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야는 변기통에, 쉬야는 변기통에.”

 아이는 방 한 쪽 구석에 꼼짝 않고 서서는 웅얼웅얼 반복했다. 고개는 조금 떨군 채,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엄마는 모르는 체를 했다. 책꽂이 아래까지 스며든 소변을 닦아내기 위해 한 권, 한 권 책을 들어내는 엄마의 분노는 이미 목까지 차올랐다해가 중천에 솟은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거늘 벌써 여섯 번째 팬티를 적셔냈다. 처음 한두 번 괜찮아, 쉬야는 변기통에 하자.” 타이르던 목소리가 이제는 쉬야는 변기통에 하라고오!” 고함이 되었다. 보다 못한 남편이 그냥 기저귀를 채우자고 했지만 그럴 수야 없다. 이 여름을 넘기고 찬바람이 불면 가을, 겨울에 어찌 기저귀를 떼란 말인가.

 기저귀를 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건가도 여겨보지만 벌써 30개월이다. 서두르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일찍부터 들어왔기에 여유를 부렸더니 이미 주변에서는 24개월 즈음해 밤 기저귀까지 뗀 아이들이 적지 않다.

 어린이집에서도 슬슬 기저귀를 떼는 편이 좋겠다며 방수요며 팬티 등 준비물을 일러주기에 아, 때가 되었구나 싶어 아이리스 변기가 하나, 이동시 사용할, 엉덩이가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아주 작은 꼬마 변기가 하나, 소변기가 둘, 그리고 그냥 팬티면 충분하다 했지만 행여나 하여 방수팬티도 2장 마련을 하였다.

 처음 일주일의 실수야 웃어 넘겼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엄마의 인내심을 보여주리라 하였던 것이, 십 일이 지나고 보름이 넘자 한계가 다다랐으니.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몇 번 안 하면 쉽게도 성공을 한다던데 아들은 어찌하여 소변기를 갖다 대기만 하면 거부하며 몸서리를 치는 건지. 성공은 고사하고 소변기 자체를 거부하니 부아가 치밀 노릇이다.

 외출 때 잠시 사용을 할까 하였던 방수 팬티는 방수가 되는 것인지, 아니 되는 것인지 입힌들 소변이 다리 사이로 타고 내려 안심을 할 수가 없다. 허니 외출 전에는 꼭 소변을 보고 나가자며 타이르기를 수차례거늘 고집쟁이 아들은 결코 순순히 소변을 보는 법이 없다.

 결국, 가족들과의 외식 자리에서 보란 듯이 두어 번 실수를 하고. 다른 손님들이 눈치를 채고 불쾌한 티라도 낼까 조바심이 난 엄마는 서둘러 분노의 걸레질을 한 후 거칠게 아들의 손을 잡아끌어 화장실로 갔다.

 예정된 수순으로, 분노 조절에 실패한 에미는 이게 뭐가 힘드냐고, 변기에 소변을 누는 게 뭐라고 이걸 못하냐며 공중 화장실에서 엉덩이를 때리고 말았다. 참았던 것들이 와르르 터져나오자 이젠 아이의 기분 따위 나 몰라라, 그때껏 쌓인 분을 토로하기 시작하는데.

 너는 뭐 하나 빠른 게 없다고, 걷는 것도 느리고, 말하는 것도 느리고, 밥도 안 먹으면서 이런 것도 못 해 에미를 이렇게 속상하게 만드냐며 지금 제 기분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퍼부어대고 말았다.

 정말이지, 쉬운 게 하나 없었다.

 

2015-03-26 15;20;28.jpg

 

 “사우디아라비아 글자를 배워 봐.”

 그렇게 말했다. 나는 친구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더니 이내 정색한 목소리로 덧붙이길,

“ "우리한텐 너무 당연한 게 걔한텐 얼마나 힘이 들겠냐. 나는 우리 아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걜 이해하기 위해서 사우디아라비아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어.”

 익숙한 영어나 중국어, 일어가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글자-그러니까 아랍 문자를 배우기 시작했더니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고 이게 그림인가 글씬가 혼란스럽고,  전혀 아는 바 없으니 맺고 끊는 것도 멋대로라 따라 그리는 것조차 쉽지가 않더라. 그 글자를 틀리지 않게 따라 그리는 동안의 막막한 시간, 그제야 조금씩 제 아이가 마주하고 있을, 어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의 당연하지 않음을, 그 막막함을 알겠더라.

