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jpg

 

지난 목요일 오후 6시 30분, 인천항에서 제주까지 가는 배에 올랐다.

'강정 책마을 십만대권 프로젝트'라는 행사에 참가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제주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강정마을은 오랫동안 수많은 활동가들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해군기지가 지어지고 있는 구럼비 바위를 지키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곳이다.

 

분열과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강정마을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뜻 깊은 행사를 마련했다.

강정을 책으로 가득한 마을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전국에서 모인 십만권의 책 중 1차로 3만권의 책을 배에다 싣고

수백명의 시민들이 함께 잔치를 벌여가며 제주까지 열 네시간의 항해를 하는 행사 소식을

<한겨레>에서 보자마자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정말 근사한 여행이 될 것 같았다.

2년 전 여름,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가족들과 처음 찾은 제주에서

바로 강정 마을 옆을 지나면서도 한창 힘겨운 투쟁이 벌어지고 있던 그곳을 들리지 못했다.

 

늘 마음 한 구석 빚을 진 것처럼 미안한 감정이 있었는데

시민들이 기증한 책을 가지고 강정 마을을 찾을 수 있다니

정말 뜻 깊은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마침 남편도 그 기간동안 지방 출장이 있어 덜 미안한 마음으로 우리끼리 다녀올 수 있었다.

 

세 아이 모두 이 여행 계획에 환호를 보냈다.

제주도에 다시 간다는 사실,

그것도 배를 타고 오래 오래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흥분했다.

 

강정마을이나 해군기지같은 이야기는 잘 몰랐지만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마을을 평화로운 책 마을로 만드는 행사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좋아했다.

아이들과 함께 김중미 선생님이 쓴 '너영 나영 구럼비에서 놀자'라는 책을

읽으며 강정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발은 10월 16일 목요일이었다. 

남편 없이 네살, 일곱살, 열 한살 세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와 짐가방 네개를 챙겨가며

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온다는 말을 들은 이웃들은 모두 너무 힘들지 않겠냐며 염려를 했다.

확실히 쉬운 일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 가고 싶었다. 힘들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은 시작부터 고난이었다

우선 집에서 인천항까지 가는 길이 아득했다. 차 타고 대야미역까지 가서 전철을 타고

금정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 후 구로에서 다시 인천행으로 갈아타면서 총 서른개의

역을 지나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지치게 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인천항에서 강정마을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니 힘들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다 반갑고 고마왔다. 존경하는 문규현 신부님도 뵙고, 김두식 교수님도 만나고

김선우 시인과 그 밖에 강정을 위해 애쓰는 많은 분들을 뵙는 기쁨도 컷다.

 

 강정 2.jpg

 

밤에는 갑판 위에서 평화의 뱃길을 여는 선상 문화제가 열렸다.

찬바람이 부는 추운 날이었지만 사람들은 두꺼운 겨울옷에 담요까지 둘러쓰고 행사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아이들이 어려 공연 전체에 다 참가하진 못했지만 맨발의 디바 '이은미'의 공연은

정말 가슴을 뛰게 했고, 밤 하늘을 수 놓은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아이들과 담요를 쓰고 함께

지켜본 일은 오래 오래 추억할 만큰 근사했다.

 

 강정 3.jpg

 

열 네시간 동안 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해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강정은

참가자 숫자보다 훨씬 많은 전경이 곳곳을 에워싸고 있는 살벌한 풍경이 우리를 맞았다.

 

강정을 책 마을로 만들기 위해 가족끼리 동료끼리 참여한 우리들을

정권은 그저 위험한 시위세력으로 여기는 듯 했다.

완전 무장한 전경들이 굳은 얼굴로 지키는 길을 막내가 탄 유모차를 밀고 지나면서

그들에 대한 안스러움이 일었다. 전경이 우리의 적일리 없다. 다만 명령을 지켜야만 하는 그들도

집에 돌아가면  모두 누구의 부모이자 자식들일 것이었다.

 

평화로운 모임조차 두려워하는 세력은 다른 곳에 있다. 이젠 '평화'라는 단어도 불온한 뜻으로 읽히게 된 불행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실감을 절절하게 했다.

