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와 앙큼이.jpg » 중국에 사는 친구네 집에 가 있는 동안 태국 샴고양이 '모카'는 앙큼이의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 앙큼은 모카에게 달려가 놀아달라고 안달했다.

 

눈이 동그랗고 삼각형 얼굴의 고양이를 닮은 호기심 아이 앙큼군. 하는 짓도 고양이스러운 이 녀석의 고양이 사랑은 아기 때부터 유별나다. 아마 그 기원은 엄마 뱃속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 싶다.
 
6년 전 퇴근길, 신문사 인근 아파트 정원이 제 집인 길냥이를 만났다. 뱃속에는 앙큼군이 꼬물꼬물, 배 밖에선 길냥이가 야옹야옹. 딱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둘은 그렇게 만났다. 까만 바탕에 흰 점이 띄엄띄엄 찍힌 그 고양이에게 “나비야” 부르면 어디선가 “야옹 야옹” 하고 뛰어나와 몸을 부벼댔다. 거의 매일같이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똑같은 만남이 반복됐다. 어떤 날은 고양이가 헤어짐이 아쉬운지 집으로 가는 길 한참을 뒤따라오곤 했다. 그러다 자기 권역을 벗어날 정도의 거리까지 따라오면 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서 있다 돌아가곤 했다. 먹이를 따로 챙겨주는 캣맘도 아니었건만, 앙큼이가 뱃속에서 꼬물꼬물 자라는 내내 그러했다. 과연 영물이란 생각을 하게 한 고양이였다.
 
어릴 때 늘 고양이를 키우며 살았고, 고양이가 많이 불어났을 땐 12마리가 시골집 안팎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 고양이들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 이름을 붙여줬다. 유난히 부드러워 물렁이, 뱀을 잘 잡아 뱀경이, 욕심보가 붙어 있어 뺑덕이, 걸음새가 새초롬해 예쁜이…. 어미 고양이가 자꾸 자꾸 새끼를 낳아서 이름 짓기 바빴다. 객지 생활을 하면서 멀어졌던 고양이가 근 20년 만에 내 앞에, 아니 앙큼이 앞에 나타난 것이다. 태교란 걸 특별히 한 건 없지만, 그래도 꼽는다면 ‘고양이 태교’를 했다 할 수 있겠다. 나는 그 고양이로부터 진심으로 깊은 위안을 받았다. 고양이의 털이 기관지에 들어가 태아에게 위험을 끼칠 수 있다는 주의사항을 귀담아 듣는 대신 고양이 털의 촉감이 주는 매끈한 보드라움에 날선 신경을 파묻었다. 엄마가 안정을 느끼는 순간 탯줄로 이어진 앙큼이도 고양이의 포근한 기를 받은 것일까?
 
책으로 놀기 시작하면서, 고양이는 언제나 앙큼이 곁에 있었다. 헝겊책부터 해서 고양이가 나오면 “아궁~ 아궁~” 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앙큼이는 아기 때 고양이를 ‘아궁이’이라고 불렀다. 의성어 의태어가 반복되는 아기책 중 유독 일본 작가가 그린 그림책을 좋아해서, 공통점을 뽑아보니 고양이가 나오는 책이었다. ‘고양이의 나라’ 일본답게 일본 작가들은 고양이를 참으로 잘 그린다. 표정의 디테일을 절묘하게 잡아내 고양이가 처한 곤경이나 슬픔, 기쁨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 수 없도록 묘사한다.
 
그림스타일뿐 아니라 고양이 스토리텔링도 뛰어난 일본 작가들의 창작동화를 본의 아니게 즐겨 보여 주게 된 계기다. 첫 시작은 웅진 마술피리 꼬마 전집(웅진 마꼬)이었다. ‘국민’ 수식어가 붙은 전집이어서 선택한 이유도 있다. 국민 장난감, 국민 동화를 사면 적어도 초보엄마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 보여준 ‘웅진 마꼬’는 반복적 문장의 말놀이 재미가 가득한 책들로 구성돼 있다. 사박사박 즐거운 모래장난, 저 창문에 뭐가 보이지?, 의자 의자 좋아, 커다란 오믈렛…. (음음………앙큼이가 좋아한 책들이 이제 추억이 됐군.) 책 제목은 그대로 모든 장마다 문장으로 반복되며 새로운 어휘가 추가된다. 앙큼이가 17개월 즈음 옹알이에서 언어의 의미 분화로 나아가는 시점에 만난 이 책은 말 배우기에도 좋았다. 무엇보다 앙큼에게 각별했던 건 책 속 여기저기에 나오는 다양한 고양이들이 앙큼이의 좋은 친구가 됐다는 점이다. 50여권(개정판 이전 권수) 중 일본 작가 가나오 게이코가 쓰고 그린 <나무 오르기는 처음이야>는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이 만져질 것만 같아 책을 펼치게 된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기 고양이가 매미를 잡으러 나무 위로 한 가지 두 가지 세 가지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못하고 으앙 울어버린다. 나무 아래 벤치에서 낮잠자던 엄마 고양이가 그 소리를 듣고 나무로 뛰어올라가 입으로 물고 내려오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엄마와 아기가 함께 보면서 할 이야기는 많다. 고양이 표정이나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곤충 등 그림의 묘사가 워낙 디테일해서다. 가나오의 다른 그림책 <나무에서 떨어진 고양이>도 같은 까만색 고양이가 나온다. 

