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로로 나갔다.

  ‘감이 없다.’를 시작으로 ‘10시간 동안 뭘 배웠느냐.’‘차선변경이면 차선변경, 유턴이면 유턴 자신 있는 게 뭐 하나라도 있느냐?’ 쇄도하는 타박에 답을 찾지 못한 채 , 난 안 될 거야, 난 안 될 거야.’ 의기소침해지기만 보름 여.

마침내 내가 대로에 입성을 하였다.

안전벨트를 매고 액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확인하기를 몇 차례. 시동을 켬과 동시에 시작한 안전기도문을 목적지까지 쉼 없이 외며 띄엄띄엄 , 운전이 뭐라고.’ 그런 생각도 했다.

 대학 3학년 때다. 함께 하자며 일사천리로 운전학원에 등록해준 이모 덕에 일찌감치 면허를 따긴 했다. 돌아보면 의미 없기가 이루 비할 데 없는 필기 1등 박수도 받았다.

 같은 시기, 한 살 위 오빠는 운전 시험장에서 연수를 겸하겠다는 목표라도 세운 것인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탈락, 탈락했다. 허나 더 이상 인지 붙일 자리가 없을 만큼 너덜너덜해진 그의 시험 접수증을 비웃던 입가에 경련이 멎기도 전에, 그는 레이서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다. 결국 면허라는 것은 소지가 아니라 실행에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오랫동안 -무려 이십 년이다- 그의 비웃음을 샀다. 너는 대체 무엇을 위하여 면허를 땄던가. 그러고도 녹색 면허인 것이냐, 으하하.

 

 하긴 스스로도 운전 기피가 이십 년을 이어질 줄은 몰랐다. 때 되면 하겠지, 싶었던 그 때가 영 오지를 않았던 게다. 주위에는 면허취득의 기쁨을 곧장 도로 질주로 표현하는 자가 넘쳤거늘, 나로 말하자면 속도에 젊음을 맡기는 경박한  이가 아니랄까, 실은 그저 운전이 몹시 무서웠다하여 부부가 교대로 운전하며 그럭저럭 안락하게 장거리를 여행하고자 했던 남편의 로망 따위 실현해줄 수 없었다.

     

 헌데 말이다. 세상 자식만큼 무서운 게 없다던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가

 함께 어울리던 이의 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다녀왔다. 같은 동네인데다 아이들 나이도 같고 마음도 맞아 자주 만났다. 그 친구를 만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평소와 달리 1대신 B1을 눌러야 한다. 아들은 그게 재미가 있었던지 그 후 둘이 있을 때도 곧잘 B1을 눌렀다

 “우린 1 눌러야지.”

 “? B1 누르고 싶은데.”

 “우린 지하 주차장 안 갈 건데.”

 “난 지하 주차장 가고 싶은데.”

 지하 주차장 타령은 키즈 카페에서도 이어졌다. 함께 탄 엄마들을 뒤로 하고 1층에서 내릴 때면 나도 지하에서 부릉부릉 타고 싶은데.”란다.

 그러던 게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가면 , 어린이라서 다리 아파. 멀어서 못 걸어. 부릉부릉 타고 싶어.”“오늘 추워, 콜록콜록, 부릉부릉 타야 해.” 거짓 기침까지 일삼는다.

 “걸으면 가로질러서 금방 가는데 부릉부릉 타면 빙 둘러서 오히려 더 멀어.”

 “, 빙 둘러 가는 거 되게 좋아해.”

 

 2015-12-08 13;39;52.jpg

                    <조그만 할머니 차 사진찍은 게 없어 한 번 몰아 본 아빠 차 사진으로.>

 

하여 엄마는 일대 결심을 하고 이십 시간 가까운 운전연수를 받게 된 것이다. 보통은 열 시간이면 충분하다는데 예상했던 바, 나는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안 될 거야.’를 무수히 반복한 끝에 마침내 조그만 할머니 차에 <초보운전>을 붙이고 거리로 나섰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고 극복하려 시도조차 않았던 과제 하나를 해치웠다. 아들이 아니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아들은 나의 인생을 새롭게 만든다. 관심도 없던 물건들을 탐하며 한없이 위시리스트에 담게 만들고 가까이 할 일 없으리라 여겼던 사람들과 말을 트게 만들고 가고 싶지 않던 세상에 한 발 내딛게 만든다.

 그리하여 나는 새 인생, 4년차. 아들과 함께 출발선에서 걸음마를 시작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아들이 요즘은 자꾸 영어 단어를 묻는다. 그쯤은 그럭저럭 사전을 동원해 해결하는데 문장까지 만들란다

 “엄마, 밥 먹기 싫어 뭐야?”

 “잠 자기 싫어는?”

 “어린이집 가기 싫어, 친구랑 사이좋게 놀기 싫어, 선생님이 화내서 싫어는?”

 이 나이에 영어까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나는, 마법의 문장을 뱉어내는 걸로 일단 위기를 모면한다.

 “I don’t want to.”

 

  그러나  엄마는 이미 안다. 하기 싫은 무수히 많은 것들을 이 엄마가 너와 함께 하나씩 해치워갈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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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나이 마흔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들 한 마디 할 동안 열 마디 한다며 타박 받을만큼 급하고 남 이야기 들을 줄 모르는 성격이었거늘, 걷고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늦된 아이를 만나고 변해갑니다. 이제야 겨우 기다리고,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람에게 처음 다가온 특별함,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의 이야기가 따뜻함으로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이메일 : toyo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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