 

5백년동안 한 가족처럼 서로를 돌보며 살아온 강정이란 마을은 지금 해군기지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가족간에도 서로 원수가 되어 왕래를 하지 않는 가슴아픈 곳이 되어 버렸다.

찬성파는 찬성파가 운영하는 가게로 가고 반대파는 역시 반대파가 주인인 가게로 물건을 사러간다.

학교에서도 반대파 아이들과 찬성파 아이들간의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충분한 소통과 충분한 설명, 충분한 교감이 이루어지지 못한 국책사업은 강압적인 힘으로 공동체를

누르고 공권력의 힘 뒤에 숨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그 일이 진행되는 과정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국민들은 국가를 신뢰할 수 있을까.

구럼비에선 내내 공사장 소음소리가 요란했고, 강정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강정.jpg

 

고단한 일정이었고 분위기는 살벌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명랑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인 멧부리에서 세 아이는 신이나서 바위 위를 뛰어 다녔다.

앞 쪽에선 여전히 막힌 철책 안에서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중이지만

고개만 돌리면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강정의 자연환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왔다.

장시간의 배 여행, 다시 버스, 그리고 마을의 이곳저곳을 계속 걸어다녀야 하는 고단한 일정이었지만 힘들다고 투정하다가도 바닷가에서 잠깐 노는 것으로 다시 기운이 나고, 다리 아프다며 칭얼거리다가도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 준 맛난 점심 먹고 다시 즐거워 지는 아이들은 놀라운 탄력성으로 나를 감동하게 했다.

 

어른들의 정치놀음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마을이 파헤쳐 지는 것이 가슴 아프고, 궁금했던 구럼비 바위 위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아이들은 내내 씩씩하게 여행을 즐겼다. 가슴이 뻐근하도록 고마왔다.

 

    강정 4.jpg

 

마을 여기저기에 놓인 서가에 책도 꽂고 평화센터 앞에서 마을 주민이 파는

강정마을 기념 목걸이도 사서 목에 걸었다. 간세말과 제돌이가 목걸이가 되어

아이들 목에 달랑거렸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평화책방과 까페에서 맛난 차도 대접 받고 마을 곳곳에서 자라는

한라봉과 귤 나무도 보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다시 돌아오는 배를 타기 위해 짧은 시간 머무르고 오후 네시 넘어 항구로 출발해야 했다.

이 담에 또 다시 강정마을을 찾았을때는 마을 곳곳에 아름다운 책방이 서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 되어 있기를 빌며 강정을 떠났다.

 

     강정 5.jpg

    

다시 배를 타고 인천까지 열 네시간의 장정에 올랐다.

종일 많이 걷고 힘들었던 아이들은 작은 침대위에 곯아떨어졌다.

어린 아이들에겐 너무 힘들었던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다음에 또 갈거라며 아이들은 좋다고 했다.

제 몸이 얼마나 고단한지도 잘 모르면서 큰 배를 타고 먼 곳에 가서 새로운 풍경에 마음을 뺏기고

처음 겪는 일을 특별하게 새기며 아이들은 성큼 커서 집으로 돌아왔다.

목요일 저녁에 떠나 토요일 아침에 연안부두에서 우리를 데리러 온 남편 얼굴을 보니

마치 외국이라도 다녀온것처럼 울컥 눈물이 났다. 사실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이다.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주고 출장지에서 걱정해주며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우리를 데리러 와준

남편에게도 정말 고마왔다.

 

배만 스믈 여덟시간을 타며 배 안에서만 두 밤을 자고 다녀온 제주 여행은 두고 두고

나눌 수 있는 풍성한 얘깃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그 뜻을 다 모르겠지만

의미있는 행사에 기꺼이 참여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먼 길을 떠났던 오늘의 여행이

이 다음엔 귀한 추억이 되어 아이들 삶의 갈피 갈피를 이끌어 주리라 믿어본다.

 

좁은 침대위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자느라 몸도 제대로 펼 수 없던 탓에

지금도 여전히 몸 여기저기가 쑤시지만 아이들도 나도 크게 탈나지 않고 잘 돌아왔다.

그래도 다음에 제주 갈땐...  비행기 타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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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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