우리가 쉽게 사는 싸구려 옷 한 장에 세계 곳곳,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 당하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 눈물이 스며 있는데 우리는 그저 입고 버리고 또 사는 데에만 길들여져 있다. 내 재봉질 따위로 그런 세상에 제동을 걸 수야 없겠지만, 내가 직접 재봉질을 하며 누군가의 삶을, 그 노동의 가치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재봉질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는 재봉틀로 옷을 만들려면 '오버록'이라는, 값이 좀 나가고 복잡한 형태로 된 별도의 재봉틀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실제로 내가 해 보니 그게 있으면 좋긴 해도 초보자에게 꼭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나중에 실력이 좀 늘고 좀 더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 오래 입을 옷을 만들고 싶을 때 장만해도 늦지 않다. 그러니 혹 재봉질에 관심은 있으나 손재주가 없어서, 재봉틀을 한 번 본 적도 없어서 망설여지는 분들이 있다면 꼭 도전해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 보는 재봉틀도 1년 반 꾸준히 만져보면 요만큼은 할 수 있다. 단, 아이가 너무 어리면 안전 문제도 있고 하니, 최소한 대여섯 살은 되어 엄마가 재봉질을 하는 동안에도 혼자 잘 놀 수 있을 때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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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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