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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6학년, 13살 아이들이
스스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한다면 어떤 모습들이 연출될까?
매년 이맘때면 항상 어른이 계획하고 준비한 송년회나 크리스마스 모임에
우리 아이들은 함께 따라가거나 손님을 맞이하며 즐기는 것이 다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했지만
큰아이는 이제 곧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으니,
아이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파티 준비를 해 보았으면 싶었다.
큰아이에겐 올해 유난히 친했던 친구가 7명이나 있는데
이번 크리스마스는 이 아이들 스스로가 계획하고 준비하기로 했다.
13살들의 광란의 크리스마스 파티,
그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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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든 어른이든, 모여서 놀려면 먼저 공간이 필요하다.
여름방학 때도 큰아이의 친구들 7명 집을 골고루 돌아가면서 놀았던지라,
이번에는 우리집으로 정했다.

집집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일본 가정에선 아이들이 모여 논다고 해도
그 집 엄마가 모든 음식과 모든 여건을 준비해 주는 일이 드문 편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의 경우는 하나부터 열까지 어른들이 준비하고 돌봐주는 게
당연하지만, 6학년 쯤 된 아이들에겐 놀 수 있는 공간과 간단한 간식만 제공해주고
자리를 비켜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대한 집의 엄마도, 초대받은 친구 엄마들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다르게 표현하면, '아이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긴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준비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큰아이를 통해 간간이 들으며,
파티 당일 내가 준비한 것은, 아이들이 편하게 놀도록 거실을 치워둔 것과
식기, 음료수, 케잌 하나를 준비해 둔 게 다였다. (이날, 생일인 아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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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음식들은 아이들 각자가 엄마와 의논했는지,
이런저런 먹을거리들을 잔뜩 챙겨왔다.
엄마가 가르쳐준 레시피대로 쿠키를 많이 구워온 아이가 있었는데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상자를 열자마자 모두들 집어먹어 금방 없어질 정도였다.
아! 많이 컸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13살 아이가 저 많은 과자를 굽느라
오븐 앞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을까..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 아이는 무척 내성적이라 친구들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는 이번이 생전 처음이었다고 한다.
전날밤 얼마나 설레었는지 한밤중에 잠을 너무 설친 바람에
늦잠을 자 학교에 늦을 뻔 했다는..
평소에도 너무 순수하고 성실해 보이던 아이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꼼꼼하고 정성스레 담아온 쿠키 상자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고맙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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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크리스마스 파티 겸, 생일인 친구에게는 비밀로 하고
서프라이즈로 축하를 해 주기로 작전을 짠 모양이었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루에도 열두번 계획이 바뀌고
곁에서 보고 있자니 난리도 아니었다.

천원,이천원 정도씩 돈을 모아 선물을 준비하고
각자 손편지를 준비했던 모양이다.
한창 귀엽고 이쁜 거 좋아하는 여자 아이들답게 이쁜 글씨와 스티커,

일러스트가 난무하는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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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벤트는 각자 선물 교환.
3천원 정도의 예산을 정해 그 정도의 선물을 각자 준비해서
게임을 하며 선물을 나눠갖기로.
일본의 100엔숍은 아이들도 푼돈으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 그곳에서 선물을 고르는데, 큰아이가 받은 봉투 안에는
부엉이 저금통과 사탕 모양 입욕제(목욕문화가 일상적인 일본 아이들다운 선물^^)
가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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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머리띠(내가 보기엔 우스꽝스런;;^^)를 하고
친구의 생일을 챙겨주며 파티를 즐기는 13살 아이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때는,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가 반주를 하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며 노는데 정말 귀여웠다.
나도 13살이 되어 저 속에 섞이고 싶어질만큼ㅎㅎ

적은 돈으로도 즐거운 모임을 꾸릴 수 있는 힘,
그리고 어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놀이의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정리정돈할 수 있는 힘,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았음 좋겠다.

내년 중학생이 되어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에는
올해보다 좀 더 즐겁게, 좀 더 알차게
준비해서 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초등시절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어 아이도 나도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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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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