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커졌어? "
사실, 얼마전부터 심상치는 않았다. 5살의 막바지를 보내는 나의 둘째는 지속적으로 나에게 몸이 뻥튀기가 된 비법을 물었다. 딸에게 나의 5살 시절의 사진을 내밀며 엄마도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작은 (그리고 엄청 귀여운) 아이였다고 몇번을 말했다.
그러나 30여년전 나의 '앙증맞은' 사진에 아이는 별다른 흥미를 갖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누워도 넉넉한 넓은 배와 가끔은 자신을 '비행기' 태워주는 굵고 탄탄한 다리, 그리고 굳세보이는 주먹을 가진 30대 후반의 나의 몸에 관심을 보였다. (말하다보니 슬프다)
"어? 엄마도 이거 30년 넘게 커서 이렇게 큰 건데? (그리고 그나마 줄고 있는 것 같....ㅠㅠ)"
그렇게 큰 몸에 유난히 관심을 가지던 아이는 급기야 2015년 마지막날 자신의 거대한 새해소원 두가지를 밝혔다.
개명과 운전면허. (응?)
때는 바야흐로 2015년의 마지막 밤이었다.
"우리 딸 이제 하룻밤만 자면 6살 되는구나 축하해" 나는 딸의 귀엽고 동그란 얼굴을 쓰다듬으며 5살의 마지막 밤을 축하했다.
그러나 갑자기 귀여운 그녀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러워졌다.
"6살이 되어도 나는 아무도 도울 수 없어." 언제나 활짝 핀 목련꽃같던 그녀의 웃는 모습이 시들었다.
"무슨 소리야? 아가야?"
갑작스러운 아이의 우울한 새해전망에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도대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딸은 최근 자신의 가슴에 쌓였던 고민을 술술술 털어놓았다. (다섯 살에게 이렇게 많은 고민이 있을 줄이야)
가장 큰 고민은 키가 너무 작아서 조금이라도 높이 있는 곳에 있는 물건은 집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보다 키가 작기 때문에 아무도 도울 수 없다는 것이다. (남들은 왜 나를 돕지 않는가? 이런 고민만 해왔던 나였기에.....딸의 '이타적' 고민에 별다른 도움은 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6살로 접어드는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오빠는 맨날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실 그랬다. 둘이 함께 놀 때 첫째인 아들은 세살이 많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즐겼다. 로봇 놀이의 악당은 언제나 딸의 몫이었다. 몇몇 게임에서도 오빠에 비해 경험치가 떨어지는 딸은 번번히 졌다. 그래도 자기와 잘 놀아주는 오빠였기에 딸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 중 하나로 오빠를 꼽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변했다. 깊이 내재되어 있던 승부를 향한 욕망이 각성한 것이다. 요근래 "맨날 오빠만 이겨!"하면서 울음을 터뜨린 일이 부쩍 자주 발생했던 것이 떠올랐다. '깨어난 포스'를 느낀 그녀는 아마도 점점 오빠에게 반항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2016년이 생각보다 빡셀 수도 있겠다는 느낌적인 느낌도.................)
이렇게 '작은'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한참 늘어놓던 그녀는 결국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뜬금없는 새해소원을 내놓았다. 뭔가 사업이 안풀리는 중년들이 내놓을 법한 새해 소원이었다.
왜냐고 물으니, 자신의 이름이 어른이 되면 어울리지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15년 뒤의 걱정은 너무 이르지 않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냈으나 묵살당했다)
그리고 개명과 더불어 운전도 하고 싶다고 했다. (운전면허도 15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으나 역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자신이 너무 작아 속상한 그녀는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면서 여러번 이름 변경과 운전이 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나는 두 가지 모두 10년은 넘게 걸리는 일이니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보자는 말로 아이를 달랬다. 그러나 아이의 표정은 밝아질 기미가 없었다.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좋을 지 정말 모르겠다. 하아.......)
결국 그녀는 자신은 6살이 되어도 이룰 수 있는 게 없다면서 너무 속이 상하니 내일은 마트에서 장난감이 들어있는 초콜릿을 사달라는 결론을 낸 뒤 잠 잘 준비를 했다. 뭔가 낚인 기분이었지만, 30분간 슬픈 5년 성장사에 기가 빨린 터라 그러마 약속을 했다.
딸아이가 잠든 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 봤다. 저 작은 얼굴 뒤에 저 작은 몸 뒤에 그런 고민들이 숨어 있을 줄이야. 15년 뒤를 내다보는 약간은 황당한 소원 뒤에서 어서 크고 싶은 다섯살 꼬마의 마음이 뭉글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아이는 정말 자라고 있었다. 많이 대견하면서도 많이 아쉬웠다. 오빠와의 가위바위보에서 져도 마냥 행복했던 5살의 포동한 딸은 이제 나의 기억에만 남게 되겠지.
폭풍같은 고민 뒤에 맞은 2016년. 언제나 그렇듯 명랑한 잡초들처럼 기운차게 뻗친 머리를 한 딸이 아침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나 이제 6살이야" 딸이 방긋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