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전주-창원, 다시 전주, 제주로 이어지는 추석 1000km 여정.

 

사실 이번 추석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추석이 대목인지라 선물을 알리고 주문받고 배송하고 하는 일들을 처리하다보니 어느덧 육지에 있는 가족들과 만날 날이 다가와 있었다. 오죽하면 두 번째 허리수술을 마친 엄마 병문안을 못 갔을까.

 

엄마, 절대 허리는 수술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왠만하면 참고 조금씩 운동을 해야 안되겠나라고 했지만 엄마의 허리가 끊어지는 아픔을 나는 몰랐다.

허리가 아파서 안 되겠더라. 추석 다가오니까 그때 보자. 근데 언제 창원에 오노?”,

.. 엄마 잠시만. (아내에게 물어보고) 금요일 저녁에 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낙동강에서 나고자란 나는 본포횟집 향어회를 시켰다>

창원음식.jpg

 

금요일 저녁, 창원에선 잠시 퇴원을 한 엄마와 주인을 기다리는 대추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에 부기가 빠지지 않은 엄마는 잘 익은 대추와 석류를 따야 된다고 토요일 아침부터 급하게 서두른다아내, 첫째와 함께 대추를 털어서 주웠다. 당도가 좋은 생대추, 햇볕에 말리니 색깔이 더 붉어진다.

    

<첫째와 함께 대추따기>

대추따기.jpg

 

결혼 안하고 창원에 있다는 이유로 설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는 둘째누나.

누나, 결혼 안했다고 뭐라고 할 어른도 없는데 매번 설 추석 준비한다고 고생하지 말고..

내년 설에는 해외여행이나 다녀오는게 어떻겠노?”,

우야, 나도 그라고 싶다. 내년에는 오지마까?”

 

평생을 혼자 지내다가 요양원에 계신 고모도 찾아 뵙고,

아버지 성묘를 갔다가 옆에 부모님 묘자리를 쓴 이유로

내 아버지 벌초를 함께 해준 조카들도 우연히 만나고,

마지막으로 첫째를 데리고 큰 어머니댁에도 찾아뵈었다.

첫째는 대문간에 서서 절대 움직이지 않았고 억지로 안아서 데려가니 대성통곡을 했다.

결국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나오며 첫째에게 이유를 물으니

"심심해 아빠.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가기 싫어"라고 대답하더라.

내 어릴 적 그렇게 싫어하던 친척집 나들이를 이제 내가 아버지가 되어 그대로 하고 있다.

나또한 즐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됨의 기본은 해야겠는지라.

어릴 적 내가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는 나만 데리고 집안 제사를 찾아다녔고

집에서 TV나 보고 있을 누나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12년 만에 창원 북면 천마장온천을 찾았다.

아버지 단골 온천인데 돌아가신 후 엄마는 다른 온천으로 옮겼다.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했던 제일 힘들었던 몇 가지 기억 중 하나가

뜨거운 온천탕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안 뜨겁다. 탕에 들어 온나해서 탕에 들어가는데

발목에서 허리춤으로 들어가는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탕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상을 충족시키지 못할까봐

어린 마음이 참 무거웠다.

그냥 아버지 뜨거워서 안 들어갈랍니더라고 한번이라도 이야기하고 떼를 썼더라면

내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발 디디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은 온천탕을 천천히 둘러보며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참 소중한 기억들, 내 어린시절을 아주 짧은 시간에 돌아본 듯했다.

 

내 아이는 지금 행복할까?  

  

<그 뜨겁고 힘겨웠던 어린시절도 이제 추억이 되었다>

온천.jpg

 

 

추석 당일날, 처음으로 차례상에 아버지 얼굴사진을 놓고 절을 한 다음 누나들을 기다린다.

지난 설추석 연휴가 길어서 차례다음날 전주로 출발한 기억에

수미, 우리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 되요? 누나들이랑 오랜만에 이야기를 좀 했으면 해서라고 했다가 단칼에 짤렸다.

첫째도 사촌언니들과 놀고 싶어 하는데라고 얘길 했더니

아내가 나와 둘째를 전주까지 자가용으로 태워주고 다시 창원으로 버스타고 와서 누나들이랑 지내요라고 배수진을 친다.

하루 더 자고 가자는 내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이제는 몇 시에 출발할까를 계산하게 된다.

 

창원에서 전주까지 3시간. 전주 처남이 정읍 처가에 가는 시간이 밤 8.

적어도 처남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창원에서 4시경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과연 누나들 2명은 언제 올까?

차가 엄청 막힌다는 대구 막내누나는 4시가 넘어서 도착했고

잠시 인사를 나누고 저녁 5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아내는 전주로 출발하며 우리 기다리지 말고 정읍 일찍 가렴남동생에게 전화를 했고

나는 미안한 마음에 전주 오는 내내 아내 눈치를 살펴야 했다.

창원집에 있는 동안 처가에 가면 나또한 불편하긴 마찬가지인지라

아내와 엄마 앞에서 시가와 처가를 동급으로 비교하는 망언도 하였다.

차례음식 준비에,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 생각에,

이제 17개월인 젖먹이 둘째까지 챙겨야 하는 며느리 아내와

맛있는 것을 먹고는 TV 보며 허허 웃거나 방에서 잠을 자는 사위인 남편을 비교하다니..

명절 1000km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이동.

 

가끔은 나는 창원집에서 명절을 보내고 아내는 전주집에서 명절을 보내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온전히 내 아버지를 위해 먹을 만큼만 상을 차리고 누나들과 담소를 나누며,

내 아내는 딸자식으로 부모 형제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즐길 수 있는..

아이 둘은 번갈아가며 엄마, 아빠네 집으로 가는 명절의 모습.

차례상 차린다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고 장거리 운전하느라 힘들 필요 없이

밀린 숙제처럼 관계를 맺는게 아니라 휴가처럼 맞이할 수 있는 명절모습.

    

<천키로 이동에 휴식이 되어준 음식은 명절음식이 아니라 전주에서 만난 냉면+치킨> 

전주음식.jpg 대추따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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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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