 

 그러하구나. 이제 이 세상에 던져진지 3, 혼자 잠이 들고 깨는 것조차 힘겨운 아이다. 한때 잠이 들었다 제 팔놀림에 놀라 잠을 깼던, 한밤 떠진 눈에 보이는 까만 어둠에 눈물부터 쏟고 마는, 세상이 막막하고 낯설어 무엇 하나 당연하게 이해되는 것이 없는 어린 것이 아닌가.

 겨우 엄마라는 두 음절 단어 하나를 내뱉기 위해 12개월 동안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으며 온 힘을 다 썼던 아이인데. 나는 그 아이가 배워나가는 것들의 어려움을 조금도 알아주려하지 았았구나.

 

 나는 아이가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글자를 떠올렸다. 배워본 적도 없고, 배우려 한 적도 없지만 그 나라 국기에 그려져 있던, 그림처럼 예쁜 글자. 그 구불구불한 곡선을 떠올리며 목까지 차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잠재웠다.

, 지금 우리아이는 그 곡선을 보고 또 보며 똑같이 따라 그리려 애를 쓰는 중이구나

 

 팬티를 입히고 벗겨도 걱정 없던 여름이 지나 찬바람이 나고 슬슬 감기 걱정이 드는 계절까지도 아이는 되는 듯 안 되는 듯 쉬야와 응가 가리기의 실패와 성공을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해를 넘겨 이제는 되었구나, 안도를 하였다. 아직 밤기저귀는 떼지 못했지만 깨어있을 땐 실수하는 법이 없으니 이게 어딘가, 시간이 흐르면 이리 다 되는 것을 내 조급하게도 아이를 잡았구나 반성을 하는 이즈음.

한숨부터 난다.

 밤 기저귀도 떼어보겠노라, 도전을 하려는 이 3월,  실수가 다시 시작되었다. 금방 쉬야를 하였거늘 돌아서서 또 하고 또 하고. 쉬야를 하고 젖은 팬티를 입은 채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잦으니, 머릿속으로 또 사우디아라비아 글자를 그릴 밖에 도리없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하여 찾은 병원에서는 검사결과 아무 이상이 없는 걸 보니 심리적 문제일 것이라 추측을 하시고, 아닌 게 아니라 새로운 선생님과 바뀐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아 그러하구나 이해도 하려고는 하지만.

 36개월, 3세도 넘었거늘 아직도 낮 대소변 가리기조차 아니 되니 사우디아라비아 글자를 그리다가도 고개가 흔들린다.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구나, 이해를.

 너는 변기에 쉬야를 하는 것이 그토록 힘이 드는 것이냐.

 

 아, 4월이 오면, 시간이 지나면 다 될 것을 내 또 성급히 애를 잡았구나 후회를 하게 될 것인가.

하루에도 백 번씩 사우디아라비아 글자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마음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쏟고, 가라앉혔다 쏟아내고, 화를 내고 후회를 하고 화를 내고 후회를 하고.

 

 너에게, 이 세상은 여전히 엄마가 느끼는 사우디아라비아 글자처럼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게냐, 그래도 그 나라 국기 말이다, 진한 초록 바탕에 그림처럼 하얗게 씐 글씨는 참 보기 좋지 않더냐? 세상의 낯설고 막막함을 헤쳐 나가다 보면 어느 때고 그림처럼 보기 좋은 아름다운 한 때를 마주할 수도 있을 테니 힘을 내라.

 그러니 힘을 내라는 엄마의 말은 말이다, 웬만하면 기저귀를 좀 떼어보자 그런 말이닷!

 

 그래, 네 덕에 세상 아름다운 한 때를 문득문득 마주하기도 하는 이 엄마도 네 막막함을 조금은 이해해보도록 또 노력을 하마, 곧 화를 낼 테지만 그때는 네가 또 다정하게 속삭이겠지.

 “엄마, 화내지 마세요.”

 그러고 보면 엄마에게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한때인가 보다. 우힙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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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나이 마흔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들 한 마디 할 동안 열 마디 한다며 타박 받을만큼 급하고 남 이야기 들을 줄 모르는 성격이었거늘, 걷고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늦된 아이를 만나고 변해갑니다. 이제야 겨우 기다리고,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람에게 처음 다가온 특별함,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의 이야기가 따뜻함으로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이메일 : toyo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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