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들 말, 먼저 살아본 사람들 말 틀린 거 하나 없다고, , 정말이지 좀 키워 놓으니 이제야 살만하구나 싶었다.

 

아이는 네 살도 무르익어 다섯 살이 머지않은 늦가을이었고 병원에서는 2년을 연이어 혈당관리에 신경 써야겠다는 결과를 받았다. 임신하고 30킬로그램 이상이나 쪘을 때 위험하다 여기면서도 방치를 했더니 아슬아슬한 수치까지 상승한 모양이다. 하긴 단 걸 그렇게 먹어대는데다 움직임이라곤 없으니 당연하다 싶어 운동을 시작해 볼까 결심을 했다.

 

헌데 운동이란 게 어지간한 인내심과 극기가 없으면 혼자서는 불가능, 하여 어린이집 가까운 헬스센터에 등록했다. 대단할 건 없고 묵묵히 걸을 뿐이다. 30, 40, 한 시간 그저 걸을 뿐이지만 아, 이게 운동이구나 싶어 스스로 만족을 하던 몇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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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가는 길에 원에서 동네 나들이 나온 아들과 딱 마주쳤다. 거 참, 그리도 엄마가 좋은 겐지 엄마랑 헤어지지 않겠다고 새삼 울고 난리가 났다. 선생님도 달래고 친구들도 오라고 손짓을 하건만, 제일 좋아하는 초코가 줄줄줄 흐르는 과자에도 굴하지 않고 한사코 엄마를 따르겠단다.

엄마는 지금 운동을 가야 한다, 엄마 따라가면 넌 한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도 갈 거냐.

 

설명을 하고 또 해도 굳게 다문 입술로 고개만 끄덕. 결국 아이 손을 잡고 5층 헬스센터로 갔다. 옷도 못 갈아입은 채 러닝머신에 올라 걷기 시작, 이 지루함을 얼마나 견디겠냐 싶어 힐긋 본 아이는 한구석에 앉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더니 30분을 미동도 없이 앉았다.

 

그쯤에서 운동도 단념, 집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그날 밤부터다. 아이가 주야장천 엄마는 왜 운동을 하느냔다. 그리고 덧붙여 1365일의 애창곡, 어린이집 가기 싫어를 부르짖는데. 선생님이고 엄마고 네가 왜 어린이집을 가야 하느냐면, 이유를 조목조목 친절하게 설명을 하건만,

 

자, 그럼 어린이집 왜 가야하는지 너가 한 번 생각해 봐,하면.

엄마가 운동가야 해서,란 대답을 자신만만하게 내놓는다.

 

결국 아이 머릿속에 내가 어린이집 가는 이유는 엄마의 자유 시간을 위해서라는 등식이 성립, 하아, 정말이지 요즘 인터넷에서 난무하는 전업주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그대로 입력되고 말았다.

미안하다, 아들아, 그러나 그것이 일종의 진실이다. 엄마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너와 24시간을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바람은 차가워진 한 날, 원장 선생님께서 꼭 드릴 말씀이 있단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어머님, 귀댁의 아드님 때문에 저희가 너무 힘이 듭니다!

아니, 이 무슨!

뒤집기 이후, 뭐 하나 쉽게 쉽게 다음 단계로 넘어 간 적이 없는 아들이긴 하다만 어린이집 적응마저 완벽실패라니,

사실 아들은 여름과 겨울 방학 시즌이면 2주 이상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법정 등원일수만 겨우 채우는데다 평소에도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등원, 일찍 하원, 수시 결원을 일삼고 있거늘, 그나마 다니는 날조차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였나 보다.

 

이유는 낮잠이었다.

낮잠이 오지 않는데 자꾸 꾸역꾸역 자라하시면.

반항심이 솟구친 네 살 어린이는 낮잠 시간마다 떼를 써서 선생님만 졸졸 따르기 일쑤. 그 시간을 활용해 아이들 하루 일지도 작성하고 숨도 좀 돌려야 하는 담임선생님을 지치게 만드는 게다. 혼자서 얌전히 책을 읽거나 교구를 갖고 놀면 오죽 좋겠냐만 그것은 무리.

이런 날들이 반복되자 선생님의 피부는 초췌해지고 다크 써클은 한층 짙어지기에 이르렀으니, 어미로서 결판을 내려야 할 시점이 온 게다.

그러하다면 제가 낮잠 시간 전에 데리고 오지요. 해결책을 내어 놓았다.

 

이제 아들은 한 시 전에 집에 오기에 이르렀다. 세 시간이면 집으로 돌아오니 마음도 편안한지 애창곡 어린이집 가기 싫어를 부르는 빈도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한편 현저히 줄어든 자유 시간을 어찌하면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엄마는 옷 갈아입기와 샤워하기를 생략한 운동 한 시간에 어린이집 바로 옆 커피가게에 앉아 책 읽기를 비롯, 몇 가지 필요한 작업들을 처리하기에 이르렀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너는 말하지.

엄마, 사랑해.

엄마도 너 많이 많이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그런데에, 왜 엄마는 운동 가?

 

, 이 자식아. 노모가 열심히 운동해야 오래오래 건강하게 너랑 놀 거 아니냐고. , 거 참, 백 번을 설명하거늘 말 되게 못 알아듣는다, 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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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나이 마흔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들 한 마디 할 동안 열 마디 한다며 타박 받을만큼 급하고 남 이야기 들을 줄 모르는 성격이었거늘, 걷고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늦된 아이를 만나고 변해갑니다. 이제야 겨우 기다리고,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람에게 처음 다가온 특별함,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의 이야기가 따뜻함으로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이메일 : toyo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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