 
30개월 무렵 만난 차일드애플 창작동화도 고양이 계보를 잇는다. 역시 일본 창작동화를 모은 전집으로 엄마들 사이에 ‘국민 동화’의 칭호를 받고 있다. 어린이집 앙큼이 친구네서 빌려 한달가량 마르고 닳도록 봤다. 이맘 때는 전집 서로 바꿔보기를 했다. 자꾸 사기도 번거롭고 공간 점유도 만만치 않아 한달 간격으로 몇 종류의 전집을 서로 바꿔 보여주며 아이의 취향도 살폈더랬다. 짧은 글밥이지만 이야기가 나름 탄탄하고 예쁜 그림과 기발한 상상이 담겨 있어 유아기 정서를 가꾸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 많다. 무엇보다 어느 책 하나 빠지지 않는 재미가 있었다. 즐겨봤던 책 중 <아기 고양이의 풍선>이 생각난다. 엄마가 꼬리에 달아준 빨강 파랑 노랑 색깔 풍선을 파랑이와 노랑이는 떼버리고 낯선 길로 갔다 길을 잃어버렸지만 풍선을 안 뗀 빨강이를 보고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러고보니 상당히 교훈적 내용이군.) 이밖에 <달려라 고양이 유치원> <세마리 고양이의 가게놀이>도 귀여운 고양이판이 벌어진다.
 
그 다음 고양이 버전은 아삭아삭 맛있는 동화 전집이다. 네 살 무렵 잘 봤던 일본 창작동화 전집이다. 일본책다운 앙증맞은 그림 스타일에 글밥도 꽤 길고 그림책 장수도 늘어나 이야기의 서사구조도 보다 정교해진다. 앙큼이 가장 좋아한 책은 전집 중 고양이가 물고기 입 속에 들어가 바다를 헤엄치는 ‘고양이 물고기 시리즈’. “물고기와 고양이는 둘도 없는 친구에요. 물고기와 고양이가 만나 고양이 물고기…”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앙큼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해지곤 했다. 얼굴이 도톰하고 눈이 땡그런 ‘고양이 물고기’와 함께 모험을 떠날 때의 표정이다.     
 
4살부터 지금까지 앙큼이를 가장 사로잡은 책은 주디스 커의 <고양이 모그> 시리즈.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만이 포착할 수 있는 일상의 고양이 소동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처롭고 따스하다. 주디스 커는 1923년에 태어나 2차대전 때 나치정권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간 독일 출신 작가다. 영국 BBC방송국 스크립터로 일하다 어린이책 작가로 좋은 책들을 남겼다. 주디스 커의 대표 캐릭터 모그는 <원숭이 부인이 방주를 놓쳤어요> 등 그의 다른 그림책에도 카메오로 등장해 작가의 책을 찾아 읽게 만든다. 런던에서 두 아이랑 고양이 모그를 키우며 겪은 일상사가 그림책으로 들어왔다. 줄무늬 회색 고양이 모그 시리즈는 전 세계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중엔 앙큼이도 빠질 수 없다. 앙큼이는 자기한테 모그라 불러주면 아주 사랑스러운 모그 표정을 짓고 고양이처럼 웅크리곤 한다. 모그와 자신을 동일시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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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순
일찌감치 결혼했으나, 아이 없이 지낸지 13년. ‘룰루나 행성’에서 꽃을 키우며 지내던 앙큼군은 우주 폭풍을 만나 어느날 지구별로 떨어졌다. 아이가 없는 집을 둘러보다 우리집으로 왔다. 어딜 가나 엄마들한테 ‘언니’라는 호칭으로 통하는 ‘늙은 엄마’이지만, 앙큼군은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다행이야”를 달고 사는 여섯 살 소년으로 자랐다. 곰팅맘은 현재 한겨레 편집 기자이며, 책과 지성 섹션에 어린이청소년 책을 소개하는 기사도 쓰고 있다.
이메일 :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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