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의 사이.
11월이 깊어가는 주말, 사과밭에 다녀왔다.
구름이 많고 바람이 제법 차가웠지만
늦가을다워서 좋았던 날.
큰 사과로 영글기 전에 떨어진 작은 사과들이
사과밭 여기저기에서 뒹굴고 있었다.
몇 개 주워 깨끗이 닦아 주머니에 쏙 넣어둔다.
집안에서 장식으로도 쓰고
아이들 장난감으로도 쓰고
마당에도 몇 개 두면 새들이 와서 쪼아 먹을테니.
이렇게 튼실하게 영글기까지
햇빛과 바람과 비가 얼마나 많이 도와줬을까.
농부의 손길과 정성은 또 얼마나 많이 닿았을까.
갈색 가지와 초록 잎과 붉은 열매의 어울림이 너무 아름답다.
과일밭에서 행복해하는 아이 모습은
자연 못지않게 아름답다.
아니, 사람 아이도 자연의 일부분이지..^^
과즙이 가득한 사과 하나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운 아들은..
따뜻한 짚더미 위에 드러누워
김밥 말듯 옆구르기를 실컷 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함께 간 가족, 친지들과 사과를 모두 수확하고 나니
큰 상자로 네 상자나 넘게 나왔다.
단 한 그루의 사과나무에서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다니.
올 한해동안 나는 내 삶에서 어떤 결실을 이루었나.
1년이 끝나가는 이 계절에
해마다 만나는 사과나무는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숙소 침대에서 바라 본 창문이
한 장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산과 하늘뿐인 풍경임에도
단조롭지 않고 충분히 아름답다.
올 한 해 내 마음 속에
단 한 장의 그림을 남긴다면
어떤 장면을 담고 싶을까.
2015년도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실망과 슬픔을 안겨주는 일이 어느 해보다 많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내년에도 사과나무는 다시 꽃과 열매를 맺을테니.
아이들도 멈추지 않고 자랄테니.
달콤한 사과 한 입 배어 물고
다시 힘을 내어보는
늦가을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