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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편안한 친구의 존재가 그리워질 때면

아놀드 로벨의 <개구리와 두꺼비> 동화를 다시 꺼내본다.

친구 사이인 개구리와 두꺼비가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을 함께 보내며

소박하지만 진한 우정을 나누는, 몇 십 년은 묵은 오래된 이 걸작 동화 시리즈를

큰아이가 저학년이었을 때 밤마다 함께 읽으며 웃고 감동받았던 추억이 있다.

 

짧지만 완성도가 높은 이 책의 에피소드들 중 한 편이 

큰아이가 2학년 때 다니던 일본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더 반가웠다.

편지를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 날이면 날마다 현관문 앞에서 편지가 오길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두꺼비를 보던 친구 개구리가, 언제 올 지 모르는 편지를

현관에 나란히 앉아 함께 하염없이 기다려준다.

그러다 문득, 개구리는 좋은 생각을 하나 해낸다!

친구 몰래 자기가 편지를 써서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아직 한번도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는 두꺼비가 처음으로 자기 앞으로 도착한

편지를 받아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상상하며.

편지를 다 쓰고 부친 뒤, 다시 친구에게로 돌아와 현관 앞에 나란히 앉아 기다린다.

자기가 편지를 보낸 것은 비밀로 한 채 혼자 몰래 웃으며.

 

큰아이와 나는 친구 이야기만 나오면 두고두고 이 그림책을 떠올리며 웃는다.

초등 4학년이 되면서 친구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더 큰 의미로 와 닿게 되었다.

3학년 때 아주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이사와 함께 전학을 가 더 이상 못 만나게 된

적이 있는데, 무척 아쉬워하는 딸아이에게 주소교환을 해서

편지를 주고받으면 어떠냐고 제안해 보았다.

 

친구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나온 날, 새 주소를 서로 주고 받은 게 작년 가을 쯤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둘은 학기 중에는 한달에 한 번 정도 편지를 쓰고

이번 방학에는 1,2주에 한 번 정도로  자주 주고받고 있다.

 

 

DSCN1940.JPG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과 캐릭터의 일본 우표들.

  사진 속의 우표는 아이들이 편지에 붙이기 쉽도록 스티커로 만들어져 있다>

 

 

바쁘게 학교생활을 하거나 그날이 그날같은 일상을 보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멀리있는 그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우체통에서 발견하는 날이면,

무슨 대단한 일급비밀 서류라도 손에 넣은 양

아이는 얼른 제 방으로 들고 가서 열심히 읽고 또 읽는다.

은근슬쩍 나도 편지 내용을 들여다보면,

 

"너도 4-2반이라구?? 나도 그런데! 우린 통하는게 너무 많다 그치?"

"어떡해.. 담임 선생님이 할머니셔.. 너무하지?ㅋㅋ"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들 주변을 분홍색 하트와 별로 온통 장식하고

"너와 나는 절친"  "언제나 영원히"

같은 문구들이 편지지 위를 현란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얼마전에는 절친을 증명하는 카드까지 만들어서 보내왔던데

보자마자 나는 푸하하 웃고 말았다.

아.. 나도 저만했을 때 저랬었지 ..

이쁜 편지지를 사다모으고 엄마따라 우체국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우표가 있으면

한 장씩 사두었다가 전학간 친구에게서 편지가 오면, 또 얼른 답장을 쓴다.

우표를 붙이고 집에서 가까운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나면

동화 속 개구리가 그런 것처럼

며칠 후면 받아보고 기뻐할 친구를 떠올리며 한동안 흐뭇 모드^^

 

큰아이가 요즘같은 시대에도 손편지를 쓰고 즐기는 데는

아마 핸드폰을 가지고있지 않아 그런지도 모른다.

전학간 아이 친구도 물론 핸드폰이 없는데, 일본 초등학생들은 아직 자신만의

핸드폰을 가진 아이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큰아이와 같은 4학년 정도까지의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면

거의 엄마와 집, 두 세 군데 전화번호만 연결되는 심플한 기능인 것이 대부분이다.

 

인터넷이나 문자메세지도 안 되고 버튼 두 개 정도가 달린 어린이용 핸드폰.

우리집 아이처럼 이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들도 많고

아마 고학년들 중에는 하나둘 씩 핸드폰을 가진 아이들이 점점 늘게 되는데

중학교에 가면 대부분 스마트폰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

일본에는 아직 어른들 중에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우리 부부도 스마트폰 전 단계의 핸드폰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필요에 의해서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사 주는 가정도 제법 있는 것같지만

전화통화 정도의 최소한의 기능이나

거실에서만 쓰고 자기 방에 혼자 가져가서 쓰지 않게 하는 등

사용에 제한을 두는 가정이 많은 분위기다.

아직, 큰아이 주변 친구들은 서로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놀고 싶을 때는 친구 집으로 직접 전화를 하거나

멀리있는 친구에게 소식을 전하고 가까운 친구라도

새해인사나 방학 중에는 편지, 엽서로 써서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어른들 사이에도 아직 손편지를 쓰는 문화가 남아있어 그런 것 같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느라

잔뜩 진지한 표정을 한 열한살 딸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 우정이란 것에 대해 한 수 배우는 기분이 든다.

아놀드 로벨의 <개구리와 두꺼비>동화 속 두 친구는

요즘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순수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개구리가 정성껏 쓴 편지를 하필이면 달팽이에게 배달을 부탁하는 바람에

3일이나 걸려 겨우 두꺼비에게 도착했지만, 그 시간만큼

그들의 관계는 더욱 따뜻하고 깊어졌다.

 

보내고 싶은 문자메세지는 물론 화려한 사진에 영상까지

실시간으로 보내는 시대를 살고 있고 그 덕에 평생 만나보기 힘든 사람들과도

쉽게 아는 사이가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도 어른들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보다

진정한 친구를 더 많이 얻게 되었을까?

 

지난 1년동안 딸아이의 손편지 우정을 지켜보며

책을 읽고 형식적으로 감상문을 남기는 것보다

오랫동안 책의 여운을 마음 속 어딘가에 담아두었다가 실제 생활속에서 펼쳐보는,

이런게 진정한 독후활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이 지나면 딸아이도 편지쓰기를 귀찮아하고

스마트폰에 손가락으로 클릭하며 친구가 보낸 문자를 읽고 답글을 보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더욱 딸아이가 자기 책상 서랍 한 켠에

곱게 모아둔 편지지들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나도 얼른 친구에게 편지 한장 써 보고 싶다.

딸아이가 아끼는 이쁜 편지지 몇 장 슬쩍해서

사춘기 아이들과 고군분투하고 있을 내 친구에게

각종 고지서와 광고성 우편물 더미속에서

손편지를 발견하는 기쁨을 오랫만에 선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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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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