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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년 만에 첫 아들을 낳았을때 참 야무진 꿈을 많이도 꾸었었다.

아이가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하면 남편이 공놀이를 해 주겠지..

대여섯살이 되면 아들과 아빠과 캐치볼을 주고 받는 훈훈한 장면도 볼 수 있을꺼야.

아들과 함께 등산도 가고, 아들과 함께 낚시도 가고, 아들과 함께 농구도 하고

캠핑도 가고, 그리고....

 

야무진 꿈이 깨지게 된건 아주 금방이었다.

오랜 총각시절을 보내다 가정을 이룬 남편은 집을 너무나 사랑했다.

주말이면 집에서만 뒹굴었다.

내가 본처인줄 알고 결혼했더니 텔레비젼 리모콘이 본처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찌나 황당했던지..

주말이면 리모콘을 끼고 비스듬히 누워서 애는 정말 '눈'으로만

보는 사람.... 그게 남편이었다.

심심하자고, 놀아달라고, 나가자고, 졸라대는 아이가 몸을 올라타도

남편은 끄떡없이 코만 골았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교내 육상선수를 했고, 중학교땐 배구부에 대학시절엔

등산과 암벽타기에 몰두하다가 직장 다닐땐 마라톤 동호회에 들어

풀코스까지 완주한 '운동권'인 마누라였다.

그러나 강릉이 고향인 남편은 설악산 대청봉도 올라가보지 않은

(남편 왈, 옥상에 올라가면 다 보이는데 거길 왜 힘들게 올라가야 하냔다.ㅠㅠ)

완전 '비 운동권'이었다.

취미라면 인터넷 서핑, 그리고 자동차 손 보는 것 정도랄까.

출근시간이 빨라 늘 잠이 부족한 남편은 주말만큼은 밀린 잠을 자고 느긋하게

티비를 보며 쉬고 싶어했다.

덕분에 힘 넘치는 아들을 상대하고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공을 차 주는 일은

내 몫이었다.

 

그래, 뭐, 그것도 할만했다.

그러나 첫째가 다섯살되던 봄에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남편은 전국 출장을 다니고 주말에만 집에 들어왔다.

핏덩이를 돌봐야 하는 나는 큰 아이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일찍 한글을 깨치게 해서 책만 손에 들려 주었다. 다행히 아들은 책을 좋아했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아들은 주로 책을 읽거나 동네 놀이터에서

놀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운동엔 별 관심이 없었다.우르르 몰려다니며

공을 차는 것은 좋아했지만 딱지치기나 만화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던 아들이 언제부터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머리가 좀 크면서부터 MBA 모자가 멋져 보였던 것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야구도 안 하는 녀석이 야구모자를 탐내기 시작하더니 미국 프로야구 팀 이름들을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가끔 멋들어진 야구 모자를 사 주는 것으로 아들의

선망을 채워주곤 했다.

 

그랬던 아들이 열 세살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매일 방과후에 학교에 남아 후배들과 야구를 하며 놀다 오곤 하더니

야구 중계를 보여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 야구박사로 통하는 후배가 있는데 그애랑

수다를 떨면서 제법 많은 야구 지식을 쌓은 모양이었다.

그 애 덕분에 학교에선 야구 붐이 일어 수업만 끝나면 뒷동산에 모여 야구를

한다고 했다.

그 무렵 동네에 야구 클럽이 생겼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를 둔 학부모들이 한명 두명 모여 만든 야구단이었다.

토요일 오전에 동네 학교 운동장에 모여 야구도 배우고 경기도 하는 모임에

한 번 들어보는게 어떠냐고 아들에게 슬쩍 권해 보았다.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들은 주말이면 오전 10시까지 늦잠을 자는게 큰 낙이었다.

어지간한 걸로는 그 늦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인것을 알기에

오전 9시부터 하는 야구 클럽을 설마 덜컥 한다고 할까... 싶었던 것이다.

처음엔 별로 탐탁해하지 않던 아들은 한번 다녀오더니 야구단에 들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대환영이었다.

주말이면 늦잠자던 아이가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땀 흘리며 운동을 하고

온다니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아들은 정말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야구를 하러 갔다.

처음엔 차로 데려다 주었지만 곧 자전거를 타고 저 혼자 다니게 되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대충 밥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야구를 하러 언덕길을 내려가는

아들의 모습은 내겐 정말 뿌듯한 일이었다.

 

야구단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더니 '대야미 크로우즈'라는 멋진

이름도 생기고 다달이 걷는 회비를 모아 유니폼을 맞추기에 이르렀다.

사실 10만원이나 되는 유니폼을 맞추는 것은 한 한기만 지나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에겐 과한 일이 아닐까 싶어 만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들은

중학교에 가서도 야구단을 할꺼라며 결연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야구단에서 뛰고 있는 6학년 아이들은 두세명 뿐 이다.ㅠㅠ)

할 수 없이 거금을 주고 유니폼을 맞춰 주었다.

 

멋진 유니폼이 생기자 야구에 대한 아들의 애정은 더 깊어졌다.

여름방학에는 너무 더워서 오전 8시부터 모이는데도  그토록 아침잠이

많던 아들이 7시 무렵에 벌떡 일어나 전날 머리맡에 정성스럽게 개켜놓은

유니폼을 입는 모습은, 정말이지 내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아들이 자라는 동안 운동의 세계로 인도는  커녕 놀이 상대도 자주 안 해주던 남편은

이제 아낌없는 장비 구입으로 아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있다.

얼마전에도 폼 나는 야구 장갑에 알미늄 베트까지 사들고 들어와서 아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 것이다.

 

12년 동안 책만  끼고 살던 아들이 13년 만에 야구에 빠졌다.

보통 아이들은 12년 동안  야구에 축구, 놀이에 빠져 살다가 열세살 여름 쯤 되면

중학교 진학을 위해 슬슬 학원도 다니고 공부하는 시늉을 한다는데 우리 아들은

완전 거꾸로다.

정말 중학교에 가서도 유니폼을 입고 어린 동생들이 훨씬 많은 동네 야구단 활동을

계속 할지 알 수 없지만, 시작이 늦다보니 동생들보다 훨씬 훨씬 야구에 서툴긴 하지만

야구단에서 제 키가 제일 크다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아들은

제가 아주 야구를 엄청 잘 하는 줄 알고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응원할 수 밖에....^^

 

대야미 까마귀들 팀의 53번인 아들아..

야구도 다 좋긴 한데, 그래도 아직 4학년 수준에 있는 수학 진도는 조금 올려야 하지

않겠니?

2학기만 지나면 중학생이란다, 어흑...ㅠㅠ

 

그래도 건강하게 쑥쑥 잘 크는게 고맙다. 야구든 축구든 즐겁게 땀나게 해 보자.

그 체력으로 수학에도 좀 신경써보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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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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